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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다키스트 아워

by 똥이아빠 2018.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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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키스트 아워

게리 올드먼의 변신이 놀랍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공감할 내용이 거의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주권을 잃은 상태였고, 국내에서의 독립운동 활동도 미미했다. 조선과 중국 국경 근처에서 무장독립투쟁이 일부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도 전세를 뒤집을만큼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영화는 영국 정치에서 처칠의 등장과 그의 인간적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처칠이 등장하던 때가 공교롭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초반이어서 연합국에서 그의 위상은 중요하지만, 그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처칠은 보수당의 총리지만 지금 한국에서 말하는 '보수'하고는 격과 차원이 다르다. 물론 나중에 보수당 연합으로 마가렛 대처가 등장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영국 노동자를 짓밟아 뭉개버리는 정책을 확대해 영국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책임이 크지만, 적어도 처칠이 수상을 할 당시에는 유럽 전체가 전쟁에 휘말려 있을 때여서 오히려 보수당의 입지가 강화되고,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가 먹혀들어가던 때여서 계급투쟁보다는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의 영향이 크던 때였다.
처칠은 전쟁이 발발하던 1939년 당시에 이미 해군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던 1940년에 영국 수상이 된다. 수상과 함께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는데, 이는 전쟁 상황을 감안해서였을 것이다. 처칠은 이미 30대부터 장관으로 입각해 그후 줄곧 여러 분야의 장관을 역임하며 정치인으로 살아오고 있었는데, 그 이전, 젊은 시절의 처칠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장교로 전투와 전쟁에 참가해 경험을 쌓았는데, 그가 종군기자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처칠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해군장관을 하고 있었다. 꼭 그의 잘못만은 아니겠지만, 1차대전 때 동맹국이었던 오스만 제국과의 사이가 벌어지도록 만든데는 그의 책임도 있었다. 그로 인해 전쟁은 더 복잡하고 길게 끌었고, 그만큼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처칠의 역할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가 수상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의 초입이라는 점에서, 야당이 처칠을 끌어내리려 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그 전쟁의 초입에서 만난 것이 '덩케르크 작전'이다. 30만 명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안전하게 영국으로 후퇴시킬 수 있는가를 두고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서 처칠은 힘겨운 외교를 펼친다. 영국 내부에서는 히틀러와 협상해 영국의 안전을 보장받자는 협상파가 만만찮게 도전하고 있고, 눈앞에서는 영국군 30만명이 몰살당할 위험에 놓여 있으니 결정을 내려야 할 수상으로서 처칠의 위치는 백척간두에 선 기분이었을테다.
그가 정치적 감각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히틀러와 협상을 하라는 압력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평범한 영국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이다. 영국인들은 독일군과 맞서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고, 싸우다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독일에 항복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있었다.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이 이러함에도 정치권에서는 미리 겁을 먹고 독일에 투항하려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처칠은 시민들의 의견을 받들어 '맞서 싸우겠다'고 말한다. 
영국의 보수당은 적과 맞서 승리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하는데, 한국의 보수당은 친일매국노들의 집합이고, 어떻게 해서든 이 나라가 망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같은 보수라도 격과 차원이 다른 보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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