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일
한국의 누벨바그 영화로 불릴만한 이만희 감독의 작품. 1950-6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한 누벨바그 경향은 기성 영화에 대한 비판적 사조로, 새로운 감독, 새로운 작품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 대표적 감독으로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에릴 로메르 등인데, 이들이 거의 1920년대에서 30년 초반에 출생한 30대 감독이라는 점에서 이만희 감독도 매우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한국이 놓여 있던 특수한 상황-1968년,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군국주의, 독재주도의 경제발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하던 시기, 전쟁의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던 시기, 국민의 절대다수가 빈곤으로 고생하던 시기 등등-에서 가난한 여인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은 깊이 사랑하지만, 임신을 한 지연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애인 허욱은 빈털털이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늘 고민하고 갈등하고, 방황만 한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보이지만, 그 시기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실업자로 고통당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살기를 갈망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당장 임신중절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어 허욱은 아는 사람을 찾아가 돈을 빌리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부자인 친구를 찾아가 몰래 그의 돈을 훔친다. 애인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을 때, 허욱은 술집에서 낯선 여자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육체를 탐닉하다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다.
허욱이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수술이 잘못되어 지연은 죽고 만다. 허욱은 충격을 받아 거리를 방황하고, 돈을 도둑맞은 허욱의 친구는 허욱을 찾아내 흠씬 때린다. 피투성이가 된 허욱은 마지막 전차에 올라 종점에서 내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를 바라보며 내일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되뇌인다.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한다. 주인공의 고뇌, 갈등, 방황은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거리에는 바람이 불고, 낙엽과 쓰레기가 날린다. 시대의 어지러움이 바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거센 바람 속에 두 사람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커피값이 없어 다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 가난한 연인은 시대상황에 억눌리고 매몰된 민중과 청춘을 상징한다.
허욱이 낯선 여인과 정사를 벌이는 곳은 공사장 복판이다. 건설 자재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황폐한 골조가 드러난 장소는 허욱과 청년들의 텅빈 황량함과 시대의 삭막함을 상징한다. 이것은 허욱이 친구에게 얻어맞는 장면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영화는 따뜻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삭막한 거리와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량함, 거칠고 황폐한 공사장, 두 사람이 아늑하고 따뜻하게 보이는 순간은 지연이 죽고, 허욱이 과거를 회상하는 짧은 장면들의 연속에서만 잠깐씩 드러날 뿐이다. 그들에게 행복함이란 극히 짧은 순간이었고, 길고 긴 시간이 외롭고, 삭막하고, 쓸쓸하고, 고통스러움이었다. 그것은 두 청춘에게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이 겪었던 삶이기도 하다.
1968년의 서울 거리를 보는 재미와 즐거움은 영화 내용과 별개로 흥미롭다. 영화의 배경인 1968년에 나는 8살이어서 영화에서 주인공 허욱이 탄 전차를 나도 타 봤다. 마포에서 종로 창경원까지 아버지와 함께 전차를 타고 간 기억이 난다. 남산과 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풍경, 코로나택시, 가치담배를 팔던 구멍가게, 막걸리를 팔던 대폿집, 수많은 다방들,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복구하지 못한 부서진 건물들과 잔해까지, 서울의 60년대는 가난했고, 서러웠다.
어둡고 슬픈 이야기지만, 그 슬프고 아픈 청춘의 삶까지 아름답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무수한 아픔을 겪으며 한 시대를 살았고, 이제는 그런 슬픔을 말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오래 된 영화에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아픔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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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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