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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암수살인

by 똥이아빠 201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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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수살인
태풍이 지나가면서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미친듯이 허공을 할퀴는 오전, 여전히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2층의 방수 상태를 보면서, 아내와 둘이 하남 별마당으로 갔다. 비바람이 거센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모두들 집안에서 태풍이 지나가길 숨죽이며 기다리는 듯 했다. 토요일 오전이면 도시에서 내려오는 차들로 길이 막히곤 했는데, 오늘은 예외였다.
하남 별마당 주차장도 마찬가지였다. 주차장이 한산했다. 덕분에 우리는 느긋하게 좋은 자리에 차를 세우고, 팝콘과 콜라를 산 다음, 극장 앞 테이블에 앉아 팝콘을 먹고, 콜라를 마시며 우리집의 관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옥상 방수를 하면서, 태양광 패널을 해체해야 하는데, 뜯는 김에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정집 전기 용량을 현재 5kwh에서 9kwh로 증설하고, 태양광 전기발전도 현재의 3kwh에서 적어도 6kwh로 증설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하면 초기 투자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상당히 이익이 될 것이 분명했다. 또한 기존의 태양광 패널을 해체하고 다시 설치할 때, 자리를 옮겨서 더 좋은 자리에 집에 어울리는 깔끔한 모양으로 설치하자는데도 의견을 모았다.
그러는 사이 영화 상영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팝콘과 콜라를 들고 좌석을 찾아갔다.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절반 정도는 자리가 찼다. 사흘 전 개봉한 이 영화는 대략의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미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송을 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만든 것은 감독의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흥행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
'잘 만든' 영화의 공통점은 '시나리오'와 '연기'가 훌륭하게 결합한 결과라고 봐도 좋겠다. 이 영화도 시나리오가 좋다. 110분을 긴장을 유지하며 관객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관객이 하품하지 않도록 만든다면 일단 성공이다.
여기에 배우의 연기는 관객이 몰입하고 감정이입하도록 만드는 주요 요소로 작동한다. 형사 김형민은 평범한 외모의 평범한 형사다. 그의 사생활은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아내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뜬 것만 알려질 뿐이다. 형사를 하면서 제네시스를 타고 다니고, 골프를 친다면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은 형에게 일정의 지분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김형민은 얼마 안 되는 형사 월급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영화의 끝까지 범인 강태오에게 끌려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김형민을 비웃고 조롱하고, 생고생을 시키는 것은 강태오의 노련한 능력이다. 단 한 컷으로 드러나는 강태오의 능력은 평범한 사람과는 분명 다름을 알 수 있는데, 감방에 쌓아 놓은 여러 권의 법률서적은 강태오가 여느 살인범들과는 다른 인물임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심리전은 이 영화의 백미이며, 핵심이다. 밀고 당기는 두 사람의 의도는 분명 눈에 보이지만, 알면서도 속고, 모르고 속는 상황이 전개된다. 영화에서 강태오는 판단불능의 인물로 나온다. 그가 싸이코패스인지, 사기꾼인지, 악마인지 프로파일러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강태오의 정체성은 보는 사람이 알 수 없을 뿐아니라 강태오 자신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살해했다. 그의 누나도 알고 있지만 모른 채 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가 타고난 살인마여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가족을 심하게 폭행하고, 자주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악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태오는 가정폭력으로 '만들어진 악마'다. 
'빙다리 핫바지'로만 보이던 김형민 형사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뚝심에 있다. 그리고 그 뚝심은 그의 배경이 되는 여유 있는 경제력과 함께, 그가 '진짜 형사'의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임이 뒤에 드러난다. 그의 법정 증인 진술은 감동을 준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자기의 직업에 충실하고, 원칙을 지키는 형사가 과연 있을까싶게 진심을 다해 맡은 임무를 수행하려 노력한다.
이 영화는 싸이코패스와 벌이는 심리 스릴러로, 주로 북유럽의 소설과 영화에서 등장하는 내용과 닮은 점이 많은 걸 알 수 있다. 예전에 '양들의 침국'에서도 한니발 렉터 박사는 FBI 심리분석관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판단불가의 싸이코패스였고, 그의 말에 따라 연쇄살인범을 잡는 FBI 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은 한니발 렉터와 심리전을 벌인다. 
우리 주변에는 싸이코패스들이 분명 있다. 단순한 살인자들이 아니라, 냉혹한 살인자이면서 뛰어난 머리로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싸이코패스는 살인을 하고도 은폐하는 능력이 뛰어나 쉽게 적발되지 않는다. 그런 범인을 상대로 증거를 확보하고,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 형사는 분명 남다른 자질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형민 형사처럼 어리숙해 보이지만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형사로는 '콜롬보'가 있다. 이런 민완 형사의 공통점은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내가 범인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범인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출생, 가족들, 성장 과정, 친구들, 성격, 취미, 습관, 성적 취향 등 한 사람의 모든 것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분석해 인간을 이해해야만 그 사람의 심리와 동기, 패턴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형민 형사가 강태오의 과거를 추적하는 것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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