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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파리, 텍사스

by 똥이아빠 2018.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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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 텍사스
좋아하는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고, 다시 찾아보고픈 마음이 든다. 그런 영화들이 꽤 많지만, 어제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로마'를 보고나서 그 영화와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가 떠올라 영화를 다시 찾아봤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의외로 많다. 제목에서부터 두 영화는 '동명이역' 즉 이름이 같지만 지역은 다른 지명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머리속 나침반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뜻한다. '파리, 텍사스'에서 지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주인공 트레비스의 엄마가 태어난 곳이 텍사스에 있는 파리였고, 트레비스의 부모가 사랑을 한 곳도 파리였으며, 트레비스는 파리가 자신이 '만들어진 장소'라고 굳게 믿고 있다. 즉 엄마가 자기를 임신한 곳이 텍사스에 있는 파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트레비스가 한때 여유가 있을 때, 텍사스의 파리에 있는 넓은 공터를 우편판매로 매입했다고 동생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 영화가 1980년대 초반에 만들었으니 벌써 30년도 훨씬 넘은 영화인데, 그때 텍사스 파리는 지금보다 더한 시골이었을텐데, 지금의 텍사스 파리는 한국과 비유하자면 시골의 한적한 면소재지 비슷한 마을이다. 요즘은 구글 지도가 있어서 미국이라면 어느 지역이든 마치 실제 걸으면서 보는 것처럼 풍경을 자세히 볼 수 있는데, 대도시인 달라스에서 조금 떨어진 작고,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동네에 불과하다. 그곳에 땅을 매입한 것은 오로지 트레비스 엄마의 고향이고, 부모가 그곳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고향이자, 나중에 가족과 함께 그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트레비스의 꿈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는 느리게 진행한다.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을 걷는 한 남자. 남루한 옷과 지저분한 턱수염, 쾡한 눈과 거칠고 더러운 피부. 누가 봐도 부랑자이고 노숙자 같은 모습이다. 갈증이 심한 남자는 물을 찾아 다니다 작은 식당에서 얼음을 퍼먹고는 쓰러진다. 그가 깨어난 곳은 지역의 병원이고, 마침 그 식당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의사여서 그는 운 좋게 살아난다.
하지만 의사가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는 남자. 의사는 남자의 지갑에서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거는데, 마침 그의 동생 월트가 받는다. 월트는 로스엔젤레스에 살고 있고, 형과 연락이 끊긴지 4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형제는 월터의 집으로 가기 위해 나서지만,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트레비스 때문에 이틀을 걸려 자동차로 집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있던 트레비스도 동생의 보살핌과 아늑한 동생의 집에서 생활하자 예전처럼 정상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동생 월터의 집에는 그가 잊고 있었던 어린 아들 헌터가 있었다. 헌터는 이제 8살이 되는 아이로 잘 생기고 똑똑하다. 월터는 헌터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었지만 친아버지가 나타나자 헌터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두 사람의 어색한 만남을 없애기 위해 그들 가족이 행복했을 때 찍었던 수퍼8밀리 비디오 영상을 함께 본다. 그 영상 속에서 두 가족-트레비스와 월터의 부부와 아이-은 여행을 떠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헌터는 이제 겨우 4살의 어린 아기로, 두 부부에게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을 바라보는 트레비스와 헌터는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슬퍼진다. 함께 있어야 할 아내이자 엄마인 제인이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트레비스와 헌터는 아버지와 아들이면서도 어색한 사이로 지내고,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헌터가 학교가 끝나 집으로 가려고 나올 때, 길 건너편에 서 있던 트레비스와 만나고, 두 사람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보며 걸어서 집까지 걸어온다. 트레비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헌터가 따라하고, 말없이 그렇게 오래도록 걸어서 집 근처에 다다르자, 트레비스는 도로를 건너 헌터에게 다가가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 장면은 아버지와 아들이 심리적으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와 아들은 손을 잡지 않고, 조금은 어색한 마음의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월터의 아내는 트레비스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제인이 연락을 했으며, 매달 헌터의 은행계좌로 돈을 입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트레비스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제인을 찾으러 가겠다고 말한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돈을 입금하는 은행이 있는 휴스턴까지 아들 헌터와 함께 차를 몰고 떠나는 트레비스. 매달 15일이면 돈을 입금하는데, 그 날에 맞춰 은행 앞에서 기다리다 제인을 만나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15일에 휴스턴 시내에 있는 드라이브 쓰루 은행에 도착하고, 입구와 출구 쪽에서 머물며 들고나는 자동차를 보며 제인을 찾는다. 그러다 두 사람 모두 잠이 들고, 막 잠에서 깬 헌터 앞에 빨간색 쉐비를 운전하는 금발의 여성이 보인다. 헌터는 본능적으로 그 여성이 엄마라는 걸 느낀다. 잠자고 있는 트레비스를 깨워 겨우 빨간차를 뒤쫓아 가는데, 휴스턴 외곽의 허름한 동네에 있는 건물 앞에 도착한다. 트레비스가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성매매를 하는 곳이었다. 직접 몸을 팔지는 않지만, 창문을 통해 여성의 몸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제인은 그곳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 헌터에게 돈을 보내고 있었다.
트레비스는 4년만에 아내 제인을 만나지만, 제인은 창문 너머의 남자를 볼 수 없고,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트레비스는 제인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와 헌터에게 엄마가 그곳에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다음날, 트레비스는 녹음기에 아들 헌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음하고, 다시 제인을 찾아가 그가 겪었고, 생각했던 제인과의 이야기를 천천히, 조용히 말한다. 제인은 창문 너머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다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설움이 복받쳐 눈물을 흘린다.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관객은 두 사람이 왜 헤어졌고, 트레비스가 왜 사막을 헤맸으며, 제인이 왜 사창가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하지만 트레비스의 말을 듣고, 다시 제인의 말을 들으면서-이것은 영화 속에서 헤어진 부부가 서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트레비스와 제인이 관객에게 직접 하는 독백이기도 하다-앞에서 했던 주인공들의 모든 행동을 납득하게 된다.

트레비스와 제인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이었다. 제인은 매우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었고, 트레비스는 그런 제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너무 사랑해서 직장도 다니지 않고 제인 옆에만 있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은 집착이고 소유욕이었을뿐,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트레비스는 자기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제인이 바람을 피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고, 의처증으로 발달해 제인을 괴롭혔다. 다른 여자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제인을 함부로 대했다. 그럼에도 제인은 트레비스를 사랑했고, 그를 걱정했으며, 그를 믿고 기다렸다.
그러다 제인이 임신하고, 아들 헌터를 낳으면서, 상황은 바뀐다. 제인은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고, 아이를 낳아서 자신을 구속하려한 트레비스를 미워했다. 반대로 트레비스는 헌터가 태어나자 다시 제인을 사랑하고, 자신이 잘못했던 행동을 반성하며 용서를 구했다. 제인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짜증을 부리고, 집을 뛰쳐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트레일러에 불이 나고, 트레비스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 상태로 무작정 집을 떠나 달리기 시작했다. 왜 집을 나왔는지, 왜 제인과 헌터를 버리고 부랑자가 되어 거리를 헤매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 이후 트레비스는 제인을 처음 만나는 것이다.
제인은 그렇게 떠난 트레비스를 오래 기다렸지만 결국 트레비스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그것이 헌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헌터를 트레비스의 동생 부부에게 맡기고 집을 떠난다.
두 사람의 독백을 들어보면, 제인의 행동은 출산을 하고 나서 임산부가 겪는 산후우울증일 확률이 높다. 다만 임신 전과 임신 상태에서 트레비스가 보인 타락한 모습에 몹시 실망하고, 절망한 상태였다가 출산과 함께 그 절망적인 감정이 폭발해 남편과 아이를 포기하고 어디론가 도망가고픈 욕망이 솟구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지만, 트레비스는 여전히 제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은 마음을 알면서도 정작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에는 깊은 반성을 하지 않는 이중의 모습을 보인다. 제인은 자기가 했던 과거의 행동이 잘못이었고, 그로 인해 트레비스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빌지만, 트레비스는 아들 헌터와 엄마 제인이 함께 있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은 다시 길을 떠난다.

영화가 두 사람-부부-만의 이야기였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을 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어린 아들 헌터가 존재하면서, 개인과 가족의 슬픔은 더 깊어지고, 울림은 커진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미혼이었는데, 그때는 주로 두 사람의 관계만을 중심으로 보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운 다음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부부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이 바로 8살 헌터임을 알게 되었다.
행복했던 시절에 찍었던 비디오에서 4살의 아기 헌터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그리고 4년이 흘러 이제 초등학생이 된 헌터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간직한 아이가 되었다. 헌터는 부모의 이별로 작은아버지, 작은엄마를 친엄마, 친아빠로 알고 지냈으며, 그에게 친아버지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겪었을 마음의 갈등과 혼란을 생각하면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나마 헌터는 좋은 양부모 아래서 행복하게 자라 퍽 다행이었고, 친아버지를 이해하는 속깊은 아이였다.
호텔에서 혼자 기다리며 떠나간 아빠를 생각하고, 엄마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헌터를 찾아온 제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가 말없이 끌어안는다. 엄마와 다시 만나지만, 아버지와는 다시 헤어져야 하는 헌터. 가족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다. 밤길을 운전하며 어디론가 떠나는 트레비스의 옆모습에서 반짝거리는 건 아마 눈물이었으리라.

이 영화에서 붉은색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사막을 걷는 트레비스가 쓰고 있는 모자는 빛바랜 붉은색 모자였고, 트레비스가 동생네 집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아들 헌터와 관계가 좋아지면서, 다시 아내 제인을 찾아나서는 길에 붉은색 옷을 입고 있다. 아들 헌터도 마찬가지. 게다가 휴스턴의 드라이브 쓰루 은행 앞에서 헌터가 발견한 엄마의 차도 빨간색 쉐비였고, 트레비스가 몇년만에 만나는 아내 제인이 입고 나온 옷이 붉은색 옷이었다.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하는 붉은색은 붉은피 즉 혈연을 뜻한다. 이들이 한 가족으로, 서로 피를 나눈 사이임을 암시하며, 가족이 흩어졌다 다시 만나면서 피가 통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드러낸다. 

영화는 긴 여운을 남기며 끝나는데, 트레비스와 아들 헌터가 만났다 헤어지고, 제인과 아들 헌터가 만났으니 이제 다시 트레비스가 돌아오면 가족은 완전하게 결합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트레비스와 제인은 만나지 않더라도 헌터가 중간에서 부모 사이를 오가며 만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가족이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지고,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증오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길을 떠나야 할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다면, 그것을 치유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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