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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악인전

by 똥이아빠 201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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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인전

이 영화가 이미 무수히 제작되어 관객들이 싫증을 낼 정도가 된버린 ‘조폭' 영화와 다른 점은, 버디 무비라는 것과 조폭 두목과 형사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버디 무비라면 주로 형사 둘이 주인공이거나, 조폭 둘이 주인공이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조폭 두목과 형사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협력은 하지만, 서로 끝까지 경계하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를 경계한다.
영화 ‘신세계'처럼 비장함이 흐르지도 않고, 캐릭터의 행동에 중의적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제목이 적확하게 말하듯, 이 영화의 주인공 세 명은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인물이다. 조폭 두목인 장동수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인물이고, 범죄로 번 돈으로 호사한 생활을 누리며, 부하들을 엄격하게 다스리고, 자기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단호하게 처리하는 성격이다.
영화 시작에서 샌드백을 두드리는 장동수를 보면, 그의 엄청난 몸과 그 다부지고 돌덩이 같은 몸이 휘두르는 주먹에 샌드백을 잡고 있는 부하의 몸이 휘청거리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이 육체적으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관객은 느끼게 된다. 그런데, 단순한 샌드백인줄 알았던 물체 안에 사람이 들어 있고, 장동수의 펀치를 맞고 만신창이가 된 경쟁조직의 부하의 모습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장동수가 얼마나 잔인한 인물인가를 보여준다.
세 명의 주인공은 저마다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장동수는 조폭 두목으로 강인하고 두려움 없는 인물이며, 자신도 잘 알고 있듯, 범죄자이다. 그는 형사 정태석에게 ‘우리 같은 놈들이 있으니까 경찰이 먹고 사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범죄자가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동수와 함께 연쇄살인범을 잡는 형사 정태석은 ‘미친개'다. 그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법을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그도 ‘악인'에 속하겠지만, 처음부터 법을 무시하는 범죄자를 상대하려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를 정태석은 잘 알고 있다.
정태석의 팀장이 장동수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뇌물을 받지 않아서 조폭은 물론 경찰 내부의 팀장과 싸울 때도 떳떳하고 당당하다. 아마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찰의 이상형이 아닐까 싶다.
연쇄살인범 강경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범죄 현장을 분석하면서, 범인의 심리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는데, 강경호의 경우는 어떤 범주에도 들지 않는, 매우 독특한 연쇄살인마다. 그는 특정한 대상을 선택하지도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해한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인데, 싸이코패스이면서 ‘묻지마 살인마'에 해당하는 비정형성 싸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다.

살인 현장에서 연쇄살인범의 행위라는 걸 직감한 정태석은 팀장에게 연쇄살인범으로 수사를 전환하자고 요구하지만 묵살당한다. 이때, 장동수는 혼자 운전을 하다 강경호의 습격을 받아 칼에 찔리지만, 괴력을 가진 조폭 두목답게 칼에 찔린 상태에서도 강경호를 제압한다. 결국 강경호는 장동수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가는데, 강경호에게서 살아 남은 유일한 인물이 장동수다.
장동수는 강경호의 얼굴을 기억하고, 부하들을 전부 풀어 강경호를 잡으라는 명령을 한다. 정태석은 장동수가 강경호의 습격을 받았다는 걸 알고, 찾아가지만 경찰을 우습게 생각하는 장동수는 정태석에게 넘어져 다쳤다고 말한다. 이렇게 세 사람은 살인마, 피해자 조폭두목, 경찰로 엮인다.

영화는 재미있다. 지금까지 훌륭한 조폭 영화-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우아한 세계, 차이나타운, 비열한 거리, 아수라, 무간도 등-가 있었지만, 이 영화는 마동석의 특별한 몸과 세 사람의 연기, 화려하지만 리얼한 액션이 보는 즐거움을 준다.
세 명의 주인공은 물론,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캐릭터가 묵직하고 개성 있으며, 연기가 좋아서 흠잡을 곳이 별로 없는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음악도 잘 받쳐주고 있다. 감독 이름이 낯설어서 찾아보니 ‘대장 김창수'를 연출하고, 이 영화가 두 번째였다. 두 번째 영화에 깐에서 심야상영을 하는 것도 상당한 실력을 인정 받았음을 말한다.

영화의 막바지에 장동수와 정태석이 어떻게 의기투합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꼽씹어 볼 만하다. 법을 집행하는 정태석은, 강경호가 연쇄살인마라는 걸 확신하지만 증거가 없고, 이 상태라면 강경호는 석방될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수배 중인 장동수를 찾아가 자수하라고 설득한다. 장동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이루어온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평생 감옥에서 썩거나, 다시 사회로 나와도 더 이상 조폭두목으로 행세할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정태석은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정태석은 장동수를 믿지 않았지만, 연쇄살인마를 다시 사회에 내보낼 수 없다는 걸 장동수도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의 거래를 한 것이다. 자수를 하면 형량이 상당히 줄어들고, 조직을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 감옥에서 나왔을 때도 조폭두목으로 입지를 잃지 않을 거라고 정태석은 생각하고, 장동수를 설득한 것이다.
영화는 반전을 일으키고, 관객은 기분 좋게 극장을 나올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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