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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국내여행을 하다

강원도, 알찬 겨울여행

by 똥이아빠 201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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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지기 전, '오적회(다섯 명의 적)에서 겨울 여행을 떠났다. 작년(2018)에 처음 시작한 '오적회' 여행은 2박 3일로, 변산, 전주, 목포를 다녀왔다. 그때도 변산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해서 이틀을 묵으면서 자동차로 전주와 목포를 오갔는데, 다들 좋았다는 의견이었다.

올해도 여행 준비를 하면서, 지역은 강원도로 하고 양양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했다. 양양을 중심으로 아래와 위쪽으로 하루씩 다녀보기로 대충 의논만 하고, 모든 일정은 즉흥 결정하기로 했다. 이 전략은 매우 훌륭하게 적중했고, 이번 여행은 우리 일행 모두 만족스럽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일부러 계획해도 어려울 정도의 멋진 일정이었다.

첫째 날.

'오적회'는 옆집에 사는 이웃이고, 나이가 50대, 60대, 70대인 남성들이다. 각자 성격도 다르지만, 잘 어울리고, 각자의 집을 수리하거나 도울 일이 있을 때 흔쾌히 돕고, 밥도 같이 먹으러 다닌다. 나이도 있으니 여행을 빠르게 다니지 못하고,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천천히 다니기로 했다.

오전10시에 마을에서 출발해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용대리로 빠졌다. 날씨는 맑고 따뜻했다. 11월 말이었지만 우리가 사는 마을에는 아직 첫눈이 내리지 않았다. 이전에는 이 무렵에 이미 첫눈이 내렸던 기록이 있는데, 날씨도 따뜻하고 눈도 내리지 않는 따뜻한 초겨울이었다.

용대리의 하늘. 맑고 투명하고 시원하다.

우리 마을에서 용대리를 가려면 크게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양평을 가로지르는 6번 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방법과, 서종IC에서 올라가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에서 빠져 44번 국도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인제, 원통, 38선을 지나는 길이고,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주 도로로 사용하던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개통한 이후 이 도로를 달리는 차는 급격히 줄어서, 도로는 한산했다. 원통에서 44번 도로는 동쪽으로 한계령을 넘어가고, 우리는 미시령이 있는 46번 도로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 백담사를 지나 미시령 터널 입구에 있는 용대리에 도착했다.

용대리의 대표 음식인 황태로 만든 황태구이. 황태가 두툼하고 부드럽다.

모두 아침을 먹지 않았으므로 아침 겸 점심으로 황태구이와 더덕구이가 나오는 정식을 먹기로 했다. 정식에는 황태구이, 더덕구이, 솥밥, 황태국과 밑반찬이 나온다. 용대리에는 이런 황태 전문식당이 여러 곳 있는데, 식당에서는 황태 덕장도 운영하는 곳이 많고, 식당에서 황태를 팔고 있다.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약 20km 정도 거리에 있는 백담사에 들렀다. 백담사 입구 주차장까지는 10km 정도지만, 이곳에 차를 세우고 백담사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백담사 주차장 요금은 3,000원. 버스비는 한 사람당 편도 2,500원으로, 왕복이면 한 사람이 5,000원이다. 주차장 입구부터 백담사까지 거리는 약 7km라고 하는데, 버스를 타고 보는 이 계곡이 절경이다. 걸어서 들어가면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길이지만, 버스로 들어가니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계곡의 좁은 도로는 낭떠러지가 많아 위험했지만, 경관은 절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도착한 백담사는 실망이었다. 오래 전, 백담사가 작고 고즈넉한 절이었을 때를 기억하던 우리는, 새로 지은 건물로 가득한 백담사가 낯설고 마땅치 않았다. 이런 천박한 풍경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고찰이 되는 걸까. 단청까지한 화려한 건물들은 백담사의 이름에 걸맞지 않아보였다. 절을 보러 일부러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다리.
백담사 앞 계곡. 돌이 많고, 이 돌로 탑을 쌓은 사람들이 남긴 돌탑이 매우 많다.
백담사 현판.
스님들이 기거하며 수행하는 공간. 이 공간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만해 한용운 기념관.
범종각
백담사 경내에 있는 나무는 대부분 야광나무다.
만해기념관 안에 있는 만해상.
만해당. 건물 지붕의 처마가 특이하다. 오른쪽 처마의 모양이 보통 볼 수 있는 형태인데, 왼쪽과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극락보전과 그 앞에 있는 3층탑.
너와지붕이 운치 있는 이 건물은 차를 파는 곳이다.
겨울의 파란 하늘과 쓸쓸한 숲이 고즈넉하다.

백담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나와 미시령터널을 지났다. 미시령터널을 빠져나오면 '울산바위'가 오른쪽으로 보이는데, 이 장면이 장관이다. 마침 어제 설악산에 눈이 조금 내려서 울산바위에도 눈이 약간 묻어 있었다. 우리는 양양 쏠비치에 체크인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낙산사를 찾았다. 낙산사는 10년 전, 산불이 옮겨붙어 절이 모두 불에 탔다. 퍽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곧바로 복원사업을 추진했고, 지금은 화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다.

하지만, 낙산사도 예전의 그 절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낙산사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차를 세우기도 전에 주차비부터 달라고 뛰어오는 주차관리원이 4,000원을 받았고, 입장료도 한 사람당 4,000원을 받았다.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주차비 따로, 입장료 따로 받는 것, 주차비도, 입장료도 비싸게 여겨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 또는 십 년 이상 들르지 않으니 이 정도 비용을 치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겠지만, 볼만 한 것도 없는데 돈을 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내도 좋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내용이 있으면 좋겠다.

낙산사 의상대에서 바라 본 동해바다.
낙산사 의상대. 새로 지은 건물이다.
낙산사의 상징인 해수관음상.
동해 앞바다에는 오징어배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낙산사에서 해가 넘어가 어둑해질 때 나왔다. 낙산사에서 바라 본 풍경은 동해바다가 전부였다. 우리는 숙소가 있는 쏠비치에서 가까운 수산항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수산항은 아주 작은 항구로, 음식점도 몇 개 없었다. 동해바다에 왔으니 생선회를 먹는 것이 당연한데, 이번에 우리가 선택한 저녁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자연산 생선회를 주문했는데, 우선 값이 너무 비쌌고, 양은 적었다. 자연산이니 비싼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관광지라서 외지 사람에게 음식값을 비싸게 책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첫째 날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냈다. 숙소에서 다같이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여행 둘째 날은 바닷가 둘레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바다부채길'로 명명한 이 길은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다녀와서 추천한 곳으로, 편도 거리가 약 1.6km 정도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다. 이 바닷길은 국내 유일 해안단구로 천연기념물 437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마침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걸으면서 찍은 사진 몇 장이 아래 있다.

'바다부채길'을 걷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썬크루즈 호텔'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과, 심곡항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심곡항에서 출발했다. 어느 쪽이든 주차비는 없고, 입장료만 있다. 

오전에 '바다부채길'을 걷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건물이 한옥이었는데, 이 한옥을 지은 사람이 꽤 유명한 목수라고 한다. 우리는 해물수제비와 모두부, 순두부를 주문해 먹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만족스러웠다.

식당 마당에 서 있는 모과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점심을 먹고, 다음 행선지로 삼척에 있는 동굴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이번 여행은 즉흥 여행이어서 미리 계획한 것은 없었다. 동굴을 보러 가기 전에 중간에 동해휴게소에 들른 것도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우리는 휴게소에서 멋진 풍경을 보았다.

동해휴게소 동해방향은 지형이 높은 곳에 있어 바다를 보기 좋은 장소다. 건물 꼭대기에 전망대가 따로 있고, 실내에서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동해휴게소' 바로 옆에 망상해수욕장도 있다. 

동해휴게소에서 바라 본 동해와 바로 앞 한옥민박 건물들.
파란 하늘과 바다가 더 없이 아름답다.

우리는 동해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한참 바라보며, 더 없이 좋은 날씨와, 바다 풍경을 감탄했다. 삼척의 동굴을 보려면 내륙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데, 삼척에는 동굴도 많고, 유명한 동굴로 '환선굴'이 있다. 검색해보니 환선굴 바로 옆에 '대금굴'이 있었다. 사전 정보도 없이 대금굴을 보기로 결정했지만, 하루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는 대금굴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당일 관람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예약이 차지 않으면, 당일이라도 표를 구입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대금굴과 환선굴은 매표소가 붙어 있다. 표를 구입해 조금 걸어 올라가면 두 굴이 갈라지는 길이 나오고, 대금굴은 여기서 몇 백 미터를 더 걸어가면 동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는 건물이 나온다. 그곳까지 걸어가는 길에 계곡이 있는데, 계곡물이 겨울에도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계곡물은 대금굴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대금굴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사진이 없지만, '대금굴'은 우리 모두 충격을 받았다. 대금굴은 크지 않은 굴이지만, 굴 내부에서 볼거리가 많았다. 무엇보다 굴 전체에 흐르는 엄청난 양의 물이 관람객을 압도했다. 굴 입구로 들어가려면 모노레일을 타야 한다. 모노레일은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며 계곡 옆을 지나가는데,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힘차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모노레일이 동굴 입구 어둠으로 들어가면, 좁고 어두운 통로를 한참 지나 모노레일이 멈추는 작은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내린 사람들은 이어폰이 달린 무선수신기를 받아 목에 걸고, 안내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 동굴 구경을 하게 된다. 동굴은 입구부터 계단을 오르게 되고,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조금씩 오르막이 되다 동굴 끝에서 다시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오게 된다.

동굴은 좁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고, 동굴 깊이가 약 700미터라고 하는데, 너무 깊지 않아서 들어가고 나오는 시간이 적당했다. 동굴은 철계단이 튼튼하게 잘 놓여 있어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계단 옆 가드레일을 잡고 다니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또한 곳곳에 LED 조명을 설치해 어둡지 않았고, 종유석도 잘 보이도록 조명을 설치한 곳이 있었다. 무엇보다 동굴 구경을 시작하는 입구에 폭포가 있는데, 이 폭포가 '대금굴'의 상징이자, 다른 동굴과 다른 특별한 장관이기도 했다. 폭포는 높이가 약 8미터 정도로, 밖에서의 기준으로는 낮지만, 그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웅장했다. 동굴이라 쏟아지는 폭포의 물소리는 동굴 전체를 울리고 있었고, 물보라가 동굴 안에 퍼져나갔다. 웅장하고,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폭포는 동굴의 입구 쪽에 있으니, 그 위로 물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동굴로 들어가는 길은 물줄기 위로 세워져서 발 아래 폭포와 물줄기가 내려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동굴 안에는 다양한 모양의 종유석이 자라고 있었고, '대금굴'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활굴'이라고 한다.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의 끝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웅덩이가 있고, 그 웅덩이의 물속 틈이 갈라져 그속에서 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 물은 지하수가 아니라, 계곡을 흐르는 물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동굴탐사진에서는 '대금굴'과 '환선굴'이 서로 연결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는 두려움을 일으킬 정도로 깊고 어두워서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여기서 넘치는 물이 아래로 흐르면서 동굴 입구의 폭포를 만들어 내는데, 폭포의 물줄기는 몇 군데서 모여드는 듯 했다.

약 1시간 정도의 동굴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오전의 그 맑고 투명한 날씨는 어느새 구름이 잔뜩 드리워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떨어질 것 같았다. '대금굴'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강원종합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어 일행 가운데 두 분이 구경을 했다. 구경한 두 분의 말을 들으면, 이 '강원종합박물관'은 사설 박물관이고, 전시물이 너무 많고, 진기한 것들이 많아서 볼만하다고 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삼척 시내에 있는 '죽서루'에 들렀다. '죽서루'는 '관동 제1루'라는 명칭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누각인데, 지금은 공사를 하고 있어 누각에 오르지는 못했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바로 아래 넓은 개울이 흐르고 있어 예전에는 퍽 아름다웠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개울 건너편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 주변 풍경은 평범했다. 다만 '죽서루' 건물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은 있었다. 가로로 길게 서 있는 이 누각은 크기도 다른 누각보다 크고, 건물의 비례, 디자인이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죽서루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죽서루 마당과 정원도 깔끔하고 고즈넉하다. 시내에 있지만 이 장소는 조금 특별한 느낌이었다. 마당에 있는 나무들도 단풍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 키 큰 나무가 많아서 한여름에는 특히 아늑한 느낌이 들 것으로 보였다.

건축물과 공간, 담장의 경계 등을 보면, 죽서루는 고려시대(1266년)에 세워졌지만, 조선시대 들어와 중창하고 보수를 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건물이다. 죽서루의 담장은 낮아서 내부와 외부의 단절이 아닌, 조심스럽게 공간을 나누는 기능을 한다. 조심스럽되 함부로 공간을 침범할 수는 없는 감정이 든다. 즉 권위적이지는 않아도, 얕볼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죽서루는 양반의 건물이며, 양반, 권력자를 위한 건물이다. 죽서루에 오르는 자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고, 지식인들이었다. 굽이도는 강을 끼고 서 있는 죽서루에서 양반들은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이 공간은 담장을 경계로 백성이 들어가기 어려운 장소였고, 백성의 삶과 유리된 장소였다. 당대(조선시대)에 이 건물은 계급을 구분하고, 권력의 차별을 드러내는 건물과 공간이었지만, 오늘날 이 장소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죽서루를 보고, 해가 뉘엇해지면서 저녁밥을 먹으러 길을 떠났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메밀국수집이었는데, 양양에서도 북쪽 내륙에 있었다. 삼척에서 양양으로 가는 길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날은 일찍 어두워졌고, 우리가 찾아가는 메밀국수집은 좁은 시골길을 한참 달려가야 했다. 가는 길이 좁고, 어둡고, 아무 것도 없는 산속같은 곳이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겨우 저녁 6시가 조금 넘었음에도, 시골의 한적한 마을길은 어둡고 쓸쓸했다.

다행히 식당이 문닫기 전에 도착했고, 우리는 수육, 감자전, 메밀국수를 주문했다. 이 식당은 메밀국수 전문점으로 꽤 유명한 듯했다. 명성에 걸맞게 음식은 맛있었다. 함께 나온 동치미 국물도 시원했고, 메밀국수는 메밀 함량이 높아서, 부드러웠다.

메밀국수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왔지만, 시간은 여전히 초저녁이었다. 우리는 숙소 지하에 있는 닭튀김집에서 닭튀김 한 마리를 사 와서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서너 시간 잡담을 했다. 오늘 본 대금굴에 관한 느낌, 별 의미 없는 소소한 잡담, 일상의 이야기, 한두 가지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까지,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여행 사흘째. 어제 저녁부터 내리는 비는 밤새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아침이 되어도 비는 내렸고, 설악산에는 눈이 내릴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눈이 온다면, 권금성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설악산으로 향했다. 양양과 속초 시내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설악산 입구에 다가가자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있어서 케이블카 매표는 지연되었고, 폭설로 케이블카 운행을 하지 않겠다는 안내가 있었다. 우리는 매표소 앞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약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매표소로 가봤다. 이곳에서 10분 정도를 더 기다리니 표를 팔기 시작했다. 눈은 끊임없이 퍼붓고 있었고, 우리는 첫번째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랐다.

권금성에는 눈이 25cm 정도 쌓였고, 나뭇가지에 쌓인 눈으로 가지가 축축 쳐졌다. 쏟아지는 눈으로 주위는 온통 하얗게 보였다. 이렇게 아름답고 장관인 풍경은 평생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 권금성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눈구름이 바로 눈앞에 있어 다른 풍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세상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우리는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설악산 입구의 주차장에서 바라 본 신흥사 일주문. 일주문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신흥사 일주문에 걸린 현판. [조계선풍시원도장설악산문]이라고 써 있다. 조계종의 선불교가 시작된 배움의 마당인 설악산 산문이라는 뜻이다.

권금성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을 때, 눈과 비는 조금씩 그쳐가고 있었다. 날씨가 포근해서 나무에 쌓인 눈이 많이 녹았다.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점심을 먹기 위해 속초 아바이마을로 향했다. 아바이마을은 속초에서 유명한데, 비는 여전히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한 식당에 들어가 아바이마을에서 유명한 순대, 생선구이, 물회, 순대국을 주문했다.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는 맛있었다. 생선구이도 좋았고, 물회는 그저그랬다. 순대국은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어서 아바이마을의 이름에 걸맞았다.

아바이마을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비가 내리는 속초를 떠나 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태백산맥을 통과하는 터널을 지나자 구름이 걷히고, 눈부시게 밝은 하늘과 햇살이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 비가 내리는 동해안에서 태백산맥을 지나자 화사하고 눈부신 하늘과 햇살을 만나자 조금 어리둥절했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짧은 여행이었고, 아무 계획도 하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2박3일 여행은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청년이었고, 잠시 집과 가족을 잊고 떠돌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짧은 여행을 위해 긴 일상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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