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더 라이트하우스

by 똥이아빠 2020. 1. 30.

더 라이트하우스

 

영화를 보고 선뜻 글을 쓰지 못한 건, 이 영화가 보여 준 흑백의 강렬한 이미지와 인물의 격렬한 감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광기에 휩싸인 두 사람의 행동은 파멸을 예고하지만, 그들이 이 등대만 있는 외딴 섬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곱씹어봤다.

1881년 7월,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작은 섬에 홀로 선 등대를 관리하는 두 명의 관리인이 들어오고, 4주 동안 등대를 관리했던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나간다. 등대 관리는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뤄 4주 동안 하는데, 등대관리인 토머스 웨이크와 처음으로 등대 관리 일을 하는 엘프라임 윈슬로는 이 등대로 들어오면서 처음 만났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나간다. 등대를 관리하기 위해 잡다한 노동을 하는 엘프라임의 상황과, 등대의 전등을 독점해서 관리하는 토머스의 업무는 분명하게 나뉘어 있고, 등대장 토머스는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토머스는 엘프라임의 전임이자 토머스와 함께 일했던 관리인이 미쳐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살한 등대원은 죽기 전에 인어를 봤다고 했고, 바다새(갈매기)를 죽이면 불행이 닥친다고 경고하지만 엘프라임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엘프라임은 혼자 밤바다에 나갔을 때, 통나무 사이에서 죽어 있는 남자와 인어의 환영을 본다. 토머스와 엘프라임이 보는 환영과 환상은 자신의 죄책감과 응어리진 감정에서 발현된다. 토머스는 젊었을 때 선원으로 배를 타고 넓은 세상을 돌아다녔다. 나이 들고 선원에서 등대를 지키는 일로 바꾸고 꽤 오래 이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엘프라임은 등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벌목꾼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는 집을 떠나 여러 직종에서 일을 했지만 밑바닥을 전전한 것으로 보이고, 돈을 모아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 집을 짓고 조용하게 살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과 헤어진지 오래되었고, 감정을 교류할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을 외톨이로 살아왔다고 짐작하게 된다.

엘프라임은 낮에 등대 주변의 잡다한 일을 하고 토머스는 밤에 등대를 지키는 일을 한다. 불을 밝히는 등대 꼭대기에는 오로지 토머스만 올라가고, 엘프라임은 절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그들이 등대를 떠나는 날, 태풍이 불고, 보급선은 오지 않았다. 엘프라임은 해변에서 인어의 환영을 보고, 태풍이 불어 식량이 물에 젖는다. 보급선이 오려면 태풍이 멈춰야 하는데, 등대장은 과거에 7개월동안 보급선이 오지 않았던 적도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등대장이 숨겨놓은 식량(통조림)을 꺼내 먹으며 태풍이 멎길 기다린다.

토마스 하워드. 엘프라임 윈슬로는 자기 본명이 토마스 하워드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가 말한 엘프라임 윈슬로는 벌목일을 할 때 조장의 이름이었으며, 그가 나무에 깔려 죽었노라고 고백한다. 토머스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통발에서 외눈박이 잘린 목을 발견하고, 인어와 섹스를 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태풍과 폭우가 몰아치고, 집도 모두 물에 잠긴 상황에서 토마스 하워드는 등대장이 적어 놓은 업무일지에서 자기를 무보수로 해고할 것을 건의한다는 내용을 보고 격분해 등대장을 폭행한다. 그리고 목줄을 매 구덩이에 생매장을 하지만 등대장은 살아나 토마스 하워드를 공격하고, 토마스는 하워드를 살해한다. 마침내 토마스 하워드는 등대의 꼭대기, 불을 밝히는 등이 있는 곳에 올라가는데,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을 받아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바닷가에서 새들에게 먹히며 죽어간다.

 

등대는 불을 밝혀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린다. 안개가 드리우면 소리를 내고, 밤에는 불을 켠다. 등대는 뱃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다. 뱃사람으로 일하던 토머스는 배에서 내려 등대로 온다. 그가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배에서 반란이 있었고, 수많은 선원이 죽었을 걸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어쩌면 반란에서 도망한 선원일 수도 있다. 

토머스는 밤에 혼자 등대 전등 앞에 앉아 전등을 바라보며 환상을 보고, 고통을 느끼거나 쾌락을 느낀다. 등불의 환상은 토머스의 트라우마와 무의식을 반영한다. 마지막에 엘프라임이 토머스를 죽이고 등대에 올라 전등을 바라볼 때, 그가 본 것은 공포였다. 그가 저지른 죄악의 환영을 보고 충격을 받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는다. 

등대는 빛을 비추지만, 빛에 다가갈 수 없는 두 사람은 자신을 비추는 빛(양심)을 바라보며 죄의식이 드러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죄를 지은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똑바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고, 양심과 마주하면 괴롭고 고통스럽다. 두 사람의 행동은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죄의식이다.

등대는 구원의 상징이지만, 죄 지은 자가 쉽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들은 구원을 바라지만,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속죄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영화의 미장센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단순하고 단조롭다. 외딴 섬의 두 사람이라는 장치부터 강렬한 흑백은 이 이야기가 오래된 과거의 시간임을 말한다. 두 인물은 가난하고 무지한 노동자들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고, 이성과 지성보다는 본능과 감각에 더 쉽게 반응한다. 

윌리엄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격렬하다. 주어진 상황도 예사롭지 않지만, 불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위태롭다는 본능적 감각으로 광기에 휩싸이는 연기는 흑백의 화면에서 훨씬 드라마틱하다.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0) 2020.07.01
더 배터드 바스터즈 오브 베이스볼  (0) 2020.04.19
터미널  (0) 2020.03.22
캐스트 어웨이  (0) 2020.03.21
그레이스의 몰락  (0) 2020.01.30
블랙 매스  (0) 2020.01.18
미드웨이  (0) 2020.01.09
찰리 윌슨의 전쟁  (0) 2020.01.07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0) 2020.01.05
아이리시맨, 미국현대사의 한 장면  (0) 2019.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