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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by 똥이아빠 202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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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이건 그냥 게임일 뿐이야.'

아버지와 딸은 먼 길을 돌고 돌아 그렇게 만났다. 가장 훌륭한 타자라도 열 개의 투구에서 겨우 세 개를 맞힐 뿐이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실수와 실패를 한다. 지나간 시간은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고, 슬픔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감춘 채.

거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은퇴를 3개월 남긴 프로야구 스카우터로, 재계약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지막 1지명 선수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가까운 곳에 사는 딸 미키(에이미 아담스)는 큰 로펌에서 일하는 실력 있는 변호사다. 거스는 자신이 늙었고, 곧 은퇴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뒷방 늙은이로 포치에 나와 앉아 맥주나 마시며 평생을 보내게 될 거라는 불안을 마음에 담고 있다.

딸이 가까이 살지만, 만나서 밥을 먹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것도 다정한 부녀지간이 아니라 낯설고 어색한 사이처럼 서먹할 뿐이다. 거스는 눈이 침침해 물건에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동네 병원에 들러보는데, 의사는 녹내장이거나 황반변셩일 가능성이 있으니 큰 병원을 예약해주겠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스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무뚝뚝하고 고집 센 거스는 그동안 프로야구 스카우터로 꽤 명성이 높았지만, 나이도 들고 컴퓨터를 전혀 할 줄 몰라서 젊은 스카우터들이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선수들 통계를 이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선수를 직접 보고 자신의 경험으로 좋은 선수를 판단한다. 

이제 거스의 시대는 저물었다. 거스도 그걸 모르지 않지만, 자신이 퇴물이라는 걸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미키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료 스카우터인 피트(존 굿맨)가 찾아와 아버지와 함께 이틀 정도 동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거절하지만, 결국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버지와 동행한다. 미키는 다른 사람이 보면 능력 있는 변호사로 꽤 성공한 인물로 보겠지만, 미키 자신은 대학 때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깊은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그가 겨우 여섯 살에 엄마가 죽었고, 아버지는 자기를 삼촌네 집에 맡긴 채, 몇 년 동안 사라졌다 열세 살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 뒤로도 미키는 기숙학교에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미키는 아버지가 자기를 버린 거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비참해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마음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미키의 이름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미키 맨들'에서 따 온 것으로, 아버지 거스는 미키가 아들이었다면 당연히 야구를 가르쳤겠지만, 딸이어서 야구를 가르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있다.

거스는 불안정하게 떠도는 자신의 삶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올바르게 자라지 못할 거라는 불안으로 동생에게 맡겼지만, 정작 미키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아빠와 함께 다니던 어린 시절이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삶은 엇나갔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두고두고 마음 아픈 사연이기도 하다.

미키가 여섯 살 때, 아빠와 잠깐 떨어져 낯선 남자에게 끌려가 성추행을 당하기 직전, 거스가 미키를 구했고, 성추행하려던 놈을 흠씬 두들겨팼다. 그 뒤로 미키는 삼촌 집에서 자랐고, 7년 동안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거스가 때려눕힌 성추행범은 죽었고, 거스는 과실치사로 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아버지와 딸은 짧은 여행을 하며 오래 묵혔던 감정을 털어 놓는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 시간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며, 아버지와 딸로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거스가 스카웃했던 뛰어난 투수 조니(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스카우터로 나타난다. 조니와 미키는 가까워지고, 프로구단이 찾고 있는 유망주 보 젠트리(죠 마싱글)의 1차 지명을 두고 각 구단에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적어도 아버지와 딸이 간직한 오래된 슬픔과 아픔이 치유될 거라는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미키가 발견한 진짜 실력있는 투수 리고베르토 산체스의 등장과 미키와 조니의 결합, 거스의 재계약 등 흐믓한 결말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아내의 무덤 앞에서 'You are my sunshine'을 부르며 흐느끼는 거스의 모습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미키의 마음 깊은 곳에 흐르는 깊은 슬픔의 강을 잊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건 그런 보이지 않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당연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감독은 로버트 로렌즈로,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체인질링], [그랜 토리노], [우리가 꿈꾸는 기적:인빅터스], [히어, 애프터], [제이, 에드가]의 제작을 했고, 이 영화는 제작과 감독을 했다.

시나리오는 랜디 브라운으로 이 영화가 첫 시나리오였다.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것은 매우 아쉽다. 훌륭한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고, 연기도 모두 훌륭하며, 스토리가 진부하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따뜻한 결말로 이어지는 건 여전히 인간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같은 야구를 소재로 다룬 '머니볼'과는 반대 지점에 서 있다. 머니볼은 기존의 스카우터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선수 스카웃을 수학공식과 확률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도입해 컴퓨터로 치밀하게 계산한 다음 선수를 트레이드하거나 사오는 방식을 최초로 도입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도 거스가 속한 구단에서도 젊은 스카우터는 컴퓨터로 선수를 고르고 있고, 나이들어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거스 같은 인물은 은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경험과 직관을 믿었던 과거의 스카우터와 컴퓨터를 활용하고 데이터를 믿는 현재의 스카우터의 강렬한 대비이자, 과거에 대한 향수이며,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각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미키 역시 능력을 인정 받던 로펌을 그만두고,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야구로 돌아온다. 미키가 야구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되찾기 위함이라는 걸 관객은 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안쓰럽고 대견하다. 잘 나가는 현대적 직업인 변호사를 포기하고, 몸을 더 많이 쓰는 야구 프로모터가 되는 것은 어쩌면 퇴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미키에게는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이다. 거스도 딸이 변호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것을 보면, 비록 아들처럼 선수로 뛸 수는 없어도 야구를 사랑하는 딸이 대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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