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윌슨의 전쟁
내용은 기대하지 않고, 멋진 배우들이 나와서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좋은 영화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실존 인물들도 생존한다. 원작은 미국 종군기자인 조지 크릴이 쓴 책이다. 이 영화의 장점은 미국 의회에서 기밀로 분류되는 정부 예산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돈'을 중심으로 놓고 따라가면 흥미롭다.
하원의원 찰리 윌슨(탐 행크스) 텍사스주가 지역구인 연방 하원의원이다. 그는 마약도 하고, 스트리퍼와 나체로 목욕도 하는 등 사생활이 지저분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수완이 좋아서 지역구에서 인기 있는 의원이다. 그의 의원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젊은 여성들이고, 최측근 보좌관도 젊고 예쁜 여성(에이미 아담스)이다. 찰리는 속물이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지만 정보기관의 예산을 담당하는 소위원회에 속해 있어서 실세에 속한다.
쏘련은 1979년 12월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왜 침공했을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978년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쏘련을 지지하는 정부를 세웠다. 타라키는 1917년에 파슈툰족에서 태어나 인도 봄베이에서 야간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배웠고, 카불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그가 카불대학을 다닐 때 급진적 마르크스주의를 만났다. 1965년 인민민주당을 창당했고, 1965년 의회 선거에서 선출되었으며, 좌파 신문을 발행했지만 한 달만에 정간당한다.
1978년에 일으킨 쿠데타는 타라키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일으킨 것이며, 곧바로 당시 대통령이던 무함마드 다우드와 그의 가족을 가택연금하고 대통령을 살해했다. 그리고 타라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내부 권력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되다가 타라키와 동지 관계였던 하피줄라 아민이 1979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이 과정에서 아민은 쏘련의 브레즈네프와 비밀협상을 했고, 타라키는 살해당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쏘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곧바로 아민도 살해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극좌 그룹이 권력을 찬탈하면서 비극이 발생하는데,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폴 포트도 극좌였으며, 올바른 공산주의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타라키나 아민은 같은 파슌툰족이고, 대학도 똑같이 카불대학과 미국 콜롬비아 대학을 나온 매우 가까운 동문이고 동지였으며, 함께 마르크스를 배운 공산주의자였음에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결국 동지를 죽이는 잔혹한 모습을 보인다.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동지를 죽이는 것은 흔하고 흔한 사건이다. 김일성도 한국전쟁의 책임을 물어 남로당계 박헌영과 이승엽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공산주의자 동지들을 학살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도 동포를 무수히 학살했으며, 스탈린도 정적을 수만 명 처형했다. 공산주의 이념은 고결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인간들의 품성이 고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지를 학살하는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극좌 그룹이 아프가니스탄의 권력을 장악하고, 폴 포트나 스탈린처럼 정적을 살해하자 아프가니스탄 민중은 분노하고 반정부 투쟁을 일으켰다. 좌파 정권은 반정부세력의 정치인, 학생, 시민을 체포하고 학살했다. 이 투쟁은 매우 격렬했으며, 좌파 정권은 반정부세력에 밀리기 시작했고, 타라키는 쏘련에 지원을 요청했다. 타라키의 요청을 받은 쏘련은 초기에 군사고문을 배치할 생각이었지만, 곧바로 전면 침공을 하게 되는데, 쏘련은 두 가지 판단을 했던 것같다. 친쏘련 좌파 정부가 요청했지만, 그 정부는 이미 민중의 지지를 잃었고, 그대로 두면 좌파 정부는 타도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쏘련이 들어가서 좌파 정부를 접수하고, 이 소요를 진정시키면 쏘련의 인기와 지지가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이 중동에 위치해 있으니 중동에 대한 쏘련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온건한 친쏘련 정부를 세우고, 아프가니스탄을 쏘련의 영향력 아래 두자는 판단이 그것이다.
실제로, 쏘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곧바로 극좌 그룹의 대표, 동지인 타라키를 죽이고 대통령이 된 아민을 처형한다. 쏘련은 분열된 아프가니스탄을 통제하려 했지만, 타라키와 아민을 반대했던 반정부세력은 곧바로 반쏘련 투쟁을 전개한다. 이들이 바로 무자헤딘이다.
쏘련은 친쏘련 아프가니스탄 괴뢰 정부를 세웠으나 기존의 극좌정부와 쏘련에 저항하는 반정부 조직이 나타나고, 이들은 이슬람을 중심으로 결집했으며, 게릴라 전술로 쏘련에 저항했다. 쏘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 초기에 미국은 관망했지만, 미국이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쏘련 전쟁에 개입했는가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바로 이 영화다.
아프가니스탄은 왕정국가였지만 1973년에 쿠데타로 왕정이 사라지고, 이후 여러 번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공산주의자로 구성된 세력이 1978년, 1979년 연속으로 쿠데타와 내부 권력투쟁으로 권력을 차지했는데, 이 시기는 이란에서 시아파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호메이니가 혁명을 일으켜 이란 정부를 뒤집고 이슬람 근본주의로 회기하던 시기였다. 이란을 중심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결집하기 시작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공산주의 집단과 쏘련에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미국 의회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기 위한 정보기관의 자금을 처음에는 5백만 달러를 책정했다. 하지만 찰리 윌슨의 지역구인 텍사스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본가 가운데 기독교 근본주의자를 중심으로 쏘련에 저항하는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거액 후원자이자 옛날 애인 조앤 헤링(줄리아 로버츠)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찰리 윌슨은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는 CIA의 중간간부(필립 시모어 호프먼)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다.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정보기관에서는 미국이 직접, 본격 개입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미국이 무기를 지원하면 쏘련의 반발과 국제 여론에서 비판을 받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막강한 무력으로 침공한 쏘련에 맞서 싸우는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은 소총으로 맞서 싸울 뿐이었다. 열악한 군수물자를 확인한 찰리 윌슨은 CIA 요원과 상의하는데, 미국이 직접 개입한다는 증거를 감추고, 제3국을 통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을 마련한다. 쏘련에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를 마련하려면 처음 지원한 5백만 달러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찰리 윌슨은 정보소위원회를 통해 군비 지원금을 증액하는 로비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한 로비는 5백만, 1천만, 2천만 달러로 계속 증액되었으며, 찰리 윌슨과 CIA는 파키스탄, 이집트, 이스라엘까지 끌어들여 쏘련의 무기를 이스라엘 무기상에게 사들여 아프가니스탄 반군에게 지원한다. 이렇게 지원된 무기로 무장한 반군은 쏘련을 상대로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되고, 찰리 윌슨과 CIA는 반군이 파괴한 헬리콥터, 전투기, 탱크의 숫자를 의회에 보고하면서 군비 증액을 요구한다. 쏘련의 헬리콥터 한 대 가격이 2천만 달러인데, 불과 7만 달러짜리 미사일로 추락시켰다는 구체적 증거는 의회에서 강력한 증거로 채택되어 결국 5억 달러까지 증액된다. 최초 예산보다 무려 100배가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5억 달러를 내놓도록 해서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하는 예산은 10억 달러, 1조 원에 이른다. 이 돈은 모두 반군의 무기를 구입하는데 썼으며, 결국 쏘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10년 동안 고통을 당하게 된다.
미국은 쏘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을 두고, 미국이 베트남에 침공해 쩔쩔매다 결국 패퇴한 것을 상기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한 근본 이유는 쏘련도 미국처럼 전쟁의 늪에 빠져 끝도 없는 소모전을 치르며 망가지는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의회는 항목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정보예산에서 전쟁 비용을 지원했으며, 결과도 미국이 원하는대로 되었다.
영화는 쏘련 철수까지 보여준다. 찰리 윌슨과 CIA,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은 자축했고 쏘련은 약소국가에 패한 채 망신을 톡톡히 당했으며, 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쏘련의 붕괴에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찰리 윌슨은 전쟁이 끝난 아프가니스탄에 학교를 짓기 위해 예산을 달라고 하지만, 하원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전쟁비용으로 5억 달러는 줄 수 있지만, 학교를 짓기 위한 5백만 달러는 줄 수 없다는 미국의 냉정한 태도는 미국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 이후의 상황, 쏘련이 패퇴하고, 이슬람 근본세력이 분열하고, 군벌들이 난립하면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소수 반군 집단이었던 탈레반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게 된다. 탈레반의 구성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부족인 파슈툰족이다. 이들이 장악한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회귀하면서 그동안 주류 정치를 이뤘던 좌파,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있었다. 공산주의는 거의 소멸되었고, 일반 시민의 기본권도 억압당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할 때는 민주주의, 인권, 여성의 활동 등 사회 전반에 걸치 개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들이 기존의 법 질서와 종교 체계를 무시하고 빠르게 민주주의 개혁을 실현하려던 것이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다수 인민에게 거부감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내분으로 지리멸렬하다 다시 미국의 침공을 당하는데, 이 사건은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와 직접 관련이 있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서 탈레반을 궤멸시키며 불과 2개월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다. 미국은 9.11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을 잡기 위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를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고,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탈레반은 미국이 쏘련과 싸우라고 지원한 약 1조원어치의 무기로 무장한 채, 쏘련과의 실제 전투경험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조직해 미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한 무기에 맞아 죽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은 2003년부터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하고-이때 명분이 이라크에 대규모 살상무기가 있다는 것이었지만 결국 미국의 거짓말로 드러났다-미군 병력이 중동에서 갈라지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끝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쏘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패퇴할 때까지 10년이 걸렸는데, 미국은 2001년에 침공해 18년이 지난 지금도 발을 빼지 못하고 전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패배한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명분 없이 철군하는 건 베트남에 이은 두번째 패배이자, 훨씬 크나큰 데미지를 입게 되므로, 당장 철수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면서 소모전을 치르고 있지만, 당장 철수할 수 없는 이유는 당연히 미국의 이익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오는 광물-우라늄-은 물론, 이 지역이 주요한 마약 생산지라는 것, 바로 이웃에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이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 핵무기가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청하는 미국은 끝없는 소모전을 치르면서도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국방자본이 전쟁을 부추기고, 군수물자를 비싸게 팔아먹는 구조적 관계까지 얽혀 있어 미국의 침략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쓸 줄 몰랐는데, 아프가니스탄의 민중들만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 중동의 여러 나라는 내전과 이슬람 근본주의, 외세의 침략 등으로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태다. 어떤 경우라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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