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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y 똥이아빠 2020.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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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몇년 전, 이 영화를 보고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리뷰를 쓰지 않고 지나갔다. 엊그제 '다스뵈이다'에서 김어준 총수가 이 영화를 다시 언급했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분명 낮게 평가된 영화라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복남...'은 김기영 영화 세계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화를 만든 장철수 감독이 김기영 사단에서 조연출로 오래 일했고, '김복남..'으로 장편 데뷔를 했으니, 장철수 감독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면서, 그가 배운 김기영 영화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복남...'은 여성주의 영화, 여성영화,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근본으로 보면 이 영화는 '스팔타쿠스'와 같다. 폭력과 억압, 차별에 저항하는 노예의 반란처럼,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자의 분노가 마침내 권력자 - 이 영화에서는 남성들, 시고모, 동네 할머니들 - 의 피를 부르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영화의 함의는 다양하다. 주인공 복남은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섬에서 살아 온 여성이다. 반면 해원은 어려서 고향 섬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세련된 도시 여성으로 성장한다. 두 여성은 어려서 가장 가까운 동무로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30년 넘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다. 물론 해원은 복남의 편지를 무시하고, 고향에 관한 기억도 그리 애틋하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가 곤란하게 되면서 복남의 호소에 응답한다.

해원은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지지만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해원이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는 상황은 한국노동자의 열악한 고용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여성노동자로서의 해원이 곧바로 사회적 약자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해원이 해고당하는 원인이 되는 사건을 보면, 해원은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냉정하고 모질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해원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겸손함,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것은 해원과 복남의 어린 시절 모습이 교차 편집되면서 보여주는 장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어려서의 해원은 복남과 사이좋은 친구이고, 서로에게 따뜻한 동무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성인 해원은 쌀쌀하고 냉정한 인물이다. 그는 전세금을 대출받으러 온 할머니 - 폐지 수레를 끌고 온 것으로 보아 혼자 가난하게 사는 할머니다 - 에게 3천만원이 아닌, 2천만원까지만 대출이 된다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해원의 옆자리에 있던 후배가 할머니가 바라는대로 3천만원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해원은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에 화장실에서 누군가 문을 잠그고 나가서 해원은 몹시 고생하며 화장실을 탈출하는데, 해원은 후배의 뺨을 때리지만, 정작 범인은 청소부 아주머니였다. 해원이 같은 여성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그녀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만, 해원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도시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 없이 홀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원은 여성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운전하다 보게 되는데, 사건의 목격자로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지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는 피해 여성이 남성 폭력배들에게 잔인하게 폭행당해 결국 살해당한 사진을 보면서도 끔찍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목격자로 지목된 것을 귀찮아 하고, 이런 사건에 엮이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경찰의 잘못으로 해원은 범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고, 협박을 받게 되면서 불안은 더욱 커진다. 그런 점에서 해원도 피해자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해원은 복남이 바라는대로 고향을 방문한다. 회사에서 사고를 친(?) 것 때문에 강제로 휴직을 하게 되고, 폭력배들이 찾아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기에, 한동안 서울을 떠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해원의 고향인 '무도'는 작은 섬이다. 하루에 배가 한 번만 들어오는 곳이고, 섬에 사는 사람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섬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이며 복남의 딸 연희가 유일한 어린이다.

무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배를 모는 선장도 알고 보니 해원의 어릴 때 친구였다. 해원과 복남의 고향이 '섬'이라는 건 그 자체로 상징이다. '섬'은 육지에서 떨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는 지리적 조건이며,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해원은 어려서 섬을 떠난 뒤, 처음 섬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으로 보면 약 20년 이상이 흐른 뒤로 보인다. 그럼에도 마을에 사는 노인 할머니들은 해원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섬에는 여섯 명 정도의 할머니와 복남, 복남의 딸 연희, 복남의 남편 만종, 시동생 철종, 노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고, 섬 사람들의 일상이지만, 이 섬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복남에게 지옥이다. 모든 사람들이 복남을 괴롭히고, 착취하며,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긴다. 복남의 남편은 만종이지만, 만종이 외출하면 시동생 철종이 복남을 성폭행하고, 육지에서 성매매 여성을 데려온 만종은 복남 앞에서 성관계를 하는 막장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드러나는 복남의 과거는 더욱 잔혹하다. 복남은 10년 전에 섬의 남자들 몇 명에게 윤간을 당하고, 연희를 낳았다. 따라서 연희가 어떤 남자의 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복남의 남편 만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복남이 매우 필요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만종은 복남을 아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노예이자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생각한다. 만종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남을 폭행하고, 욕설과 무시를 드러내놓고 한다. 게다가 딸 연희가 자기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만종은 딸까지도 성추행을 하고, 복남은 이걸 알고는 연희와 함께 섬을 탈출할 결심을 굳힌다.

서울에서 온 해원도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된다. 복남의 시동생 철종은 끊임없이 해원을 강간하려 한다. 섬의 남자들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성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동등한 인간이 아닌, 2등 인간, 하인, 노예, 불가촉천민으로 대하며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이자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으로만 상대한다.

복남은 딸 연희를 데리고 섬을 탈출하려 하지만, 배의 주인도 섬의 남자들과 한편이며, 과거 복남을 윤간한 남자 가운데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복남에게서 돈을 받고도 시간을 끌어 결국 복남이 만종에게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드려 맞고, 딸 연희는 만종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살해한다. 연희의 죽음을 두고도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경찰도 섬사람들과 친한 사람이고, 만종이 연희가 죽였다고 모함하면서 뇌물을 주고 사건을 수습한다.

복남은 사랑하는 딸 연희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걸 지켜봤고, 남편을 비롯해 섬의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며 복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경찰은 그런 섬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하는 걸 지켜보면서, 거짓과 위선,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의 행위에 절망하고 치를 떤다.

 

영화 후반으로 가면서, 복남이 변하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내용이 펼쳐진다. 뜨거운 한여름, 감자를 캐는 시기니까 '하지감자'라고 하면 6월 말에 해당한다. 햇볕이 뜨겁고, 온도도 높아서 그늘 없는 밭에서 일하다보면 탈진해서 쓰러질 지경인데, 마을 할머니들은 그늘에 앉아 쉬는데, 복남이는 혼자 감자를 부지런히 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새하얗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조선낫을 집어들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다가간다. 복남은 '해를 바라봤는데, 해가 말을 한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낫으로 할머니들을 찍어 살해한다. 복남이는 미친 것일까. 복남은 시고모를 벼랑으로 몰아 스스로 떨어져 죽게 만들고, 시동생 철종의 목을 잘라 나무에 얹어놓고, 육지에서 돌아온 만종과 배의 주인 득수를 차례로 살해한다. 해원은 겨우 육지로 탈출해 경찰을 찾아가는데, 복남이 배를 불러 육지로 해원을 따라온다. 흰색 원피스를 입고 화장까지 한 복남은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이 멀쩡하다. 복남이 해원을 끝까지 쫓아가 죽이려는 것은, 그렇게 믿었던 해원이 복남을 배신하고, 무시했으며, 섬사람들과 같은 입장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즉, 해원은 도시에서는 피해자였지만, 섬에서는 가해자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것도 한때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 복남조차도 이기적인 태도로 외면한 것이다.

복남은 섬에 찾아왔던 경찰을 살해하고, 경찰서에 있던 해원까지 죽이려 한다. 이 과정에서 복남은 정신을 차린 경찰이 쏜 총을 맞고, 해원과 몸싸움을 하다 부러진 리코더에 목이 찔려 죽는다. 리코더는 해원과 복남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물로, 어렸을 때 해원과 복남은 리코더를 불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해원이 리코더를 더 잘 불었다. 리코더가 부러진 것, 부러진 리코더가 무기가 되어 결국 복남이 죽는 것은, 해원과 복남의 우정과 운명이 엇갈리는 것을 상징한다. 

해원도 마음 속에 늘 잊지 않고 있는 사건이 있는데, 복남이 여러 남자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 죄의식이 있었다. 해원과 복남이 섬에서 생활할 때,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몰려다니며 해원을 성추행하고, 복남이 해원을 지키려고 남자아이들과 싸우는 틈에 해원은 혼자 도망한다. 그리고 다시 복남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보게 되는 장면은, 남자아이들이 복남이를 건드리는 장면이었고, 이 사건 이후 해원은 서울로 떠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복남은 결국 그 남자아이들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것이다.

복남은 단 한번도 해원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이 섬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도 외면하고 무시했던 해원이었지만, 섬을 찾아온 해원을 반갑게 맞이한 복남은, 해원을 여전히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해원은 복남이와의 추억은 있지만, 복남처럼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릴적 친구가 죽이고 싶은 대상으로 바뀌고, 처절한 몸싸움 끝에 한 친구가 죽는 결말을 보면, 이 영화는 '여성영화'나 '페미니즘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은, 전형적인 스릴러의 서사를 보여주며, 주인공이 여성인 것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면서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도 약하기에 극에서 처절한 설정을 이끌어가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이 학대당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단지 '영화'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 정치적 범위로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그런 면에서 '여성영화'로 봐도 좋다.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지만, 우리 사회에서 '복남'은 어디에나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많은 복남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남성들의 폭력과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성적 대상화로 상처받다가 어느 날,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이 말을 하는 걸 듣게 되는 순간, 가해자 남성들은 시퍼런 낫에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가까이 있는 '복남'이 고통당하고 있는지,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눈여겨 찾아보고,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가 '복남'을 만들고, 결국 남성들 자신의 목을 따게 만드는 역겨운 제도라는 걸 눈치채고 바꿔야 한다. 이 영화는 젠더의 문제이자 권력의 문제를 다룬 영화로,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내재한 영화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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