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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사라진 시간

by 똥이아빠 2020.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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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

 

정진영 배우의 첫 감독 연출작품. 그가 배우를 하기 전에 연출부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배우보다 감독이 되고 싶었고, 30여 년의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연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정진영의 첫 작품은 기존의 영화 문법을 따르지 않은, 신선한 시도였다.

이 영화를 두고 장자의 '호접몽'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꿈을 꾸는 나와 꿈속의 나, 꿈속에서 꿈을 꾸는 나에 관한 설정을 다룬 영화는 여럿 있다. 이 영화는 꿈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정체성'에 관한 영화로 읽는 것이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최고의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자기가 거대한 벌레로 변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 모두 그레고르의 변신에 충격을 받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레고르 역시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하지만, 벌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카프카의 작품은 '변신'이라는 형태적 변화를 통해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묻고 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인간'이 아닌, 가족에 기생하는 '벌레'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벌레'는 사회에서 도태한 한 인간의 '사회적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사라진 시간'의 주인공 '형구'는 자기가 인식하는 자아와 타인이 인식하는 자아가 다르다는 점에서 분열적 존재다. 그레고리는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벌레로 변신하기 이전의 자신과 벌레로 변신한 이후의 자신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걸 분명 알고 있다. 육체가 벌레로 변했어도, 그레고리 잠자는 변하지 않는 자아를 갖고 있다. 이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아'에는 분열이 없지만, 가족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열적이라는 점에서 '사라진 시간'의 형구와 큰 차이가 있다.

형구는 자기가 생각하는 정체성이 '형사'지만, 현실(?)의 모습은 '선생'이다. 형사였을 때의 형구는 가난하지만 결혼했고, 아들이 둘인 아버지이자 가장이다. 수사를 하던 중, 마을 주민이 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들었다 깬 형구는 학교 선생님이다. 그는 자신이 학교 선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아직 미혼이고, 자기가 수사하던 불탄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물론 불이 났던 집은 흔적조차 없고, 모든 것은 정상이다. 불이 났던 것은 상상일까, 불이 날 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은 교사 부부는 환상일까.

형구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기가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가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도 간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자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자기가 살게 된(불이 났던 집) 집에서 발견한 것은 형구가 교사가 되기 위한 증거들로 넘쳐난다. 그 서류가 조작이라고 믿는다면 거대한 음모론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누가, 왜 형구의 삶을 분리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일까. 오히려 형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아의 정체성은 그 모든 세계를 의심할 만큼 견고하다. 자기부정은 자신의 실존을 의심하게 되고, 자아의 분열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자신만은 그것이 옳다고 주장할 때, 둘 가운데 하나는 분명 틀렸다.

형구는 자신이 형사였을 때, 학부모 해균이 초등학교 동창 여자와 모텔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구가 선생의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울 때, 해균에게 초등학교 동창 여자와 모텔에 가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해균이 놀란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형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일종의 '키'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형구가 해균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해서 만난 경찰서장의 부인이 바로 자기의 아내-형사였을 때-라는 설정은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도치되었음을 말한다. 즉 형구는 이미 이 동창모임이 있기 전에 경찰서장 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것은 영화에서 형구가 형사로 등장하기 전이며, 그때 이미 형구는 학교 선생으로 재직하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앞부분, 교사 부부가 살고 있고, 수혁의 아내 이영이 밤만 되면 다른 사람으로 빙의한다는 것, 이 부부 교사가 결국 집에 갇혀 불에 타 죽게 된다는 내용은 형구의 꿈이거나 상상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이영은 읍내에 있는 주민자치센터에서 뜨개질을 배우는데, 형구가 온천에서 우연히 만난 초희(뜨개질 강사)에게서 형구가 뜨개질을 잘 한다는 말을 듣는데, 이영과 형구는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형구와 초희는 우연히 온천에서 만나는데,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꽤 있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초희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밤만 되면 누군가의 모습으로 빙의한다는 사실을. 형구는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돋는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야기는 순환한다. 형구는 초희와 결혼해 함께 살게 되고, 초희는 밤마다 누군가로 빙의한다. 이 사실을 마을주민 해균이 우연히 알게 되고, 이장에게 전달하며, 이장은 마을 주민에게 알리고,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된다. 마을 주민들은 밤마다 빙의한다는 초희를 무서워하고, 형구에게 밤에는 집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철창을 설치하기를 권한다.

이 모든 과정은 형구의 상상이지만, 형구는 이 일련의 상황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형구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어느 날 마을 잔치에서 독한 술을 잔뜩 마시고 정신을 잃은 것처럼 잠에 빠진다. 그리고 꿈을 꾼다. 상당한 미인이었던 경찰서장의 부인이 자기 아내가 되고, 자신은 형사가 되어 자신의 분열된 자아 - 교사 수혁과 이영 -가 행복하지만 결국 불에 타 죽는 장면을 보게 된다. 형사인 형구는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욕망을 실현 - 미인인 아내와 결혼하고 두 아이를 얻는 것 -하고, 불안한 욕망 - 뜨개질 강사를 좋아하지만 그녀가 드러낸 비밀(빙의) - 을 제거하기 위해 집이 불탄다. 형구는 뜨개질 강사 초희에게서 들은 빙의의 비밀에 충격을 받고, 자신이 꿈속에서 교사가 아닌, 형사로 빙의한다. 그리고 잠에서 깼을 때, 형구는 빙의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어서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관객은 감독의 불친절한 결말에 불평할 수는 있지만,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어서 서사가 풍부해지는 장점이 있다. 단지 꿈에 관한 이야기일지, 평행우주에 관한 이야기일지, 장자의 호접몽을 말하는 것인지, 카프카의 벌레에 관한 이야기인지 관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신선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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