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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젠틀맨

by 똥이아빠 2021.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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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신선한 연출과 감각적인 시나리오에 반했다. 그의 데뷔작인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후속작 '스내치'를 보면서, '놀라운 감독'의 출현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가이 리치의 작품들은 기복이 심해졌고,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재능이 빛을 잃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초기 작품의 빛나는 연출을 보기 어려웠고, 그는 자기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작품들만 만들고 있었다.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은 복잡한 시나리오와 화려한 연출에 있는데, 초기작을 제외하고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영화가 드물다. 물론 '셜록 홈즈'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다시 스타 감독으로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는 건 역시 앞에 나열한 초기작 두 편과 '리볼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젠틀맨'은 작년에 개봉한 영화로, 가이 리치 감독의 최근작이다. 이 작품은 초기작에서 볼 수 있었던 신선함과 많이 꼬인 복잡함을 다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가이 리치의 역량이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작부터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주인공 미키(마이클 피어슨-매튜 매커너히)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 뒤에 나타난 암살자의 총에 맞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립탐정이자 파파라치인 플레처(휴 그랜트)는 레이몬드(찰리 허냄)의 집으로 찾아와 2천만 달러를 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증거 자료를 넘겨주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쓴 영화대본까지 보여준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는 플레처와 레이몬드가 나누는 대화가 곧바로 실제 스토리로 연결되면서 대본 속의 대본극으로 진행하는 이중 구조를 담고 있다.

미키는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재원인데, 그는 영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그가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의 과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미키는 대학생일 때 이미 소소하게 대마초를 판매하면서 돈을 벌었고, 그것을 자신의 미래로 삼기로 결정한다. 미키가 대학생일 때부터 현재, 40대 중반의 거물로 성장할 때까지의 과정 역시 빠르게 설명한다. 미키의 과거는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미키는 자신의 사업 전체를 4억 달러에 넘기고자 한다. 그 대상으로 이미 마약 사업을 하고 있던 미국인 유대인인 매튜를 만난다. 미키는 매튜를 자신의 사업장으로 데리고 가서 대마초를 어떻게 재배하고 있는지, 수익은 얼마가 나는지 설명한다. 미키의 말대로라면 미키의 사업을 그대로 4억 달러에 인수한다해도 해마다 수억 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는 '노나는 장사'였다.

미키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대마초를 재배하고 있는데, 몰락한 영국 귀족의 영지를 빌려서 지하에 대마 재배 공장을 지었다. 귀족에게는 해마다 일정한 금액을 주고, 대마 사업은 몰락한 영국 귀족의 영지에서 지속할 수 있으니, 이건 영국의 귀족이 범죄자의 돈을 받고 살아간다는 비아냥이기도 하다. 범죄자의 돈이라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몰락한 영국 귀족은 곧 과거 왕조시대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봉건성을 뜻한다.

 

우연처럼, 미키가 매튜에게 자기 사업장을 보여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삼합회 간부인 드라이 아이(헨리 골딩)가 미키의 아내 로잘린드(미셸 도커리)를 찾아온다. 그는 미키와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로즈는 미키에게 드라이 아이를 만나보라고 말한다. 드라이 아이는 미키에게 농장을 매입하고 싶다고 제안하는데, 미키는 당연히 거절한다.

또 다시 우연처럼, 드라이 아이가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흑인들이 대마초 농장을 습격해 대마초를 털어간다. 미키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

아니나다를까, 플레처는 이 모든 사건의 배경에 '빅 데이브'가 있다고 말한다. 빅 데이브는 CJD같은 쓰레기 언론사의 사장 겸 편집장인데, 어떤 파티 장소에서 우연히 미키를 만났고, 먼저 악수를 청하지만, 미키가 빅 데이브를 쓰레기 취급하는 바람에 감정이 상했다. 그는 미키를 잡기로 작정하고, 미키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찾다가 몰락한 귀족 가운데 한 명인 프레스필드 경과 그의 딸 로라를 찾아낸다. 프레스필드 경은 미키에게 집을 나가서 마약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딸을 찾아 집으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미키는 자신이 가장 믿고 아끼는 레이몬드에게 일을 맡긴다.

레이몬드가 로라를 찾아내 집으로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함께 있던 로라의 친구이자 마약을 하던 아슬란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아슬란의 아버지는 러시아 마피아로, 과거 KGB였었고, 현재는 러시아의 재벌이기도 한 사람이다. 

 

사건의 실마리는 '코치'(콜린 패럴)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마초 농장을 습격했던 흑인들은 한 체육관에 소속된 운동선수들이고, 이들은 과거 범죄를 저질렀지만 '코치'의 노력으로 운동을 하면서 시합에도 나가고,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대마초 농장을 습격한 것은 그들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임을 코치가 알게 된다. 

코치는 레이몬드를 찾아가 사과한다. 시키는 일을 할테니 아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고, 레이몬드는 우선 비밀 장소인 농장을 어떻게 알았는지, 누가 알려주었는지 확인하라고 말한다. 코치는 당연히 농장을 습격한 아이들에게 물었고, 사주한 친구가 중국인 '조옷'이라는 걸 밝힌다. 코치와 레이몬드는 '조옷'을 납치해 오지만, 그는 철길로 떨어져 자살한다. 죽기 전에 그는 '드라이 아이'가 시켰다고 말한다.

 

레이몬드에게 전후 이야기를 들은 미키는 상황을 판단한다. 그러니까 농장을 습격한 것은 흑인 청년들이고, 그 뒤에는 중국인 '조옷'이 있었는데, '조옷'의 두목은 자신을 찾아왔던 삼합회 간부 '드라이 아이'이며, 삼합회 두목은 '조지'라는 걸 파악하고, 미키는 조지를 찾아간다. 조지는 이미 마약으로 돈을 벌고 있었고, 큰 어려움 없이 사업(범죄조직)을 운영하며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키가 나타나 자기 사업을 방해한다고 말하니 어처구니 없었다. 알고보니 조지에게 보고하지 않고 드라이 아이가 단독으로 벌인 짓이었다. 그럼에도 미키는 조지를 죽기 직전까지 만들고, 그의 사업장(마약제조공장)을 불태워버린다.

 

죽다 살아난 조지는 드라이 아이를 불러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꾸짖지만, 드라이 아이는 오히려 늙은이는 이제 그만 물러나야 한다면서 조지를 살해한다. 그러면서 부하를 미키에게 보내고, 자신은 미키의 아내 로즈에게 가서 로즈를 잡고, 미키에게 사업장을 넘기라고 협박하려 한다.

미키가 로즈의 전화를 받는 장면이 바로 영화의 첫 장면이다. 첫 장면에서는 총소리가 나고, 피가 튀는 것만 보여주는데, 여기서 죽는 사람은 미키가 아니라 드라이 아이의 부하였고, 레이몬드가 미키를 살린다. 미키는 로즈가 드라이 아이에게 잡혀 있음을 알고는 차를 몰아 로즈가 있는 정비공장으로 달린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고, 겨우 빠져나온 미키는 로즈의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로즈는 드라이 아이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플레처는 레이몬드에게 72시간 안에 2천만 달러를 주지 않으면 모든 자료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레이몬드는 이제부터 반격을 시작하겠다며, 가장 먼저 CJD같은 쓰레기 언론사의 사장겸 편집장인 빅 데이브를 납치하도록 '코치'에게 부탁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 즉 미키가 매튜에게 사업 전체를 4억 달러에 팔겠다고 한 이후부터 발생한 사건의 배후에는 매튜가 있었다. 매튜는 대마초 비밀 농장을 방문한 다음, 알고 지내던 드라이 아이에게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작전을 지시한다. 드라이 아이의 부하였던 '조옷'은 동네에서 껄렁대던 친구들인 체육관 흑인 친구들에게 대마초 농장을 습격하라고 말했고, 체육관 흑인들은 대마초를 공짜로 가질 수 있다는 말에 농장을 습격한 것이다. 이 사실을 코치가 알았고, 코치는 레이몬드를 찾아가 사과하고, 자기 제자들을 부추긴 '조옷'을 레이몬드와 함께 찾아낸 것이다.

 

코치와 흑인들은 빅 데이브를 납치한 다음 약을 먹이고 동영상을 찍는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압권인데, 언론 권력으로 유명인사들을 낙인 찍어 사회에서 매장시키기를 밥 먹듯 해왔던 언론인 빅 데이브는 자기가 돼지와 수간한 동영상을 보면서 그 자신이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었음을 알게 되고, 비명을 지른다. 이건 명백히 기존 쓰레기 언론, 황색 언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영국에도 쓰레기 언론이 많고, 어느 세상에나 쓰레기 언론이 세상을 오히려 더 더럽게 만들고 있는데, 가이 리치 감독은 그런 쓰레기 언론인이 돼지하고 수간이나 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본 것이다.

 

매튜는 미키를 만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끄러운 사건들 때문에 미키의 사업이 4억 달러가 아닌, 1억 달러의 가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1억 달러에 살 의향이 있으니 그렇게 알라는 말이다. 매튜는 미키가 사건의 전말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미키는 또 다른 사업장이 있는 냉동창고로 매튜를 데려가 냉동된 '드라이 아이'를 보여준다. 즉, 드라이 아이와 모의했던 것까지 다 알고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매튜는 끝까지 잡아떼고 드라이 아이를 모른다고 말하는데, 결정적으로 경기장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여주자, '사업일 뿐 사적인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미키는 그런 매튜에게 1억 3천만원에 매수한다고 했으니, 냉동고에 들어가서 2억 7천만 달러를 당장 송금하고, 지금까지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보상으로 매튜 자신의 살 1파운드를 스스로 잘라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살 1파운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장면으로, 이자 대신 살을 받겠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돈이 많으면서도 양아치 짓을 하는 유대인 매튜에 대한 문학적 보복인 셈이다. 냉동고 온도는 영하25도로, 1시간도 견디기 어려운 곳이어서 매튜가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돈을 송금하고, 자신의 살을 스스로 잘라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1파운드, 450그램의 살을 어디에서 잘라낼지도 궁금하다.

 

플레처는 레이몬드를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하고, 코치와 흑인들은 마지막으로 레이몬드를 돕는다. 아슬란의 아버지가 러시아 마피아라는 건 이미 확인했고, 그들이 레이몬드와 미키를 죽이려고 다가오는데, 코치와 흑인들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목숨을 구한다. 그 와중에 플레처는 도망가지만, 레이몬드는 도망가는 플레처를 잡는다. 플레처는 아슬란의 아버지 즉 러시아 마피아에게 돈을 받고 미키의 정보를 팔아넘겼고, 미키에게서 돈까지 받아내 미국으로 도망가려던 계획이었다.

 

이야기는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야기를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집중하지 않으면 흐름이 끊겨서 재미 없게 느껴질 수 있다. 가이 리치 영화는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거나 교훈을 얻기 보다는, 영화의 재미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복선, 반전, 캐릭터의 개성, 서사의 교차 같은 영화 문법들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은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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