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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만화를 읽다

어덜트 파크

by 똥이아빠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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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덜트 파크

 

오영진은 그림도 우스꽝스럽고 대중적이지 않은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보이는 만화가다. 그가 예전에 그렸던 만화들도 '평양프로젝트' '남쪽손님' 같은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를 그렸는데, 대중적이라고는 하기 어려워도 그가 그리는 만화가 의미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만화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몇 개의 복선을 깔고 있다. 주인공 용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삶과 친구들의 삶,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회사 동료인 준호의 또 다른 이야기, 후배인 강모의 집착, '어덜트 파크'에서 만난 대화하는 로봇의 이야기 등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복잡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

주인공이 배터리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설정이 이 만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친구 준호의 이직과 새로운 삶이 뒤에서 어떤 반전을 일으키는지가 흥미롭다. '어덜트 파크'에서 일하는 '대화 로봇'은 이 만화의 시대배경과는 쉽게 어울리지 않지만 영화 'her'처럼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을 때, 윤리적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 만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준호와 그의 아내에 관한 내용이다. 30대의 여성으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준호의 아내는,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5년 동안 생명을 연장하며 누워 있다. 준호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언제 깨어날 지 알 수 없는 아내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때, 병원의 원무과에서 일하는 직원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사실, 우연을 가장한 접근이었지만-식물인간인 아내의 장기를 비싸게 양도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충격을 받은 준호는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의학의 발전을 위한 연구용 프로젝트에 쓰이는 매우 귀한 이유라는 연구소 직원의 말에 동의한다. 믿지는 않았지만 동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도 5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왔고, 회생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내를 깨끗하게 보내주는 것이 오히려 인도적인 행위가 아닐까 갈등했던 것이다. 게다가 감히 만져볼 수도 없는 큰 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상황에서 준호의 선택은 99%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진다. 준호는 더 좋은 조건으로 경쟁 회사로 이직하고, 아내의 장기를 매매해 큰 돈을 벌고, 모든 것이 순탄하고 일사천리로 일이 풀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용배가 지방의 어느 이상한 '어덜트 파크'라는 곳에서 만난 '대화 로봇'에게 들었다는 말을 전해듣는 순간, 준호의 삶은 유리바닥이 부서지는 것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준호는 용배가 말한 그 '어덜트 파크'를 찾아가 '대화 로봇'을 만나게 되고, 그 로봇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이 이야기는 윤리적으로 매우 심각한 내용이어서, 지금의 현실에서 생명을 다루는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는 생명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뚜렷한 판단기준이 없다. 그렇기에 생명의 경계를 다루는 문제는 늘 윤리적으로 민감하고, 심각한 사회적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대화 로봇'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준호는 대화 로봇을 살해(?)하고 기계값을 물어주지만, 대화 로봇에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베이스는 다른 로봇으로 옮겨간다. 즉,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미래에 겪게 될 '기계사회', '컴퓨터사회', '인공지능사회' 등 무어라 불러도 상관없는, 새로운 사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각기동대'에서도 사람들은 가짜 기억을 갖고 살아가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기억은 부분 또는 전부를 삭제하거나 복제할 수 있으며, 새로운 기억을 이식할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이 일상이 되었을 때, 우리 '인간'은 과연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인간의 미래는 어떤 경우든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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