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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사회를 읽다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by 똥이아빠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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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내가 경제학 기초를 처음 공부한 건 군대에서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스무살 중반이었다. 그때 소모임은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짰는데, 우리 모임의 학습을 이끌던 선배 둘은 모두 성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성대 학생운동 그룹은 PD 진영으로 알려졌고, NL이 중심이었던 서울대와는 다르게 마르크스, 레닌 이론을 주로 학습했다. 수준은 당연히 기초적 내용이었고, 우리는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했다.

그때 읽었던 책 가운데 최종식의 '서양경제사론'과 박현채 교수의 '한국 농업문제의 새로운 인식',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같은 경제 관련 책을 읽었다. 이밖에도 일본 번역서 가운데 경제 관련 사회과학 책들을 읽었고, 제3세계 관련 책도 몇 권 있었다.

이때 읽은 내용에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뿐 아니라, 인류의 발전을 물적 토대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책이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였다. 이 책은 1933년 출판되었는데, 당시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원시, 고대사회 경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우리가 신화로만 알고 있는 단군 신화의 내용이 부족과 부족 사이의 투쟁과 결합이었으며, 당시의 부족이 정착생활을 하며 농업을 하던 부족들이었다는 내용인데, 지금이야 쉽게 수긍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 공부를 처음 하던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경제학 공부는 더 깊게 하지 못했고, 한국의 경제학자들 가운데 마르크스 경제학을 하는 학자들도 드물고, 그 이론을 펼치기에는 당시 한국사회가 군부독재 상황이어서 여의치 못한 것도 있었다. 

그러다 '정운영'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한겨레신문을 통해 알게 된 정운영 선생님은 그 뒤로도 방송에서도 볼 수 있었고, 중앙일보에서도 칼럼을 꾸준히 써서 그의 글을 읽는 즐거움과 행복함이 있었다. 정운영 선생님은 지금도 그 분을 능가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문'이다. 글을 잘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데, 더구나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건 예사 재능으로는 흉내내지 못하는 영역이다.

나는 지금도 정운영 선생님의 책을 읽곤 하는데 - 오늘도 헌책방에서 갖고 있지 못한 책을 발견하고 주문했다 - 글을 읽을 때면 정운영 선생님의 생전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지만, 한국의 엄혹한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

 

최배근 교수님을 알게 된 건 '김어준의 뉴스공장' 덕분이다. 그 전까지 솔직히 나는 한국의 경제학자들에 관심이 없었고, 주로 외국 학자 가운데 한국에 책으로 번역되어 있는 학자들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 E.K. 헌트의 책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 흐름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경제학과 경제학자의 개론에 관해서는 여러 권을 읽어서 큰 줄기는 알고 있었지만, 경제학, 정치경제학의 깊이와 구체적인 면면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수박 겉핥기의 독서였다.

라디오에서 최배근 교수님이 한국 경제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평소 내가 가졌던 생각과 거의 99%의 씽크로율을 느끼게 된 것이 신기했다. 방송으로만 알게 된 최배근 교수님은 약간 투박한 말투와 독특한 어미의 활용이 인상 깊었는데, 그의 책을 구입할 생각까지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최배근 교수님이 쓴 '대한민국 대전화 100년의 조건'을 구입해 읽어봤다. 책의 내용은 차치하고, 책날개에 있는 프로필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최배근 교수의 경력은 매우 화려했다.

2010년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의 '세계 100대 교수', '세계 100대 교육자', 21세기의 탁월한 지식인 2,000명'에 선정되었으며, 2017년, 2018년 연속으로 마르퀴즈 후즈 후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나만 그동안 최배근 교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나보다. 

 

이 책 '대한민국 대전화 100년의 조건'도 처음에는 큰 기대하지 않고 구입했다. 경제학자가 한국을 분석한 이론서니까 조금 딱딱할 것이고, 각종 통계 자료와 경제학 용어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재미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무엇보다 쉬운 언어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좋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하고자 하는 발언의 내용을 두괄식으로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나처럼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서문에서, 한국은 21세기를 '새로운 처음'을 맞닥뜨리는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1) IT 및 인터넷 혁명에서 데이터 혁명으로 진행하는 기술 혁명 2) 기후변화 문제와 신재생 에너지 문제 3) 남북한이 반드시 연결되고 통합되어야 하는 문제를 짚고 있다.

본문의 앞부분에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제기를 하는데, 21세기의 시작은 1) 2001년 9.11테러 2)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 3)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 4) 2011년 지진, 쓰나미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꼽고 있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 한국 경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쉽고 재미있게 읽으며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쉽고 재미있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각종 자료들은 가장 최근의 국제 공식 통계들이어서 경제를 이해하는데 필수 내용이며, 사람들과 경제 이야기를 하거나, 토론을 할 때 이 책의 내용이 매우 훌륭한 근거 자료로 뒷받침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쭉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졌던 경제학에 관한 선입견이 상당히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최배근 교수님이 말하는 경제는 결코 어렵지 않으며, 전문가만 알고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경제는 모든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것인데, 경제전문가라고 행세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이론과 언변으로 대중을 무지하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라면 오히려 알기 쉬운 말로 대중에게 현재의 상황과 문제를 올바르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기존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엘리트주의에 빠진 경제학자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경제학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최배근 교수는 경제를 왜곡하는 전문가들과 언론에 맞서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독도와 관련해 일본의 왜곡, 선동에 대해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한국의 경제학자들 가운데 드물게 정의롭고 양심적인 학자임을 알 수 있다.

촛불 시민이라면 이런 학자들을 보호하고 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수구, 반동, 매국노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분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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