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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사회를 읽다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 - 짧은 버전

by 똥이아빠 2025. 3. 2.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 - 짧은 버전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다 보면 시간이 흘렀어도 호기심 생기는 책이 가끔 있다. 이 책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를 보고, 꽤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읽어보니 역시 읽는 즐거움이 있다. 90년대 초에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세계 정세는 '쏘련'이 붕괴하면서 제국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 세계 질서가 '팍스아메리카'로 재편되던 시기였다. 이때 공산주의 제국 쏘련의 해체는 당연하게 여겼지만, 정작 마르크스가 정의한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국인 '미국'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비판이나 반체제적 행동이 보이지 않았다. (있었다 해도 극히 미미했을 정도라고 봐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존 서구 문명에 대한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비판적 관점이라는 점에서, 서구 사회를 분석했던 이론적 틀로 쓰인 '구조주의' 역시 비판 대상이었고, '포스트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즉, 서구 사회가 쌓았던 근현대 문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가 있다면, 제1세계(중세 이후 현대까지 제국을 이룬 국가들)를 제외한 국가들이 제1국가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 모든 영역을 장악당하고 피압박 상태에서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억압, 착취, 강제당했던 상황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이다.
이때 분석의 주체는 당연히 '피압박자'가 된다. 하지만 '피압박자(피해자)'가 과연 압박의 주체(가해자)를 온전히 해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데, 이 문제를 다룬 '가야트리 스피박'은 '하위 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에서 '하위 주체' 즉 억압된 주체는 그람시가 주장한 '종속 계급'이자 통상적으로 '열등한 계층'이라고 정의하고, 이들이 가해 집단의 행위와 작동 원리를 완벽하게 분석, 해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식민의 경험을 가진 국가와 국민은 '포스트식민성'을 통해 자신들이 겪었던 억압의 본질에 관해 분석, 해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프란츠 파농'과 '간디'를 대표적 인물로 볼 수 있다. 물론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실패했고, 그가 가진 한계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프란츠 파농'은 안타깝게 일찍 사망했지만, 그가 정신과 의사로, 국가 또는 민족 단위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분석했다.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사용하는 보편적 용어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휴머니즘'이 인류 보편적 '인류애'라고 해석하지만, 식민 상태에 놓인 민중과 노예(흑인 노예가 대표적이다)의 시각에서 '휴머니즘'은 폭력의 주체가 말하는 그들만의 '인류애'일 뿐이다. 결국 포스트식민주의는 기본 담론으로 보면 자본주의 비판 이론과 교집합한다. 제1세계가 착취하는 대상은 국가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이고, 자본주의는 개별 단위에서는 자본가-노동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착취이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가 제국주의로 발전하면서 국가 단위의 착취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포스트식민주의 자본주의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로 볼 수 있다.
한국도 세계의 자본 흐름으로 볼 때,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주권을 뺐긴 경험이 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통상조약'이라는 이름은 외세가 침략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협약을 의미하며,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자본에 포획되어 서구 자본을 적극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들의 힘을 키워 주변 국가를 침략했다.

한국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80년이다. 우리는 해방 두 3년 동안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고, 뒤이어 민족끼리 갈라져 전쟁을 했으며, 수백 만 명의 국민이 죽었고, 국토가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에서 불과 8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인류 역사에서 한국이 유일하며, 앞으로도 나오기 거의 불가능한 역사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 독재 권력이 30년 가까이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포스트식민성'에 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방이 되었어도 여전히 지배 권력은 식민지배국이었던 일본을 위해 일했던 자들이어서 식민성에 관한 비판적 관점보다는 오히려 식민성이 유지, 강화되는 측면이 있었다. 식민의 경험은 집단의 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았고, 지식인들이 식민성을 해체, 분석, 비판하는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식민성의 부당함을 널리 알려야 했음에도, 한국에서는 식민성에 대한 비판이 약하게 작동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포스트식민성 즉 식민지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로 세계 최고 국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계 최고'의 의미는 단지 경제적 발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한국 문화 전체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K로 시작하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가 경제적 성과를 이루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면서, 국민의 삶이 극적으로 향상된 것에서 시작한다. 경제적 풍요는 우리가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다른 나라들과 대등하다는 인식이 집단(국민)에 자신감을 주었다. 앞뒤가 바뀌어 나타나기도 하는 현상으로, '한글'의 우수성에 관한 이야기가 K 즉 '한류'와 함께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K-한류를 누리는 바탕에는 '한글'이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외국에서 '한글'의 존재와 의미를 알기 어려운데, 우리 경제가 성장하고, 90년대부터 꾸준히 K 문화가 한국 바깥으로 퍼져나가면서 점차 '한글'의 존재와 의미를 외국 사람들도 알기 시작했다. 그건 한국이 1997년 외환 위기를 겪고, 그 과정을 극복하면서, 김대중 정부에서 광케이블을 전국에 실핏줄처럼 설치하자 PC방이 생기고, 마침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나오면서 한국이 '스타크래프트'의 최대 활성국이면서 수혜국이 되었다. 그렇게 인터넷의 발달, 민주정부의 지원, 코로나 팬데믹 때 세계적 OTT 넷플릭스를 타고 전세계에 퍼져나간 한국 드라마, 음악, 영화들이 K 문화가 세계에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포스트식민성'에 관한 논의를 진지하게 집단으로 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적극적 활성화,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엄청난 문화 잠재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했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창의성, 예술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었고, 우리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었던 걸로 생각한다. 우리(제3세계)가 스스로를 '오리엔탈리즘'으로 바라보는 게 바로 '포스트식민주의'에서 주체가 스스로를 '대상화' 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분명 피해자인데, 가해자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봤던 것이다. 
돌아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 -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제외하고 -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정부에서 한국은 꾸준한 경제 성장과 함께 K 문화 전반이 매우 가파르게 성장했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세계 1위를 하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 해 세계의 모든 영화상을 휩쓸었던 건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을 확인했다.

한국이 K-방산, K-조선, K-항공우주 같은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불균등과 불균형한 발전을 하고 있고, 불안한 요소가 많이 보인다. 한국은 불과 80년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선진국으로 급성장하면서 부작용도 많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사실에 매우 자부심을 갖는다. 이건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가 겪은 식민지의 기억과 불행을 자식 세대에서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뜻이다.
수 많은 제3세계는 지금도 '포스트식민주의'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고, 시간이 흘렀어도 '포스트식민성'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라도 많다. 한국은 '포스트식민주의'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분단 체제'다. 남북 분단의 직접 원인은 2차 세계전쟁 이후 발생한 '냉전'의 결과로, 미국과 쏘련의 이념 전쟁을 대리한 국지전의 성격이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민족과 나라가 궤멸하고, 분단 체제로 오랜 시간 적대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가 겪지 못하는 '포스트식민성'을 한국은 특별한 형태로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사건들, 권력과 엘리트 집단의 범죄, 왜곡된 사교육 문제, 특정 종교 집단의 부패와 반지성 행위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이 나타나는 건 우리가 '포스트식민성'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증거라고 본다. 과거 독재 정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은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드러냈지만, 이후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확보된 다음에는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예가 대표적인데, 이후 박근혜, 윤석열을 선출한 건 우리가 가진 '포스트식민성'이 최악의 형태로 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한편으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최악의 '포스트식민성'을 드러내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데, '포스트식민성'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고, 그 뿌리에서 자란 전근대적 피식민주의자들이 친미, 친일을 부르짖는 집단과 개인이고, 권력을 사유화 하고, 독재의 향수에 집착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려면 이런 집단을 온전히 해체하고, 소멸시켜야 한다. 
우리가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온전히 민중(국민, 백성, 민초, 인민, 시민 등 어떤 단어를 써도 좋다)의 역량을 바탕으로 스스로 극복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포스트식민성'의 잔재는 기득권 세력, 권력 집단, 부르주아 엘리트 계층의 발생과 유지 과정에서 그들이 친일, 친미 집단으로 자발적으로 변신하고, 권력과 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 엘리트 계층은 '포스트식민성'을 유지하는 게 그들에게 이익이 됐지만, 기층 민중에게는 '포스트식민성'이 족쇄로 작동하고 있었기에, 기득권 세력과 갈등, 대립, 투쟁하면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했다는 객관적, 물적 조건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현상은 억압자(가해자)였던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각종 통계 수치에서 여전히 세계 5위권의 선진강대국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 일본과 현재 일본은 사뭇 다른 걸 알 수 있다. 일본은 한때 아시아 국가 전체 GDP의 약 60%를 차지한 때가 있었다. 또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60년에서 70년대에 가장 큰 경제적 격차가 있었고, 이때 일본은 경제 지표에서 한국보다 약 40배 이상 앞서 있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는 일본이었고, 일본은 경제 대국은 물론 문화 산업에서도 서구에 널리 알려졌다. 일본은 2차 세계전쟁에서 패전국이었지만 같은 패전국인 독일처럼 많은 걸 잃지 않았고, 미국의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했으며, 특히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전쟁 특수로 경제 호황의 발판을 만들고, 도쿄올림픽 이후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룬다.
일본은 16세기 이후 서구 국가들에 의한 개방과 교류로 발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었고, 두 번의 결정적 판단 - 16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통한 무기 수입 및 교역, 19세기의 유신 - 을 통해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 국가로 발전했고, 이후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국가를 정복했다. 당연한 결과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발전했으며, 다른 제국주의와는 다르게 '군국주의'이면서 '제국주의'인 국가로 변신하는데, 이는 일본의 역사에서 무사 집단이 지배 집단이었던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 지역 방위의 전초기지로 여기고, 최대의 미군 기지와 함께 일본을 공산주의 국가와 대결하는 동맹, 파트너로 대우했다. 일본은 몇 가지 조건 - 1억 명 이상의 인구, 태평양에 인접한 국토, 천황 중심의 지배구조 등 - 에서 미국이 아시아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기 좋은 조건을 갖췄고, 일본은 미국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가파르게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80년대까지 초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마침내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때 일본은 미국 GDP의 68%까지 도달하는 거대한 몸집이 되었다.
미국은 턱밑까지 쫓아온 일본을 견제하려고 미국 달러와 엔화의 환율을 조정하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의 가치를 낮추고, 엔화의 가치를 높이는 협상을 했다. '플라자 합의'에 참여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다섯 나라였다. 이 협상을 통해 엔화 가치는 두 배(250엔에서 120엔)로 커졌고,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수출 경쟁력이 낮아지는 한편, 국내에서는 '엔고 시대'를 맞이하면서 경제를 살리는 방안으로 '양적 완화' 즉 돈을 많이 풀어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주로 부동산, 주식 등으로 몰리면서 일본의 부동산 자산이 급등하고 90년대 이후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 거의 모든 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졌지만, 높은 교육열, 저임금 노동-경공업에서 중공업-첨단 산업으로 이행, 외래 문화의 수입에서 자기 문화를 생산하는 문화 생산국으로 변신 등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독재를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만드는 방법과 과정을 스스로 터득했으며, 배고픔과 가난의 고통을 겪은 부모 세대와 풍요로운 중산층의 삶으로 시작한 청년 세대가 공존한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경제 성장, 문화 발전을 이룬 밑바탕에는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국민 문맹율이 0%대에 수렴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글'은 그만큼 배우기 쉽고, '한글'로 쓴 글은 누구나 읽을 수 있다. 한국의 산업 발전에서 고급 노동자를 생산하는 과정에 '한글'이 필수적 요소였다는 사실은 대부분 간과한다.
일본이 미국의 기술 하청국가로 출발한 것처럼, 한국도 처음에는 일본의 기술 하청국가로 시작했지만, 점차 독자적 기술을 확보하면서 일본과 기술 경쟁을 할 정도에 이르렀다. 자동차를 비롯한 조선, 항공, 중공업 분야 등 실물 경제의 발전도 놀랍지만, 한국이 가진 '소프트 파워' 즉 문화 산업의 힘은 오히려 실물 경제보다 더 파장이 크고 오래 간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대중 정부 때, 일본 문화 시장을 개방한다는 정부 발표에 반대 여론이 훨씬 많고 강했다. 그때까지 미국, 유럽 등의 대중 문화를 수입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여겼지만, 일본 대중 문화는 극렬하게 반대했는데, 그건 일본 제국주의와 우리의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는 일본 문화를 개방했고, 결과는 싱겁게 드러났다. 일본 문화에 빠져 허우적거릴 줄 알았던 한국인은 오히려 일본 문화에 관심이 적었고, 일부 분야(애니메이션 등)에서 취미를 갖게 되는 사례가 있을 뿐이었다.
반대로, 한국의 대중 문화가 일본으로 스며들면서, 일본은 그동안 전혀 몰랐던 한국의 대중 문화를 보고, 들으면서 충격을 받는다. 일본에서 '한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이 2002년에 방송된 '겨울연가'인데, 그 전에 1995년에 '신바람 이박사'가 일본 소니뮤직을 통해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엄청나게 성공한다. '겨울연가'는 일본 중년 여성의 트라우마를 건드렸고, 중년 여성들이 한국 대중 문화 특히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기 시작하면서 '한류'는 점차 일본에서 서서히 확산한다.
지금 일본 기성세대가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사건은, 한국 대중 문화가 일본에 깊게 스며든다는 정도가 아니라, 일본 청소년,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한글'을 배우려는 열풍이 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성세대는 한국을 여전히 가난한 나라, 못 사는 나라, 일본에게 지배당한 나라로 기억하지만, 30대 이하는 그런 우월감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90년대 이후 한국은 잘 사는 나라, 다양한 문화 산업이 성공한 나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 청년들이 '한글'을 자발적으로 배우려는 건 한국의 드라마, 영화,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없는 정서적, 문화적 풍요로움과 고급함, 세련된 이미지가 한국에는 있다. '문화'는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기에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를 받아들여 누리는 건 당연하듯이, 일본에서 한국 문화가 스며드는 현상은 일본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타났다. 이건 한국이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한 뚜렷한 증거가 된다.
김구 선생님이 말씀대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는 문화강국의 꿈을 지금 우리가 이루고 있다.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는 건 경제를 필두로 국방, 스포츠 등 다양하지만 가장 큰 힘은 역시 문화의 힘이다. 한국 문화가 세계에 널리 퍼질수록, 특히 우리를 강압으로 지배한 일본에 한국 문화가 깊게 스며들수록, 우리는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고,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제3세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스스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고, 경제, 문화, 예술의 독립을 이룬 보기 드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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