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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공작 El Conde

by 똥이아빠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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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El Conde
 
영화 '세르비안 필름'의 순한 맛 버전이다. 그래도 비위 약한 분은 이 영화를 거르길 권한다. 상당히 역겹고, 비위 상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피하지 않고 보기 어려운 영화다. 감독이 변태 기질이 있어서 이렇게 역겹게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독재, 제국주의, 종교 미신에 관한 강력한 알레고리를 장착한 영화다. 이 영화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역겹지만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관객은 그저 구역질나는 영화로만 기억할 것이다.
'공작'은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말한다. 전두환 개새끼와 맞먹는, 전두환 개잡놈보다 더 악질인 인간이 바로 피노체트다. 자신을 칠레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칠레 진보정당, 진보 지식인, 학생, 노동자, 예술인을 수십만 명이나 학살한 인간 백정이 피노체트다.
 
영화는 블랙코미디 형식을 띄며, 신화를 섞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주인공 그루누이의 탄생이 기괴한 것처럼, 피노체트의 탄생 역시 신화적이며 기괴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이디프스 신화와 연결되면서, 독재자에 대한 잔혹한 비판과 비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역사에서 역겹고 추잡한 독재자의 삶을 예술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화는 흑백인데, 관객은 흑백 화면을 의식하지 못한다. 피는 분명 시각적으로는 (흑백 필름이므로)검은색이지만, 관객의 의식에서는 시뻘건 색으로 표현된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피'에 관한 인지는 '붉은색'이라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화면에서는 검게 보여도, 관객의 의식에서는 붉은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 영화를 컬러로 만들었다면 아마 관객 가운데 여럿이 중간에 구토를 하거나, 기절할 수도 있을 정도로 미장센이 역겹고 잔혹하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 엄마는 갓난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사라진다. 아이 이름은 클로드 피노슈. 그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라고, 군에 입대한다. 이때 황제는 루이16세. 클로드는 능력이 있어 장교가 되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해 창녀촌을 찾아가서 창녀의 목을 물어 뜯는다. 그는 피맛을 알게 되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마리 앙뜨와네트가 단두대에서 머리가 잘리자, 클로드는 마리 앙뜨와네트의 무덤에서 머리만 훔쳐 사라진다. 클로드는 영생불멸의 존재가 되고, 아이티, 러시아, 알제리에서 일어난 혁명에서 반혁명 진영에서 혁명가들을 학살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지휘관이 되기로 결심하고는 칠레로 가서 다시 태어난다. 그가 바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다.
 
피노체트는 혁명의 역사에서 태어난 반동이자 반역의 상징이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혁명에 반동 세력의 아이콘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부터 반동이었으며, 이후 러시아 혁명, 알제리 혁명 등 주요한 혁명에서 반동의 앞잡이로 활약했다. 피노체트는 남미의 사회주의를 이끈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반동으로 진압한 추잡한 인물이다.
그는 1973년,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이후 1989년까지 16년 동안 장기 독재 집권을 했으며, 이 시기에 '공식' 사망자만 15,000명으로 집계되지만, 실제로는 수십 만 명을 학살했을 걸로 추정하고 있다. 피노체트는 독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고문과 학살도 인정하지 않았다.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피노체트는 1943년 루시아 이리아르트와 결혼하는데, 이 여자가 또한 피노체트보다 더 악랄하고 악질인 인간이었다.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루시아가 부추기고 협박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루시아는 겉으로는 '평범한 주부'라고 말하면서 뒤로는 온갖 음모, 협잡, 독직을 하며, 부정부패를 저질러 막대한 돈을 빼돌렸다.
1998년, 피노체트는 디스크 치료를 받으러 영국 런던으로 가는데, 이때 스페인의 가르손 판사의 명령으로 피노체트를 체포한다. 영국과 스페인은 범죄인 인도협정, 유럽테러협약을 맺고 있는데, 가르손 판사는 피노체트가 독재를 하던 시기에 스페인 국적을 가진 사람을 비롯해 94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이후 공식적으로는 스페인 상원 재판부가 피노체트의 건강을 이유로 풀어주지만, 법적으로는 영국 잭 스트로 내무장관이 석방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 이 사건의 실제 배후에는 마가릿 대처가 있었다. 마가릿 대처가 피노체트에게 호의를 베푼 이유는,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 전쟁 때 마가릿 대처가 수상이었고, 피노체트가 영국에게 약간의 호의를 보여 준 것이 이유였다.
 
마가릿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고 알려졌지만, '신자유주의 마녀'가 맞다. 영국의 수상 가운데 가장 반노동, 반개혁 인물이며, 빈익빈 부익부를 확대하고, 영국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악질이었다. 영화는 마가릿 대처가 등장하면서, 마침내 클로드 피노슈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난다.
클로드의 엄마 마가릿 로버츠는 18세기, 프랑스 남부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다. 마르세유에 상륙한 선원들이 여성들을 강간했고, 마가릿도 한 선원에게 강간당하는데, 그녀를 강간한 선원은 '스트리고'라고 했다. 마가릿은 '스트리고' 가슴에 말뚝을 박아 살해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데, 1766년 2월 25일, 클로드 피노슈가 태어났고, 곧바로 보육원에 버려진다.
이후 마가릿은 온갓 고생을 하며 살다 영국으로 건너간다. 마가릿 역시 흡혈귀여서 영생불멸의 존재가 되고, 1951년, 데니스 대처와 결혼해 마가릿 대처가 된다. 마가릿은 2세기 동안 아들 클로드를 찾아다녔고, 마침내 피노체트로 살아가는 아들을 발견한다. 마침 피노체트는 영국이 벌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쪽에 호의를 보였고, 이후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되었을 때, 마가릿 대처는 아들을 위해 석방 여론을 조성한다.
제국주의 영국의 전쟁 범죄와 마가릿 대처가 총리로 재임하면서 벌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무수히 많은 노동자, 서민의 삶이 박살났는가를 아는 관객이라면, 마가릿 대처가 피노체트의 '엄마'라는 사실이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의 알레고리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퇴마를 할 줄 알면서 수학에 재능 있는 수녀를 파견한다. 겉으로는 피노체트의 재산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들어가지만, 수녀는 피노체트가 사망한 걸로 위장하고 숨어 사는 한 섬으로 들어가 피노체트의 비밀을 캐는데, 나중에 드러나지만, 이 수녀가 맡은 임무는 피노체트가 숨긴 재산을 빼내는 일이었다. 교회의 타락과 탐욕을 잘 드러내는데, 피노체트의 오른팔인 집사가 수녀를 단두대에서 목을 자른다. 즉, 종교(가톨릭)는 혁명의 시기에 황제, 마리 앙뜨와네트처럼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어야 한다고 말한다.
피노체트와 그의 엄마 마가릿 대처는 자식들(무려 다섯 명)을 남겨두고 떠난다. 이때 피노체트의 자식들이 그렇게 찾던 재산이 바로 피노체트가 가지고 있던 책(피노체트는 개인 도서관에 약 5만5천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가운데 희귀본이라는 걸 보여준다. 피노체트는 희귀본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큰 돈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잠깐 보여주는데, 영화는 터무니없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디테일에서 피노체트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짧지만 컬러로 보인다. 사내 어린아이가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학교로 들어가는 장면인데, 근현대 역사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 모두 남성이라는 걸 암시하면서 끝난다. 피노체트, 마가릿 대처가 모두 '흡혈귀'라는 건 역사의 알레고리다. 지금까지 모든 독재자, 철권 통치와 압제자, 황제, 교황 등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원히 살려는 욕망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욕망이 결코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를 꿈꾸게 만들고, 민중의 피를 빨아 영생하는 권력의 속성, 영원히 권력을 누리고픈 타락한 인간의 욕망을 '흡혈귀'로 상징했다.
인간 개인의 수명은 짧은데, 살아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인간이 여전히 많다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더구나 악행을 저지른 인간은 더 잘 먹고, 잘 살며,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천수를 사는데, 가난한 민중은 살면서 온갖 고생을 하며, 고통과 괴로움으로 살다 일찍 죽는다. 역사는 과연 무엇이고, 인류에게 정의는 있을까? 악을 제거하려면 선량한 사람도 악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법과 제도가 과연 악을 제거할 수 있을까? 등등의 질문이 풀리지 않은 채 머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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