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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슬픔의 삼각형

by 똥이아빠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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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삼각형
-프레첼 스틱을 홍보하는 영화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도 받았고, 봉준호의 '기생충'도 받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폴커 슐뢴도르프의 '양철북',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첸카이거의 '패왕별희', 에밀 쿠스트리차의 '언더그라운드', 누리 빌게제일란의 '윈터 슬립',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 등 수많은 뛰어난 작품이 이 상을 받았다.
게다가 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을 연출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7년에도 '더 스퀘어'로 같은 상을 받았으니, 두 작품을 받은 감독은 몇 명 안 되는 상황에서, 칸 영화제의 애정을 받는 감독이 분명하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해서 그 영화가 다 재미있다고 보장하지 못한다. '펄프 픽션'이나 '기생충'은 99.99%의 관객이 재미있다고 동의할 걸로 안다. '기생충'을 보고는 '엽기적'이라고 말한 어떤 멍청한 인간이 있기는 하다.
 
영화에서 '재미'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재미'를 느끼는 건 관객이 모두 다르다고 보는데, 물론 공통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으니까 영화가 흥행할텐데, 영화 한편, 한편으로 볼 때, '양철북'을 보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윈터 슬립'을 보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 '펄프 픽션'은 재미있어 하는데, '윈터 슬립'은 지루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영화의 주제, 소재, 미장센, 등장인물의 캐릭터, 감독의 연출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따라 '재미'의 스펙트럼이 달라진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도 '재미'라는 기준을 대입하면 어떤 작품이 상을 받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영하의 주제, 소재, 시나리오의 완성도, 인물의 캐릭터, 미장센, 감독의 연출 방식과 의도 등을 모두 기준에 넣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요소를 한 단어로 '작품성'이라고 말한다.
즉,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선정해 상을 주는데, '작품성'을 판단하는 심사위원과 관객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심사위원과 관객의 판단이 일치하는 영화들이 바로 '펄프 픽션', '기생충' 같은 영화이고, 불일치하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슬픔의 삼각형'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심사위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고, 최종 작품상으로 결정되었을 때 조차 강력하게 반대하는 비평가들이 있을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세대가 다른 사람이 서로 개그를 하면, 같은 세대는 이해하고 재미있어 하지만, 다른 세대는 개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썰렁한 분위기가 된다. 개그의 몰이해는 세대 뿐아니라 나라, 인종, 계층, 민족에 따라 달라서, 보편적인 개그가 아니라면 세계를 상대로 공급하는 영화에서는 특정 국가, 계층을 상대로 하는 개그는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 어렵다.
게다가 본격 개그도 아니고 '블랙 코미디'는 진지함과 조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므로, 연출이 더욱 어렵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를 내걸고 비유와 직설을 섞었지만, 정작 관객은 어디가 '블랙 코미디'이고, 어디가 '개그'이며, 어디에서 웃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왜일까? 그게 바로 감독이 노린 지점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관객이 당황하고, 난감하며, 짜증나기를 기대한다. 관객이 감독에게 바라는 '재미'를 역전한 것이다. 이제 관객은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려 고민하고, 머리를 써야 하며, '훌륭한 작품'을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마음 졸여야 한다.
그건 이미 영화 포스터에서 시작한다. '올해 가장 웃긴 영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라는 타이틀은 이 영화가 엄청나게 재미 없다는 걸 말하는 역설이다. 진짜 재미있는 영화는 포스터에 이런 문구를 넣지 않는다. 그러니 이 홍보용 문구를 보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미 감독의 의도에 속은 것이다.
 
블랙 코미디 영화의 재미는 아이러니다. 이 영화에는 아이러니 상황이 자주 등장할 뿐 아니라 그것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2억5천만 달러짜리 호화 요트의 선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인터내셔널가'라는 걸 아는 관객은 그 장면에서 웃는다. '인터내셔널가'를 모르는 관객은 그 장면이 왜 재미있는지, 왜 웃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러시안 자본가와 미국인 사회주의자가 서로 자본주의의 아이콘인 레이건 대통령, 대처 수상 등의  말을 앞세우고, 사회주의의 아이콘인 마르크스, 레닌의 말을 내세우며 배틀을 하는 걸 아는 관객은 웃고, 모르는 관객은 어리둥절한다.
흔들리는 요트에서 만찬이 벌어지고, 온갖 최고급 음식이 나오는데, 배멀미를 하는 자본가, 부르주아들이 바닥을 뒹굴며 돼지처럼 꿀꿀거리고, 음식을 토하는 장면이 바로 자본가, 부르주아를 비웃고, 희화화하는 장면이라는 걸 아는 관객은 웃고, 그렇지 못한 관객은 역겹게만 보인다.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유와 조롱을 통해 사회비판을 하는데, 자본주의 체제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젠더 싸움, 백인과 흑인의 인종 싸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투쟁, 섬에 조난당한 이후 실물(생선, 프레첼)을 장악한 노동자에 의한 권력의 역전까지 다루고 있어 다양한 소재를 뒤섞어 보여주고 있어 관객은 이런 관계를 잘 이해하고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영화는 뒤죽박죽 난장판의 지루한 영화가 된다.
 
관객은 영화 포스터를 보고 들어왔으므로, '이 영화는 웃기다고 했는데, 대체 뭐가 웃긴 거야?'라고 생각하며, 도대체 웃기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난감하다. 가끔 부르주아들이 바닥에 나뒹구는 장면이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보여서 이 장면에서 과장되게 웃게 되는데, 통쾌하게 웃어도 되지만, 그런 장면은 비웃음이 먼저 나온다. 그래, 자본가 새끼들, 부르주아 년놈들, 너희도 당해봐라, 온몸에 똥칠하고, 입에서도 똥물을 내뿜고, 변기에서 똥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똥통에 갇혀 돼지처럼 꿀꿀거리라고! 하는 비웃음이 자연스럽다.
한끼 음식에 25만 달러짜리 시계를 풀어주는 자본가의 재롱을 보면서, 호화 요트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던 여성 에비게일이 '선장'이 되고, 구명정을 차지한 채 잘 생긴 남자 모델 칼을 불러들여(심지어 칼은 애인 야야가 있음에도) 성욕을 채우는 장면은 성 역할을 바꾸면 곧바로 남성이 여성을 성착취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권력의 도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의해 결정되지만, 퇴행한 사회에서는 음식물과 사냥 능력으로 판가름된다. 억만장자가 화장실 청소부 에비게일의 비위를 맞추려 알랑거리고, 프레첼 스틱을 얻으려 칼은 자기의 성을 팔고, 그의 애인 야야는 음식을 위해 칼의 행위를 알면서도 눈감아 준다. 생존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통렬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3부작으로 구성한 영화는 1부에서 '칼과 야야', 2부에서 '요트', 3부에서 '섬'을 다루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직접 관련이 없이, 독립한 작품으로 봐도 된다. 옴니버스 방식으로 구성했고, 각 부에서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어 독립적이다. 
1부에서 칼과 야야의 말다툼이 이어지는데, 그 불편한 장면, 불편한 대화, 불편한 표정, 불편한 상황을 보는 관객은 이 영화가 '웃기는 영화'라고 생각하며 들어왔는데, 마음이 불편한 장면들이 이어져서 몹시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대체 어디에서 웃어야 하는가? 웃기는 장면이 없는 바로 그 상황이 웃기는 것이다. 블랙 코미디다.
2부에서는 본격 아이러니를 동원한다. 이 아이러니를 즐기는 관객은 재미있다. 3부 역시 섬(무인도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고급 리조트가 있는 섬이었다)에 갇힌 표류자들의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통렬함이 있지만 삼부작 모두 등장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이다.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에서 드러내는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보라고. 자본주의와 자본가, 부르주아를 통렬하게 비꼬고, 조롱하는 장면을 읽어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영화가 너무 순한 맛이고, 친절하다. 마지막에 '기생충'을 떠올리는 장면이 아주 잠깐 나오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아무리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가와 부르주아를 조롱하고, 비웃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돼지처럼 나뒹굴던 부르주아들 대부분은 배가 가라앉으면서 죽지만-사회주의자 선장도-살아 남은 자본가는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 것이고, 화장실 청소노동자는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진짜 '블랙 코미디'는 바뀌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고, 자본주의의 착취이며, 실패한 공산주의 체제이고, 극심한 빈부 격차다. 
 
  •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관람한 영화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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