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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맨 오브 액션

by 똥이아빠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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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액션
 
프랑스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을 다룬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픽션을 섞었다.
영화는 심각한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게 낭만적인데, 아마도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사건만 보면 위조지폐 이야기지만, 그보다는 주인공 루시오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으로 본다. 실존 인물인 루시오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다 볼리비아에서 죽었다. 그는 평생 아나키스트로 살았는데, 그의 삶에서 아나키즘이 신념화 하는 과정을 보면서, 한국에서 70년대와 80년대 수많은 청년들이 사회주의자가 되는 과정과 매우 비슷해서 익숙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런 과정이 위험하다는 걸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루시오는 몹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프롤레타리아다. 그가 어릴 때 아버지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은행으로 달려가 약 살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은행원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결국 아버지는 약도 쓰지 못한 채 죽고, 어린 루시오는 소년노동자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가 군대 다녀와서 결혼한 누나와 매형의 도움으로 건축 공사장 노동자로 일하는데, 거기서 좌익 노동자들을 만난다.
이때 만난 노동자들은 1930년대 스페인에서 벌어진 왕당파와 공화파의 전쟁(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전했던 노동자들이고, 좌익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진보적 노동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키코라는 노동자 선배를 알게 되면서 루시오의 삶은 바뀐다. 키코는 행동하는 아나키스트로, 은행을 털어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혁명을 위한 자금으로 무기를 구입하며, 자본주의를 끝장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루시오는 정규 학교를 나오지 못한 무식한 노동자였지만, 자신의 경험으로 노동자를 수탈하는 자본가 계급과 싸움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그 방법으로 키코를 따라다니며 은행을 터는 일을 선택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강도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이 있고, 경찰의 추적이 끈질기고, 키코가 경찰의 총에 맞자 사망하면서 루시오는 은행강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타격을 입히려 고민한다.
 
그 와중에 루시오는 낭뜨대학을 방문해 '안'을 만나게 되는데, '안'은 진보적 활동을 하는 대학생으로, 80년대 한국의 운동권 학생을 떠올리는 캐릭터다. 대학생이면서 혁명을 말하는 안과 노동자이면서 혁명을 말하는 루시오가 만나 두 사람은 같은 이상을 가진 동지와 연인으로 함께 한다. 이때 낭뜨 대학에서의 시위는 1968년 5월 초에 일어나는데, 이 시위가 바로 유럽 전체를 뒤흔든 68혁명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루시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혁명의 중심에 서게 된다.
68혁명은 유럽 사회에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는 사회운동으로, 이 시기 유럽 청년들은 베트남 혁명을 성공한 호치민과 쿠바 혁명을 성공한 체 게바라를 전면에 내세우며 체제 변혁을 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만큼 세계는 혁명의 물결이 일렁이고, 특히 유럽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은 가장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루시오의 매형은 프랑스 조폐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해고되고, 일자리가 없자 루시오는 달러를 위조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게 가능했던 배경에는 루시오가 아나키스트 문건을 비밀리에 인쇄하려고 작은 인쇄소를 하나 매입했고, 처음에는 문건만 인쇄할 생각이었으나 실력이 좋은 인쇄공들과 매형이 마침 조폐국에서 일한 경력이 결합하면서 달러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성립했다.
루시오는 프랑스 주재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쿠바대사에게 위조한 달러를 대량으로 유포해 미국 자본주의를 흔들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쿠바대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마침 프랑스를 방문하는 체 게바라를 만나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체 게바라가 프랑스를 방문한 때는 사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데, 1965년 1월에 알제리를 방문했으니, 프랑스에 왔을 가능성도 있다. 루시오는 체 게바라를 아주 잠깐, 화장실에서 비밀로 만난다. 루시오는 달러 위조지폐를 많이 찍어 유통하면 미국 경제가 흔들리지 않겠느냐고 체 게바라에게 말하는데, 체 게바라는 루시오를 바라보고,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한 나라다'라고.
 
달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된 루시오는 8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나온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고, '안'과 결혼해 딸 줄리엣을 둔 루시오는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데, 임금으로 여행자 수표를 받으면서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여행자 수표는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고, 현금처럼 쓰이고 있어 루시오는 달러보다 여행자 수표를 위조하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을 한다.
더구나 여행자 수표를 발행한 은행이 미국의 최대 은행인 '시티은행'이어서 미국 자본주의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루시오는 과거 동료들과 함께 다시 여행자 수표를 위조해 은행에서 현금으로 인출하는 작전을 펼친다. 일련번호가 같은 여행자 수표를 많이 찍은 다음, 수십, 수백 명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두 다른 지역의 은행에서 수표를 환전한다. 시티은행에서 이 수표를 확인하려면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때는 이미 환전한 흔적이 남지 않기에, 은행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작전은 성공했고, 이렇게 환전한 돈은 가난한 노동자들을 돕는데 쓰였다. 시티은행에서는 프랑스에서 위조 여행자 수표 사건이 발행해 큰 손해를 보자 책임자를 프랑스로 보내 프랑스 경찰과 함께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미 달러 위조지폐 전과가 있는 루시오를 주목하고 있었고, 루시오와 그의 동료들을 미행하거나 도청하기 시작했다. 루시오의 아내 '안'은 이제 위조지폐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자기와 함께 볼리비아로 의료봉사를 하러 가자고 말한다. 루시오는 여전히 신념을 갖고 제국주의와 투쟁하지만, '안'은 혁명운동이 과거의 열정이었으며, 한때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루시오는 내부의 변절자가 고발해 경찰에 체포되고, 재판을 받으면 몇 년에서 십 년 이상 감옥에 갇히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이때 루시오는 시티은행의 담장자와 면담해 위조지폐 원판을 넘겨줄테니 자신을 석방하고 보상금을 달라고 제안한다. 터무니없는 제안이었지만, 시티은행의 신용을 위해서는 루시오가 제안한 내용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어서 시티은행은 루시오를 석방하고, 보상금을 지불하면서 위조할 때 쓴 원판을 받는다.
이후 루시오는 아내와 딸이 있는 볼리비아로 떠나 그곳에서 2020년,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밝은 분위기에 코믹하게 진행하는데,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 가운데 묵직한 연출을 한 영화로 '아메리칸 메이드'를 들 수 있다.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영화라도 코믹하게도 만들 수 있고, 묵직한 느와르로 만들 수 있다. 이 영화 '맨 오브 액션'도 코미디보다는 느와르로 만들었다면 훨씬 작품성이 뛰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감독의 연출 의도는, 심각한 내용이니 오히려 가볍게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보도록 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주제와 형식을 같은 분위기로 만드는 게 관객에게 흥미를 끌지 않을까. 내 취향이라면 이런 주제와 내용의 영화는 느와르 형식으로 연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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