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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경계선

by 똥이아빠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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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이란계 스웨덴 감독인 알리 아바시의 작품. 원작은 스웨덴 소설가 욘 린드크비스트의 단편소설이다. 이 작가의 작품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렛미인'이 유명하다.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좀 불쾌할 수 있다. 그건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등장인물의 외모, 이들이 먹는 음식, 이들이 나누는 섹스 등이 '평범한 인간'과는 사뭇 다르다.
'경계선'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가르는 선이다. 이때 경계선 안과 밖에 존재하는가에 따라 정체성, 삶의 본질 등이 달라진다. 칸트가 말하는 '경계선에 선 인간'과는 다른, 실존적 의미에서의 '경계'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출입국 세관에서 일하는 '티나'는 외모가 조금 특이하다. 물론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주위의 어떤 사람도 티나의 외모를 두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진 나라여서, 티나 역시 자신의 외모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티나가 고민하는 건,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달리 냄새를 맡아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능력이다. 그런 특수한 능력 때문에 세관에서 특히 도움이 되는데, 정작 티나는 그 능력이 어떻게 생겼는지, 타고난 것인지, 본능인지, 학습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다. 게다가 목 근처에는 번개에 맞은 흉터가 있고, 꼬리뼈 부분에 수술한 흔적이 있다. 이런 몸의 흔적들에 대해 아버지는 시원한 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세관에서 특이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보레'라는 사람은 남성처럼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몸수색을 한 동료 세관원의 말에 의하면, 남성 성기가 없었다고 했다.
첫 만남에서 이미 두 사람은 서로 닮은 부분이 많다는 걸 느끼고, 결국 티나는 보레를 자기 집에서 살도록 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티나와 보레가 '트롤'이라는 전혀 새로운 종이라는 사실과 스웨덴의 평범한 사람들이 온갖 추악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현실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세관에서 걸린 한 남성(멀쩡하게 생긴 스웨덴 백인 남성)은 휴대폰에 숨긴 아동포르노 영상물 SD카드를 가지고 있다 티나에게 걸린다. 이 음란물 영상을 분석한 세관에서는 아동포르노를 제작, 유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확신하고, 티나와 동료에게 그들을 추적하라고 명령한다.
티나와 동료는 범인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한 가정집을 찾아가는데, 그곳에는 젊은 백인 부부가 갓난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평범한 집이었다. 두 사람은 실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수상한 생각이 들어 정식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그 집을 수색한다. 결국 그 젊은 백인 부부는 아동포르노를 제작하고 있었고, 이들은 끝까지 자기 범죄를 부인한다.
 
티나와 보레가 '트롤'로 설정된 것은 소설의 메타포다. 여기서 티나와 보레는 어떤 것이어도 상관 없는 '소수자'다. 즉,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누구를 대입해도 이야기는 성립한다. '트롤'은 인간들이 오래 전부터 학살한 결과 지금은 극히 소수가 살아남은 상태다. 트롤들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들끼리 외진 곳에 모여 살거나, 극소수만이 인간 사회에 섞여 살고 있는데, 이때도 자기가 트롤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티나처럼), 알면서도 숨기고 살아야 한다.(보레처럼)
자기가 트롤임을 모르던 티나는 보레가 등장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인간'과는 섹스를 할 수 없었던 티나는 보레와는 섹스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장면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은유라고도 볼 수 있다.
티나는 자기 출생의 비밀을 확실하게 알려고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기 부모가 어떻게 죽임 당했는지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 인간들은 트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고, 트롤을 붙잡아 정신병원에 가둬두고 고문하고, 실험하며 비윤리적 행위를 했다. 이건 과거 히틀러가 유대인을 고문, 학살한 것과 맥을 같이 하며, 일본 제국주의가 731부대를 만들어 중국, 한국인 등을 고문, 실험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즉 강한 자들이 약한 자를 도구화, 실험대상화한다는 점에서 주류집단의 폭력을 의미한다.
스웨덴의 주류인 백인은 아동포르노를 제작하거나 소지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주류 집단인 백인들의 이중성, 위선, 폭력성, 야만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들이 과거 트롤을 고문, 실험, 학살한 사건과 맞물리면서 주류 집단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영화의 반전이라면, 아동포르노를 제작하는 젊은 백인 부부에게 갓난아이를 공급하는 사람이 바로 보레였다는 것, 보레는 인간 사회가 망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기를 훔쳐 백인 부부에게 팔아넘기고 돈을 받는다. 보레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간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티나 개인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티나는 늘 자신의 모습과 능력에 의심을 갖고 있었으며, 자기가 다른 사람과는 분명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가 인간이 아닌, 트롤(성소수자, 이주민일 수도 있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보레는 동료들이 모여 있는 외국으로 떠나고, 티나는 트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티나와 보레 사이에 생긴 아이는 티나의 미래이자, 주류 사회에서는 여전히 소수자인데, 티나가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는 미지수다. 주류 사회(인간)에 스며들어 소수자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기 정체성을 지키며 주류 사회와 떨어져 고립된 채 살아갈 것인가. 이런 딜레마는 모든 소수자들이 갖는 고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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