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일본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by 똥이아빠 2023. 11. 2.
728x90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이 살았던 과거의 삶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묻는다. 그 물음은 비장하고, 역사적이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을 참고해서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섞었고, 여기에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예전 작품들의 추억과 향수의 이미지를 모두 담았다.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을 오래 본 독자,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 곳곳에 드러나는 예전 작품의 흔적을 보며 반갑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첫 장면은 충격적 장면과 함께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을 보인다. 그동안 지브리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포의 충격으로 격렬하면서 거친 움직임으로, 이 장면은 주인공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고 있음을 상징한다. 마히토의 엄마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병원이 공습으로 불타면서 엄마가 사망한다.
이때, 영화는 이 장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일본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 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이지만, 이 사건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미국 공군의 공습으로 도쿄가 불탄 사건을 두고, 일본이 피해자라는 인식을 자라는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심을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마히토는 중학생으로 보이는데, 사랑하는 엄마를 잃었지만, 엄마의 시신도 볼 수 없었고, 예상하지 못한 충격 - 공습 - 으로 엄마를 잃었기에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마히토는 정서적으로 큰 충격에 빠진다. 이후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마히토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마히토의 아버지는 도쿄를 떠나 엄마의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그곳에는 엄마와 꼭 닮은 이모가 있었고, 그 이모는 아버지의 아내가 되었으며, 곧 마히토의 동생을 낳을 거라고 말한다. 마히토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다 갑작스럽게 이모이자 새엄마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다시 큰 충격을 받는다.
일본은 사촌간 혼인이 자연스러운 풍습이고, 한 남자 또는 형제가 두 자매 또는 한 여자와 혼인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다. 즉 근친까지는 아니어도 친족 혼인을 허용하는데, 이걸 인류학적 차원에서 민족 단위의 문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친족혼이 드러내는 부정적 결과는 오늘날 일본인의 생물학적 형태에 꽤 좋지 않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본 관객은 마히토의 아버지와 이모 사이의 관계가 아무렇지 않을 지 모르나, 한국 관객은 이 관계가 불편하다. 한국은 친족혼을 법은 물론 윤리적, 도덕적으로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이 먼저 관객의 몰입과 이해를 방해한다. 물론 이런 설정이 본질도 아니고, 이해할 부분도 있으나, 적어도 마히토가 받는 정서적 충격의 주요한 요인이 되는 건 분명하다. 마히토가 친족혼의 관례, 관습을 몰랐을 리 없지만, 자기 아버지가 친족혼을 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엄마를 참혹하게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이모를 아내로 맞았다는 건 친족혼의 충격을 떠나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이 클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마히토는 그 시대에 부르주아의 자식이다. 그의 아버지는 군수공장의 사장이고, 엄마의 고향집은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저택이다. 전학한 학교에서 마히토는 따돌림을 당한다. 학교에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오는 학생을 상상하기 어려울 때, 마히토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나타났고 - 그건 마히토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히토 아버지의 천박한 부르주아적 만용이다 - 그런 마히토를 가난한 아이들은 꼴보기 싫어한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부르주아 계급과 떼어놓을 수 없다. 그것도 유럽의 역사, 유럽의 정서, 유럽의 계급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고, 일본의 '탈아입구' 세계관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야자키 하야오가 의식했든 아니든 일본 극우, 일본 제국주의 정서가 작품에 스며들어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분명 시작할 때 일본 도쿄의 공습으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풍경과 함께 엄마의 고향 저택이 나오는 순간부터 일본이 아닌,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건 마히토가 겪는 사건이 일본의 역사, 사회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히토가 '이세계(another world)'로 들어가는 과정은 왜가리의 안내로 시작하고, 그곳에서 일곱 할머니를 직간접으로 만난다. 즉, 저택에서 생활하는 일곱 할머니는 '이세계' 존재의 현현이자, 마히토를 지키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그들은 과거에도 마히토의 엄마가 어렸을 때도 존재했으며, 마히토 엄마가 1년이나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를 지켜봤던 증인들이다.
마히토가 '이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직접 원인은 이모이자 계모인 나츠코의 행방불명이다. 나츠코가 '이세계'로 떠나는 건 역설적으로 마히토가 자신을 엄마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마히토와 나츠코의 갈등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작동한다.
나츠코의 행방불명과 '이세계'로 떠나는 건, 영웅 신화에서 영웅이 고향을 떠나 모험을 시작하는 발단으로 작동하는 단서가 된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적에게 납치되거나 인질로 잡히거나, 위험에 놓였을 때, 영웅은 주저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러 떠난다. 여기서 마히토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충격과 이모이자 새엄마인 나츠코를 '엄마'로 받아들여야 하는 양가적 감정으로 몹시 혼란스럽고 괴롭다.
그 괴로움의 고통은 '세계의 붕괴'로 드러난다. '이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이 마히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마히토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그의 집안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한다. 마히토는 붕괴하는 자신의 정신 세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일곱 할머니들과 친구 왜가리와 결정적으로 자기와 또래인 과거의 엄마이자 미래의 엄마를 만난다.
 
마히토가 '이세계'에서 과거의 엄마(미래의 엄마)를 만나는 순간에도 크게 놀라지 않는 건, 그가 마음으로 이미 알아챘기 때문이다. 마히토는 믿기 어려웠지만, 다시 실망하지 않으려는 마음 한쪽의 경계심으로 어린 엄마를 애써 모른 척한다. 마히토는 이모이자 새엄마 나츠코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츠코와 화해한다. 나츠코를 '새엄마 나츠코...엄마'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마히토는 나츠코를 마음으로 엄마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붕괴하는 '이세계'에서 탈출하는 건 마히토가 정서적, 정신적 투라우마를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나츠코와 화해하고, 어린 엄마를 만나면서 슬픔을 극복한다. 어린 엄마는 먼 미래에 다시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죽는 순간을 맞아도 마히토를 낳아 기를 거라고 말한다. 그건 그 어떤 말보다 마히토에게 중요한 의미이며, 엄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최선의 말이기도 하다. 마히토는 엄마에게서 그 말을 듣고 싶었고, 그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것도 엄마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역사로 환원하면, 전쟁으로 불타는 일본 즉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켜 민중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넣는 군국주의자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평화의 세계로 이동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마히토의 아버지는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의 사장으로, 군국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자본가다. 그런 세계에 둘러싸여 살아온 마히토는 바로 그 군국주의 전쟁으로 엄마를 잃는다. 여기서 '엄마'는 여성이자 모성이며 한 민족, 나라의 정체성으로 상징한다고 본다.
마히토 즉 일본인은 군국주의로 짓밟힌 평화로운 세계를 그리워하고, 그 세계를 찾으려는 모험을 떠나고, 마침내 군국주의가 짓밟은 평화와 민주주의 - 엄마와 이모 - 를 만난다. 그 과정에서 마히토는 과거(군국주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물론 이런 해석은 논란이 있겠으나, 이 영화가 개인 마히토의 트라우마 극복 과정을 보여주는 건 확실하지만, 이걸 확대 또는 환원해서 일본의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꾸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반전, 평화주의자로 알려졌고, 그의 작품에는 악당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세계관은 평화와 화해, 공존의 메시지를 드러내며, 개인이나 집단의 역사에서 불행한 과거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화해하길 바라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을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으로, '난해하다'는 일부 관객의 의견도 있지만, 김독의 작품 세계가 더 깊어진 걸로 해석하는 게 좋겠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일본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이브 마이 카  (0) 2022.04.21
이키루 - 구로사와 아키라  (0) 2021.11.27
황혼의 사무라이  (0) 2021.01.13
가구야 공주 이야기  (0) 2020.03.10
피학의 체제에 안주한 사람들  (0) 2019.10.15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일본  (0) 2018.03.27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  (0) 2018.01.24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0) 2017.11.09
[영화] 스팀보이  (0) 2017.09.07
[영화] 아주 긴 변명  (0) 2017.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