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Kvinden i buret
미결처리자. 덴마크 작가인 유시 아들레르 올센의 소설 가운데 '디파트먼트 Q' 시리즈의 1편. 한국에서는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2012년 출판되었다.
영화는 원작 소설에서 발생했던 많은 사건과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압축하고 있어서, 북유럽 스타일의 스릴러를 느끼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잘 만들었다.
이야기의 축은 주인공인 형사 칼과 동료들, 칼의 Q 파트너인 아싸드, 칼의 이혼한 아내와 아들, 이제 막 떠오르는 신인 정치인 메레떼의 실종 사건과 메레떼를 둘러싼 과거의 이야기들이 배경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사건의 단서가 잡히게 되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범인의 범행동기를 독자(관객)이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다.
칼이 미제 사건을 처리하는 부서 '디파트먼트 Q'로 발령을 받은 것은 순전히 자신의 책임 때문이다. 성급하고 미숙한 판단으로 동료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불구로 병상에 누워 있게 되면서, 자책을 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도 이혼을 당하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만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칼은 사건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미결 사건을 처리하는 새로운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되고, 5년 전 벌어졌던 한 미결사건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배에서 실종되었지만 시체를 찾지 못한 이 사건은 단순 자살로 처리되었고, 칼과 아싸드는 사건을 재구성한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만드는 것은 놀랍게도 메레떼의 남동생인데, 그는 어렸을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부모를 잃고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육체는 멀쩡하지만 심리적으로 퇴행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는 낯선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익숙하고 낯익은 대상에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런 현상에 주목한 것은 칼이 아니라 아싸드였다.
칼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형적인 수사 과정을 보여준다. 배에서 실종된 메레떼가 있다. 그를 목격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다. 메레떼는 장애가 있는 동생을 찾기 위해 갑판으로 나갔고, 갑판에서 사라졌다.
수사기록에는 목격자들의 증언 가운데 몇 가지가 누락되어 있었고, 누락된 기록을 토대로 단서를 찾아나가다 보니 메레떼가 만나던 남자들이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의 95%는 남편, 애인, 딱지 맞은 남자라는 것이고, 그들 가운데 범인이 있을 확률은 당연히 우연히 발생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이 사건의 경우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특정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계획적으로 노렸을 가능성이 우연한 범죄 가능성보다 높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칼은 메레떼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의 사진을 모아서 분석하고, 그 사진을 메레떼의 남동생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얻게 되는 한 장의 사진. 이 사진이 결정적 단서가 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메레떼는 구출되기까지 무려 5년 동안 갇혀 있었다. '올드보이'에서 한대수가 무려 15년 동안 갇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약과라고 하겠지만, 아무 이유도 모른 채 5년의 시간을 빈 공간에 갇혀 있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올드보이'에서 한대수는 자기가 갇히게 된 이유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나중에 '너무도 하찮은' 이유로 15년이나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하찮은 이유'가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을 망가뜨린 이유이기도 했으니, 처지가 달라지면 바라보는 시각도, 생각도 다르기 마련임은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메레떼의 경우, 자신이 왜 갇히게 되었는지 전혀 알 지 못한다. 하지만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범인이 자의가 아니라 형사들의 수사가 조여오면서, 결국 최후의 장면에서 그 이유를 알려준다. 1988년 11월 20일. 이 단어만으로 메레떼는 자신을 가둔 사람이 누구인지, 왜 자신을 가뒀는지 알게 된다.
영화는 사건을 해결하지만, 피해자인 메레떼와 범인 사이에 놓여 있는 '하찮은 순간'에 대한 감정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았고, 두 가족이 해체되어 버린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사건이었기에. 별 세 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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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 형사인 칼은 범인과의 총격 사건으로 두 명의 파트너를 잃는 사고를 당한다. 의기소침해 있던 그에게 미결로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정리하는 새로운 직책이 주어진다. 변변치 못한 사무실에서 새롭게 같은 부서로 배정된 아랍계 형사 아사드와 함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오래 된 사건을 정리하던 어느 날, 5년전 실종된 한 여성 정치인의 사건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 칼. 그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려고 하던 순간 상사로부터 이미 자살로 종결 처린된 사건이니 손을 떼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칼과 아사드는 자신들의 직감을 믿고 아무도 몰래 수사를 진행하게 되고 사건이 파헤쳐 질수록 엄청남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구성과 치밀한 연출력으로 심리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는 <미결처리자>는 스칸디나비아 장르영화에 익숙하지 못한 관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 할 것이다. (박도신/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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