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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아수라

by 똥이아빠 2016. 10. 31.


<영화> 아수라

잘 만든 영화. 하드보일드 리얼리즘 느와르 영화라고 해야 할까.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에 별점을 낮게 준 것도 의외였다. 오히려 박평식을 비롯해 여러 평론가들은 별점 세 개로 비슷했다.
평론가들은 야박하게 굴었지만, 나는 이 영화가 꽤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기는 놈이 내 편'이라는 주인공 한도경 형사는 안남시장 박성배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공무원이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한도경은 이미 악인이다. 그가 아내의 이복오빠인 박성배 안남시장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내를 살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지만, 그것이 그의 범죄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한도경은 비도덕적 인물인다. 그는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시장의 뒤를 봐주는 더러운 일을 하지만, 그 자신 아내의 병원에 있는 간호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 가운데 악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검찰마져도 '더러운 손'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누가 더 나쁜 놈이냐, 누가 더 악랄한 놈이냐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미 진흙탕에 발이 빠지면 모두가 진흙이 묻게 되어 있고, 그 속에서 깨끗한 신발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제목 '아수라'는 불교와 힌두교에서 신으로 불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아수라장'이라고 할 때의 그 아수라는 혼돈의 세계를 말한다. 온갖 타락과 악이 혼재해서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상태를 두고 '아수라장'이라고 말하는데, 이 영화는 바로 제목처럼 '아수라'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한도경은 경계의 인물이다. 그는 분명 경찰이지만 서슴없이 법을 어긴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일말의 양심은 그를 햄릿 같은 인물로 보이게 한다. 물론 한도경 자신의 실수이긴 하지만, 그가 저지른 살인 때문에 검찰에 발목을 잡히는 딜레마에 빠진다. 나쁜 놈이긴 하지만 한도경은 자신의 불륜을 아내에게 알리겠다는 검사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로 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좇으며 살아가는데, 선출직 시장 박성배는 재개발을 둘러싸고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박성배의 하수인으로 더러운 일을 해결하는 형사 한도경과 문선모는 자신의 처지에서 어쩔 수 없거나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힌다.
검사 김차인도 강력한 권력을 가졌지만, 그 자신도 검찰 조직에서는 약한 자에 불과할 뿐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 끝에 서로 얽혀 있는 인물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게 된다.
이들이 살고 있는 삶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지옥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고,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의 삶 자체가 지옥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우리는 이 영화에서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다 것이 오히려 씁쓸하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하고, 일부는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반전이 없다는 것인데, 반전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 영화가 리얼리즘에 충실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 우리의 사회에서 반전은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박성배 시장과 검찰 사이에 낀 한도경의 입장에서, 자신이 놓여 있는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원인이 되는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한다는 설정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본다.
이 영화에서 멋진 장면은 자동차로 싸우는 장면이다. 화려한 액션은 아니지만 오히려 영화적 과장 이 느껴지지 않는, 사실적인 묘사가 더 박진감있게 느껴진다.
김성수 감독의 연출은 과장하지 않는 액션과 막장에 몰린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최대한 날것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등장하는 폭력 장면들은 과장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끔찍하다. 영화의 결말 역시, 제목이 상징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옥에서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인간들의 마지막은 결국 파멸의 죽음 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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