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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남미영화

[영화] 아메리칸 초밥왕

by 똥이아빠 2017.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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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메리칸 초밥왕

그녀, 새로운 맛의 세계에 빠지다

‘후아나’는 미혼모로 딸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과일을 팔던 그녀는 어느 날, 강도를 만나 큰 돈을 빼앗기게 된다. 여자의 몸으로 거리에서 장사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말대로 후아나는 취직을 결심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 초밥집 앞에서 주문한 초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초밥의 독특하고 정갈한 이미지에 매혹되어 초밥집 주방에 취직하게 된다. 1년간 주방에서 일하면서 어깨 너머로 셰프 ‘아키’의 초밥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초밥 셰프의 꿈을 꾸게 된 후아나. 하지만 여자이자 서양인이 초밥 셰프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

멕시코 여성과 초밥이라는 조합은 분명 낯설다. 초밥을 만드는 요리사는 주로 남성들이었고, 그것도 대개는 동양인들이다. 여기에 여성, 그것도 멕시코 여성이 도전한다. 성과 인종의 벽을 넘어야 하는 험난한 길이지만 후아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이 영화는 따뜻한 가족 드라마다. 갈등도 거의 없고, 있어도 원만하게 해결된다. 후아나는 미혼모지만 아버지와 함께 씩씩하게 살아가고, 딸도 잘 키우고 있다. 여기에 동양의 낯선 음식인 초밥에 도전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당차고 성실한 여성이다.

가족드라마로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갈등이 없는 영화는 큰 재미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를 만약 ‘켄 로치’ 감독이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미국에서 소수 민족에, 여성이고, 미혼모이며,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한 멕시코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이다.
즉, 이 영화처럼 따뜻한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데 방점이 찍힐 것이다. 물론 힘든 삶을 과장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미국에서 중산층 이하의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따라서 미국에서 가난한 이주 노동자의 삶을 따뜻하게 그리는 것은 실제의 삶을 왜곡할 위험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역시 ‘소재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멕시코 여성과 초밥이라는 조합을 두고 신선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상황에 관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초밥을 훌륭하게 만드는 요리사가 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후아나는 너무 쉽게 이런 과정을 거친다. 게다가 식당의 책임 요리사는 후아나를 적극 지원하고 응원한다. 그런 모습이 바람직하고 좋아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영화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면, 후아나가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와 실제 그의 삶이 어떠한가를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 보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별 생각없이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압력을 받고 있다. 그것은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의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후아나처럼 이주민이고, 미혼모를 키우는 여성이라면 그 압력이 훨씬 클 것은 분명하고, 그 압력의 크기와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만만치 않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따뜻함을 보여주기 위해 더 중요한 것들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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