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라에르치, 나는 혁명이다
우연히 브라질 관련 연속 다큐멘터리. 브라질의 유명한 만화가 라에르치 코치뉴의 성정체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성전환 여성이 숙명여대에 지원했다가 그 학교 학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결국 진학을 포기한 사건이 있었다. 숙명여대 학생회와 페미니스트 그룹들은 성전환 여성을 두고 '타고날 때부터 여성의 성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하고 무식한 표현으로 성전환 여성, 성소수자 여성을 혐오했다.
그런 사람에게 묻는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라에르치는 어떻게 규정하겠는가. 라에르치는 태어나서 60년을 남성으로 살았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세 번 이혼했으며 세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였다. 그러다 60세가 되어 여성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의 의지였으며, 매우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외모는 여성이지만, 그는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으며, 동성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인터섹스'도 아니다. 그는 남성의 성기를 가졌지만 여성의 특징인 유방이 있고, 자신을 '여성'으로 인지하고 행동한다.
이렇게 복잡한 성 환경에 놓인 사람을 규정할 수 있을까. 숙명여대 학생회와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성 전환 여성을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라에르치의 경우는 더욱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생물학적으로 여성과 남성만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가 존재하는데, 이들을 '성기'의 여부만으로 '성별'을 구분한다는 태도는 매우 보수적이고 전근대적 인식이다. 한국의 여성운동 가운데 페미니스트들이 가진 성 인식이 이렇게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이라면, 여성운동은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 다큐멘터리는 라에르치 개인의 성 정체성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당시 브라질 사회의 날카로운 대립도 보인다. 거리에서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는데,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는 '테메르를 구속하라'였다. 즉, 당시 브라질의 최초 여성대통령 지우마가 탄핵당하고, 뒤를 이어 부통령 테메르가 임시 대통령이었을 때, 테메르가 저지른 부패행위가 드러나면서 테메르를 구속하라는 민중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라에르치는 이 시위 현장을 지나면서 과거 극우정권, 군사독재 시절보다는 룰라와 지우마 대통령이 집권했던 민주주의 시대가 더 낫다고 말한다.
개인의 정체성 특히 성 정체성을 성기의 존재만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성기의 여부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폭넓은 성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자유롭게 인지하고, 억압당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라에르치는 말한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런 사회인가, 아니라면 왜 그런가 진지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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