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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침묵

by 똥이아빠 201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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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묵


법정 스릴러를 멜로드라마로 만들었다. 얼마 전 올린 원작영화인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는 전형적인 법정 스릴러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법정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은 법정에서의 상황을 보완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따라서 법정을 구성하는 검사와 변호사, 피고는 캐릭터가 뚜렷하고 개성이 있으며, 서로 상충하는 이미지와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관객이 캐릭터를 따라가면서 감정을 이입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이 영화는 배우 최민식을 소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작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인물은 단 한 명, 최민식 뿐이다. 원작영화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매우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으며, 이들의 역할 또한 만만치 않게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영화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인물의 개성도 없고, 역할도 미미하며, 행동도 소극적이다. 특히 임태산이 고용한 변호사 최희정은 그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하다. 최희정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마치 70년대를 사는 사람처럼 말할 수 없이 촌스러운데, 아무리 가난한 변호사라도 한국사회에서 변호사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고, 거기에 미혼여성인 최희정은 자신의 외모에 많은 관심과 신경을 쓰기 마련일텐데, 어쩌면 그렇게 촌스럽게 옷을 입고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이 원작 영화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오로지 모든 일을 임태산 혼자 해결하게 만들면서, 이 영화는 최민식 1인 영화가 되고 말았다. 감독은 최민식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스타성을 믿고 그에게 영화 전체를 떠맡긴 것처럼 보이는데, 최민식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다른 배우들의 존재감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연기 또한 문제가 많아서 영화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리메이크를 하는 이유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다 확대하고, 강렬하게 만들어서 원작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리메이크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원작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뛰어나야 하는데, 이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전혀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았다면 이런 방식의 영화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부분부터 너무 지루하고, 관객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런 딸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의지가 모든 사람을 속이는 것이었다면,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내재되어 있어야 할 것인데, 영화에서는 그런 복선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딸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가 희생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자식 교육 프로그램을 영화로 만든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자식 사랑을 예찬하는 것도 아닐텐데,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원작 영화는 법정 스릴러라는 확실한 주제를 가지고 접근해서 적어도 극적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결론은 원작 영화나 이 영화 모두 똑같은데, 아버지의 행위가 당위성이 없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원작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데, 내가 다시 쓴다면, 재벌인 임태산을 조폭과 연계하고, 임태산의 딸을 다른 조폭 세력의 부두목과 연결시키고, 임태산의 애인을 비밀경찰로 만들겠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생기도록 하고, 비밀경찰인 임태산의 애인이 죽으면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조직폭력 집단끼리의 싸움과 경찰이 서로 물고 물리는 대반격이 시작되도록 하겠다.
이 영화는 원작 영화보다 사실성에서 떠 떨어지는 내용을 보이고 있다. 변호사 최희정이 폐쇄회로 카메라의 녹화된 하드디스크를 입수하는 장면도 그렇고, 임태산이 만든 세트장을 너무도 간단하게 발견하는 것도 그렇다. 나름대로 복선과 반전을 만들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관객에게는 그런 의도가 전혀 먹히지 않아서 흥미를 끌지 못했다. 최민식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퍽 아쉽지만 실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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