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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자유로운글

'돌아온 탕자'는 용서해야 하는가?

by 똥이아빠 2017. 11. 26.
'돌아온 탕자'는 용서해야 하는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기독교 성경 가운데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부자 노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먼 지역으로 떠나 그곳에서 방탕하게 지내다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치기를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버지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극진하게 맞이하여 기뻐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큰아들이 들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니 집안이 잔치를 한다고 떠들썩해서 무슨 일인가 의아했는데, 동생이 돌아와서 소를 잡고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는 화를 냈지만, 아버지는 큰아들을 말리면서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라고 타일렀다. 

이후 큰아들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요즘 말로 하자면 '왓 더 퍽'이 되겠다. 아버지 재산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서 받아 나간 동생 새끼가 신나게 즐기다가 돈 떨어지니까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온 것을 본 형은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온다. 자기는 동생이 나간 다음에도 줄곧 집안의 일꾼들과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밭으로, 농장으로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일을 하고 돌아오는 생활을 했는데, 약아빠지고 교활한 동생 새끼는 재산을 받아서 신나게 즐기다가 뻔뻔하게 기어들어왔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나겠는가.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 이야기가 야훼를 믿지 않는 이방인이 신에게 귀화하는 은유라고 말하고 있는데, 신의 자비로움과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비유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이 이야기와 매우 흡사해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다.

어떤 교장에게 두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들이 모두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학교 교장이던 엄마에게, 더 이상 학교에 가라고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학교를 증오했는데, 공교육 시스템의 핵심에 있던 교장은 그런 두 자식의 장래가 몹시 걱정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두 아이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게 된 원인이 바로 엄마인 교장에게 있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아이들을 점수 기계로 만들면서 악랄하게 학대했다. 물론 자신이 아이들을 얼마나 학대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겠지만.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전까지 강요하지 않는 요령을 배웠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을 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그렇게 아이 둘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책으로 써서 냈다. 그것도 '반성문'이라는 제목까지 넣어가면서. 이런 책을 내는 의도는 '나는 이렇게 좋고 훌륭한 엄마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싶은 인정욕구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지난 태도를 반성한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훌륭하게 자리 잡은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것이 더 클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쓴 사람이 바로 '돌아온 탕자'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병신같은 탕자 즉 부자의 둘째 아들로 살아가다 죽는다. 그들은 어리석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멍청한지도 모른다. 자식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부모들이 바로 그들이다. 죽으나 사나 학교에 가야하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서울대학교를 가야 하고, 판검사가 되야 하는 것이 이들 '탕자' 같은 부모들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멍청하고 병신같은 부모들은 그대로 '탕자'로 살다 죽는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극히 일부가 바로 이 교장처럼, 한국 교육의 잘못된 시스템을 인정하고, 자식의 선택을 존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식이 건강하게 성장하면 언론에서는 그런 부모를 칭송하고 찬양한다. 바로 '돌아온 탕자'가 되는 것이다.
가장 열받는 것은-아니, 열받을 일도 없지만-늘 한국 교육 시스템의 왜곡을 비판하면서 독립적으로 자식을 키운 부모들이다. 이들은 '돌아온 탕자'의 형처럼, 늘 변함없이 자식의 삶을 지지하고 학교 교육에 연연하지 않으며, 올바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하는 부모들과 학생들이다. 정말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쪽에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온갖 병신짓을 하던 인간들이 어떤 이유로 개과천선을 했다고 해서 마치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지는 것을 보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부모와 학생들이 보기에 한심하고 역겹기만 하다.
자식을 도구로 생각하던 부모가 마침내 개과천선을 해서, 그것도 자식이 죽겠다고 최후의 통첩을 날리고, 무수한 고통과 저항을 통해 부모의 의도를 무력화한 다음에서야 마지못해 자식을 인정한 다음에야 문제가 바로 자신(부모)에게 있다는 걸 깨달은 부모가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것인양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것은 역겨움을 일으킨다. 그가 변하게 된 것이 자식들의 저항에 의해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자식들이 만약 기존의 삶에서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갔다면 과연 새로운 삶의 방향에 대해서 눈꼽만큼이라도 생각을 해봤을까?
결국 타의에 의한 마지못한 깨달음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기 위해 마치 자기가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깨달은 것처럼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다른 쪽에서 항상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