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운사이징
분자축소기술이 발명되고, 모든 물체를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사람을 작게 만들 때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모든 생물을 작게 만든다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다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로 좋은 점을 다뤘다. 축소인간이 존재할 때, 그들의 안전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정상크기의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축소인간이 사는 사회를 쉽게 망가뜨릴 수 있으니, 비록 몸은 작아도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만큼 대량학살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축소인간이 되려는 사람들의 동기는 거의 모두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정상크기일 때 가지고 있던 돈이 1억원이라면 축소인간이 되면 돈의 가치가 100배 이상 늘어나므로 100억원이 된다. 이 논리는 타당해 보인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축소인간이 되고 싶은 동기가 된다.
축소인간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축소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그들의 경제적인 가치를 평가하고, 축소인간들이 죽을 때까지 돌보고 관리하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기업이라는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이윤의 창출이다. 즉 인간을 축소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만약 특정기업이 다운사이징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들을 축소해서 특정한 장소에서 살도록 하는 대신 그들의 재산을 모두 가져가고 관리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부와 마찰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이유와 기업의 이윤추구가 서로에게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축소인간을 선택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이후, 개인의 권리와 의무가 문제다. 이 영화에서도 축소인간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축소인간은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으며, 시민이라면 져야 할 의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그런 모든 의무와 권리를 특정 기업에 맡기게 되고, 기업에 의해 '관리'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면서 축소인간들은 자기 의지대로 살기가 어렵게 된다.
정상크기의 인간들도 자본과 국가의 예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축소인간들은 거기에서 더 직접적으로 기업의 관리를 받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본에 종속되는 인간의 처지를 풍자하고 있다. 이런 기술이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해도 나는 축소인간이 되지는 않겠다. 내가 경제적으로 쪼들린다 해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위해 내 삶 전체를 누군가에게, 특히 기업에 맡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해서 자기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도 좋은 건 아니지만, 아무리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산다 해도, 자기의 존재 전체를 다른 사람이 좌우하는 것은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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