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서버비콘

by 똥이아빠 2018. 2. 10.


[영화] 서버비콘


아무런 정보 없이 보기 시작한 영화. 영화를 보면서,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건 '코엔 형제 영화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코엔 형제의 영화는 개성이 너무 뚜렷해서 다른 영화들과 쉽게 구분이 된다. 연출 방식, 분위기,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방식, 등장인물들의 연기, 심지어 소품의 디테일까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데, 감독은 조지 클루니, 시나리오는 역시나 코엔 형제가 있었다. 영화는 조지 클루니가 감독을 했지만 코엔 형제의 영화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동안 봤던 코엔 형제의 영화들과 같은 느낌, 같은 분위기여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블랙 코미디를 다루는 방식도 낯익고,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추악한 본질에 관해 은유하는 것도 역시 훌륭했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는 것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 영화를 탁월하게 만들어 내는 이들의 능력이 대단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방식도 뛰어나다. 사소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더러운 욕망과 어리석고 멍청한 대중심리를 동시에 그려내는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는 미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메세지이기도 하다.

백인들이 모여 사는 서버비콘에 흑인 가족이 이사 온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들어 온 흑인 가족을 배척하고, 그들을 쫓아내려 한다. 그 와중에 한 백인의 집에 강도가 침입하고, 주인공인 소년의 엄마를 살해한다. 졸지에 엄마를 잃은 아이는 슬픔에 잠기고, 이웃집의 흑인 아이와 친구가 된다.

소년 니키의 아버지 라지는 강도가 들었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용의자를 잡아 보여주지만 라지는 전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 니키도 있었고, 니키는 분명 엄마를 죽인 강도가 거기 있는 것을 봤지만 아버지가 용의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이제 관객들은 눈치를 챌 것이다. 강도들이 침입해 아내를 죽이는 배후에 누가 있는지. 결국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 가고, 설상가상 보험조사원이 찾아와 니키의 이모에게 함정 조사를 한 다음 라지를 협박한다. 보험금을 전부 가져가겠다는 보험조사원을 죽이게 되고, 살인청부를 했던 두 명의 강도들도 사고로 죽거나 니키의 외삼촌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 와중에 니키의 외삼촌도 칼에 맞아 죽는다. 니키의 이모이자 아버지와 불륜을 맺었던 마가렛도 강도에게 죽임을 당하고, 마지막으로 살아 남았던 니키의 아버지 라지도 마가렛이 니키를 죽이기 위해 만들었던 세제가 든 샌드위치와 우유를 마시고 죽는다. 

결국 이 영화에서 니키의 가족-엄마, 아버지, 이모, 외삼촌-이 모두 죽고, 살인청부를 맡은 두 명의 강도도 죽고, 보험조사관도 죽는다. 이렇게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확산하는 방식이 코엔 형제가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다. 즉, '시작은 미약하되 끝은 창대하리라' 기법이다. 사람들의 삶이란, 아주 작은 오류가 걷잡을 수 없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우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라지가 처제와 불륜을 맺고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서 외국으로 도주한다는 설계는 결코 '작은 오류'일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 심각한 반인륜 범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가족들의 삶이 파탄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 라지처럼 살인청부를 하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

코엔 형제는 백인우월주의를 비웃고,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 의식이 얼마나 형편없는 편견과 어리석음의 결과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백인들이 흑인을 쫓아내기 위해 벌이는 행위는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백인들만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모른다. 이것은 '백인' 뿐만 아니라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말할 수 없는 어리석음과 멍청함은 무신론자들이 보기에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정작 종교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다. 즉, 특정한 이념에 매몰될 때, 인간의 이성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 라지가 처제와 불륜을 저지른 이후, 그가 생각하고 실행한 모든 행동은 보통의 사람이 봤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멍청한 짓이지만 정작 라지는 자신의 계획이 완벽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보험조사원이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계획 살인이라는 것을 밝혀낼 정도로 허술한 범죄를 완벽하다고 믿는 것이다. 어리석음이란, 한 없는 욕망의 근원이자 열매다. 지금 이명박이 보여주고 있는 희대의 코미디도 그의 욕망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는 권력을 통해 천문학적인 국민의 돈을 빼돌려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불구덩이로 끌어당기는 것이 바로 자기의 탐욕임을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탐욕은 스스로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행위임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0) 2018.03.28
[영화] 패터슨  (0) 2018.03.26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0) 2018.02.28
[영화] 세븐 싸이코패스  (0) 2018.02.17
[영화] 쓰리 빌보드  (0) 2018.02.12
[영화] 코코  (0) 2018.02.04
[영화] 지오스톰  (0) 2018.01.31
[영화] 다운사이징  (0) 2018.01.31
[영화] 직쏘  (0) 2018.01.25
[영화] 지니어스  (0) 201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