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온라인으로 실시간 글을 쓰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창작 단편소설, 영화 리뷰, 책 읽고 리뷰하기, 짧은 에세이를 쓰는 정도의 글쓰기를 미리 준비하지 않고, 곧바로 실시간으로 해볼 계획입니다.
멘트는 들어가지 않고, 배경음악만으로 대신합니다. 그럼, 오늘은 처음 시작하는 날이니 간단하게 영화 리뷰를 쓰겠습니다.
여기서 쓴 리뷰는 제 블로그에 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읽기 불편한 분은 나중에 완성된 원고를 블로그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프라이즈 위너
넷플릭스에서 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감독은 제인 앤더슨, 주연 줄리안 무어, 우디 해럴슨. 두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다.
영화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디파이언스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에버린은 아직 젊은 나이에 무려 열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는 전업주부로 남편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아직 젖을 먹는 아기부터 청소년이 된 큰딸까지 열 명의 아이들이 먹고, 입고, 쓰는 물건과 식량이 여느집보다 몇 배가 더 들어가지만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살아가기 몹시 힘든 처지다.
에버린은 결혼 전에 잡지사나 언론사에 취직해 글을 쓰는 것이 꿈이었으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자신의 꿈을 접었다. 남편 역시 결혼 전에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였지만 교통사고로 목을 다치면서 더 이상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되고, 공장노동자로 살아간다.
다행히 에버린은 글쓰기 재능을 발휘해 크고 작은 기업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 적극 참가해 많은 상품과 상금을 받아 그걸로 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
공모전은 지금도 세계 여러나라에서 활발하게 진행하는 이벤트로, 공모전에 전문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공모전 분야는 의외로 거대한 시장이다. 1950년대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경제가 매우 활발하게 살아나고 있었고, 그 바탕에는 과학기술, 전자기술의 발달이 있었다. 50년대에 흑백 텔레비전에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진화하고, 냉장고, 냉동고, 전기청소기 등 지금 일반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전자제품들의 최초 제품이 이미 50년대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에버린은 자신의 글쓰기 재능을 공모전에 활용하면서, 집에 늘 새로운 제품과 음식, 상금이 도착했다. 아이들도 엄마의 재능에 놀라면서, 한편 기대가 컸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그 재능이 부럽지만, 공장노동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가 늘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똑똑하고 재능 있는 아내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건 같은 남자로서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남편은 늘 퇴근하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라디오로 야구 중계방송을 듣는데, 자기가 응원하는 팀-아마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이 지면 혼자 분을 삭이지 못해 살림을 때려부수고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추태를 보인다. 그나마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랄까.
옛날 우리의 부모들 가운데도 그런 아버지가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더 없이 선량하고 좋은 아버지지만, 술만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소리지르고, 살림을 때려부수고, 마누라를 때리고, 아이들에게 욕지거리를 하는 그런 아버지 말이다.
에버린의 남편 켈리는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면서, 그는 먹고 살기 위해-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로-공장노동자가 되었다. 그의 좌절과 상실을 알아주는 사람은 오로지 에버린 뿐이다. 그런 에버린에게도 회환이 없을까.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술주정뱅이가 되어 월급으로 술을 다 사 마시고, 아이들에게 줄 우유값도 마련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으로 전락한 것을 보면서, 자신의 결혼 전, 잡지사에 취직했다면 지금쯤 우아한 삶을 살았을텐데, 하는 후회는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지금의 삶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에버린은 말한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고. 모성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지만, 에버린의 품성과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우아하며 감동으로 다가온다.
남편이 돈을 가져오지 않아도, 외상값 때문에 아이들에게 줄 우유를 마련하지 못해도, 남편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려도, 아이들이 크고 작은 장난으로 사고를 쳐도, 에버린은 단 한번도 얼굴을 찌프리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를 비난하는 아이들을 달래고, 사고친 남편의 마음을 위로한다. 특이하게도 이 영화에서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엄마’와 ‘아빠’다. 보통 ‘여보’나 ‘자기’라는 호칭에 익숙한데 특이한 경우였다. 그 호칭이 의미하는 것처럼, 남편 켈리는 에버린에게 있어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나 대들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능하고, 늘 사고를 치는 남편은 열등감으로 쩔쩔매고 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에버린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재능을 최대로 활용해 어떻게든 집안을 꾸려나가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에버린은 꽤 많은 상금과 상품을 받는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성장해 저마다의 세상으로 떠나고, 작은 집에는 두 늙은 부부만 남았다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에버린 몰래 모아둔 연금을 남긴다. 에버린은 남편의 마지막 선물로 더 이상 돈 때문에 고통 받을 일 없이 남은 세상을 살아가고, 에버린이 세상을 뜨고, 그의 자식들이 모여 부모를 추억한다.
특히 인상적인 건, 에버린의 모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성-이다. 자식에게 늘 한결같이 따뜻하고, 오로지 사랑으로 대하는 에버린을 보면서, 세상에는 특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분명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런 따뜻하고, 한결같은 사랑은 지식이나 돈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품성이고, 개인의 독특한 자아일 것이다. 훌륭한 부모나 가족, 친척의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만, 에버린처럼 우아하고 한결같은 사람은 보기 드문 인간형이다.
자칫, 영화를 오해하면, 에버린의 처지가 고통스러운 환경을 말없이 견디는 여성상으로 왜곡될 수 있다. 에버린은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다만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힘들면 힘든대로,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자기 앞에 닥치는 삶의 물결을 거부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태도, 그것은 성숙한 인간이 보여주는 담대한 모습이다. 에버린이 여성이기에 더욱, 무수한 차별과 억압의 사회상황에서 열 명의 자식을 키우는 그의 모습은 위대한 모성이며 깊이 존경할 인간의 모습이다.
이 리뷰는 저의 블로그에 곧 올리겠습니다. 트위치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한 내용은 자동으로 녹화되어 나중에 유튜브에도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테스트로 생방송을 진행했고, 앞으로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생방송을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루에 한편 정도의 리뷰를 쓰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 정도 짧은 글은 1-2시간 정도면 쓸 수 있습니다.
시청해주신 분께 감사합니다. 이상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더 이퀄라이저 (0) | 2018.12.10 |
---|---|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0) | 2018.11.26 |
[영화] 루스에게 생긴 일 (0) | 2018.11.12 |
[영화] 라디오 (0) | 2018.11.02 |
[영화] 굿 메리지 (0) | 2018.10.30 |
[영화] 써스펙트 (0) | 2018.10.29 |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0) | 2018.08.31 |
[영화] 제인 도 (0) | 2018.07.29 |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 (0) | 2018.07.29 |
마인드 헌터 (0) | 2018.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