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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언니

by 똥이아빠 2021. 2. 5.

언니

 

주제도, 내용도 훌륭한데 시나리오와 연출이 아쉽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정통 액션 스릴러로 충분하겠다. 이시영의 액션도 좋고, 여성 주인공이 악한 짓을 저지른 남성들을 응징하는 내용이라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작품 '데쓰프루프'의 여성 주인공들이 벌이는 멋진 활약이나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이 보여주는 뛰어난 액션 등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인데, 어중간한 액션으로 끝난 것이 퍽 아쉽다.

인애는 무술로 단련된 경호원이다.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은혜는 발달장애인이지만 일반 고등학교에 다닌다. 은혜는 학교에서 일진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성매매 도구로 그들의 돈벌이에 쓰였으며, 동네에서 가게를 하는 중년의 남성들에게 성폭행당한뒤 인신매매 조직에 팔린다. 

납치 당한 동생을 찾는 인애는 최초의 단서인 학교 일진 양아치를 찾아가는 것으로 수색을 시작한다. 다행히 일진 양아치들과 어울리는 친구 가운데 은혜를 도우려는 학생이 있었고, 그가 일진들이 은혜를 괴롭히는 동영상을 인애의 핸드폰으로 전송하면서 단서를 알려준다.

인애는 일진 양아치들을 응징하는데, 응징하는 수위가 너무 낮다. 동생을 그렇게 괴롭히고, 폭행하고, 성매매까지 강제로 시키던 범죄자들을 그저 몇 대 때리고 마는 걸 보면서 관객이 오히려 더 화가 나고, 짜증나는 상태가 된다. 적어도 팔다리 정도는 꺾어놔야 하지 않을까.

은혜가 납치, 실종된 사건을 경찰에게 신고하지만, 경찰은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경찰이 이 사건을 맡으면 시간만 질질 끌 거라고 판단한 인애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은혜를 성매매 시키며 꽃뱀 함정을 팠던 일진 양아치들이 오히려 조폭 하사장에게 당하고, 합의금으로 천만원을 주지 않자, 하사장은 은혜를 안마업소에 팔아넘긴다. 

인애는 사채업자 하사장, 안마업소 사장을 차례로 찾아가 그들을 반쯤 죽여 놓고 그들에게서 은혜의 행방을 추궁한다. 그들의 자백으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동네 중년 남성들이 은혜를 차례로 성폭행하고 있었다는 것, 지체장애가 있는 은혜를 돌아가며 성폭행한 이 남성들은 마을에서 자영업을 하는 자들이고, 평범한 서민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인애는 이 남성들을 하나씩 찾아가 응징하는데, 손가락을 짓뭉개고, 액자로 목을 긋고, 해머로 손을 박살 내는 등 나름 최선을 다해 응징한다. 관객은 이 정도 응징으로 복수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이 장면들에서 응징이 좀 더 강했으면 했다. 즉, 악행을 저지른 자들의 육체가 더 참혹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데, 기본적으로 모두 성불구를 만들고, 이빨을 모두 박살내서 살아도 산 것같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이 당하는 피해를 상쇄할 수 있는 정도라면 당연히 그 남성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지만, 최소한 죽기 직전까지 그 남성들의 육체를 망가뜨려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은혜는 안마업소에서 다시 누군가에게 팔려가는데, 은혜를 끌고 간 사람은 시의원의 비서였다. 시의원이 은혜를 찍어서 데리고 오라는 이유는, 인애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 시의원은 은혜가 강제로 끌려 온 안마업소에서 은혜를 불러 성폭행하려다 인애에게 왼쪽 눈을 찔려 실명하고, 그 복수로 은혜를 잡고, 인애까지 불러들여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시의원은 조폭이었다는 설정이 다소 무리지만, 극단적인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이어서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다행히 시의원의 비서는 양심 있는 사람이어서 은혜를 풀어주려 하지만, 시의원은 비서를 살해한다.

인애는 혼자 시의원 무리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고, 수많은 조폭들과 결투를 벌인다. 이 액션 장면은 여성 주인공 한 명과 수십 명의 남성 조폭들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형식이다. 특히 인애는 동생 은혜가 사 준 붉은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여기에 붉은색 하이힐을 신었는데, 은혜를 성폭행한 남성들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붉은색 하이힐을 잃어버린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조폭들은 한국의 기득권 남성을 상징한다. '검은색 양복'은 남성우월, 가부장제, 기득권자로서의 남성 일반을 상징하는데, 이는 또한 조폭들의 옷이기도 하다. 검은색 양복들 사이에서 붉은색 스커트는 마치 춤추는 것처럼 화려하고, 우아하며 아름답다. 인애가 휘두르는 주먹은 날카롭다기보다 애처롭다. 

동생 은혜가 장애인으로, 여성으로 살면서 당했던 그 참혹하고 비극적인 삶의 시간을 인애는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다. 그 역시 여성으로 살면서 당하는 수많은 차별과 모멸, 비하의 경험이 쌓여 있었고, 남성 일반은 그의 적이었다. 좋은 남성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쁜 남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여성에게 상처를 입힌다.

인애는 동생을 구출해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인애는 비극적 결말을 예상한다. 피해자인 두 여성이 왜 행복한 결말을 맞이 할 수 없는지 안타깝지만, 이 비극적 결말이야말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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