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소녀
충격적인 영화다. 주제,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모두 예사롭지 않을 뿐 아니라 탁월하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작품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영화는 가능성과 희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살해하는가'에 관한 핍진한 관찰 기록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 뿐 아니라 음악, 음향, 인물들이 놓여 있는 극단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도록 한다.
경민이 실종되고, 담임 선생과 형사들은 전날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를 불러 경민의 실종에 관해 묻는다. 학교에 오지 않은 경민의 부재를 보면서, 영희도 마음 속에 한가닥 불안함이 꿈틀거리는데, 담임과 형사는 경민의 실종에 영희가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질문한다.
영희는 억울하다. 형사는 영희와 친하게 지내는 한솔을 불러 영희와 대질 심문을 한다. 한솔은 영희가 경민에게 '죽을 용기도 없는 게...'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면서 영희의 말이 경민의 실종 또는 자살을 부추기는 말을 했을 거라는 의미로 말한다.
영희는 사실을 말하지만, 이때까지 관객은 영희와 한솔의 진술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영희의 태도는 자칫 도도하고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담임을 비롯한 학교의 선생과 경민의 부모는 경민이 아무 이유없이 실종되거나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고 믿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가장 만만한 아이가 영희였다. 실종 전날 밤 늦게까지 함께 있었고, 경민의 가방과 신발이 발견된 장소 부근에 있는 CCTV를 모두 조사한 결과, 경민이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렇다면 경민과 마지막까지 있었던 영희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경민이 실종 또는 자살한 것일까를 선생들과 형사들은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했다.
영화에서 경민은 자살한 것이 확실하다. 다만, 경민이 왜 자살했는가에 관한 이유나 암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중에 경민의 시신이 발견되고, 모든 사람들 - 선생들, 형사들, 심지어 같은 반의 친구들도 - 이 영희를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면서, 영희도 억울함을 벗어나려고 자살을 기도한다.
영희가 병실에서 겨우 회복하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찾아와 경민의 집에서 유서를 발견했다고 알려준다. 즉, 경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유서를 쓰고 자살한 것이며, 영희가 함께 있었던 날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선생들과 같은 반 친구들은 - 그들 가운데는 영희의 집으로 쳐들어가 영희를 린치한 몇 명의 같은 반 친구들도 있었다 - 경민이 영희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상황이 분명해지는 순간 모두 태도를 바꾼다. 영희를 의심하고 비난하던 친구들이 다정한 태도로 영희의 건강을 걱정하고, 병문안을 오며, 기꺼이 어려운 일을 돕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같은 세대의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경민의 자살에 영희보다 더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한솔'이었다. 영희와 가까운 친구였지만, 영희가 경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질투를 느끼고, 영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다. 한솔은 영희가 병원에 있을 때 찾아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한다. 영희도 한솔을 안아주고 입맞춤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넣은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희와 한솔은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영희를 괴롭히는 또 한 사람은 경민의 엄마다. 경민이 자살한 직접적 원인은 알고 보면 그의 부모에게 있다. 경민의 부모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원인과 책임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경민의 유서가 발견되었음에도 영희의 병실을 찾아와 영희를 괴롭힌다.
처음부터 영희의 말을 믿지 않았던 선생들과 형사들, 경민의 엄마는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경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으려 하고, 없는 죄를 덮어 씌우려 했던 기성세대에게 영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는 '자신의 죽음'이다. 그래서 영희는 표백제를 먹고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실패한 죽음 이후에도 영희는 끝없이 자살을 궁리한다. 이때 두번째 자살은 명백한 의도와 목적을 갖는다.
영희가 경민에게도 말했듯, 지금과 같은 의미 없는 삶이라면 사는 것과 죽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은 가장 고통스러운 세대다. 이미 유치원,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는 암기식 수업을 해야 하고,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니며 밤낮 없이 공부, 공부, 공부만 하는 지겹고 역겨운 나날이 무려 1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여기에 부모의 무관심(경민), 가난(영희)과 같은 외부적 환경까지 겹치면서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은 우울하고 괴로운 심리상태가 된다. 청소년들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질식시킨 건 기성세대인데, 정작 그 기성세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영희는 그런 기성세대를 보면서 환멸과 증오의 감정이 차갑고도 날카롭게 솟아나는 걸 느낀다. 영희는 한솔과 함께 경민의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다. 자기(영희)는 경민이 왜 죽었는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경민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내(영희)가 왜 죽었는지 사람들이 당신(경민 엄마)에게 물어볼 거다. 그때 내 죽음에 대한 이유나 잘 대답하길 바란다.
즉, 영희는 경민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추악한 책임전가를 그대로 경민 엄마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부분에서 경민의 죽음을 두고 선생들, 형사들, 경민 엄마는 영희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한솔은 그 장면을 보면서 침묵한다.
이제, 영희가 죽게 되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경민 엄마가 되고, 그 옆에 한솔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다. 형사와 사람들은 영희의 죽음에 대해 경민 엄마에게 물을 것이고, 한솔은 역시 침묵할 것이다. 경민 엄마는 당연히 영희의 죽음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을 것이며, 한솔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도 사과할 대상이 사라지고, 죄책감은 무겁게 그의 삶을 짓누를 것이다.
처음부터 경민의 죽음은 기성세대가 만든 원죄의 결과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타살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세대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워 책임을 전가한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이 기성세대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되고, 기성세대에 대한 복수는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완성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김의석 감독은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데,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연출부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여성의 심리, 세부적인 생활 모습을 보면서 여성 감독인 줄 알았는데, 남성 감독이어서 놀라웠다.
영희가 형사에게 추궁당하고, 마치 범인인양 낙인 찍히고 나와서 화장실에 앉아 생리대를 보는 장면은 영희의 심리와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희는 죽을 만큼 억울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하혈인 것처럼 보이는 다량의 생리혈을 보여줌으로써, 영희가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는 걸 관객이 느끼게 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영희는 중간에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볼 듯 하다 다시 걷는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 안쪽을 향해. 영희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있었을까. 성대를 다쳐 말을 하지 못하는 신세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뱉어내지 못한다. 그의 침묵은 죽음보다 무겁다.
배우 전여빈의 연기는 마치 '곡성'에서 어린이 배우 '김환희'의 연기와 비교할 수 있다. 그만큼 처절하고 극적이다. '영희'는 자존감도 있고,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청소년이지만, 그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건방지고 불편하게 보인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신세대를 길들이려는 기성세대의 어리석은 모습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억울한 심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자신을 죽임으로써 기성세대에 복수하겠다는 영희의 태도는, 죽을지언정 기성세대에 굴복하거나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고발하겠다는 자기파괴적 행동이 극단적으로 보여도 그같은 방법 밖에는 가지지 못한 약자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훌륭한 신세대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죽인 신세대이기도 하다. 아니,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 큰 신세대였고, 그를 죽인 기성세대는 오만하고 건방지며, 비겁하고, 야비한 존재였음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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