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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구타유발자들

by 똥이아빠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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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유발자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블랙코미디로만 생각했고, 리뷰 쓸 생각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이 영화는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다. 마침 넷플릭스에 있어서 천천히 생각하며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작품으로는 상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bloody aria'다. 한글 제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지극히 평범한 공간, 가장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블랙코미디와 공포, 스릴러를 뒤섞은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좁은 무대에서 공간이 거의 변하지 않고 배우들의 대사만으로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저수지의 개들'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고, 뒤로 가면서 인물의 이중성, 폭력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유혈이 낭자한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모방했다거나 직접 영향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이 작품을 모욕하는 것이다.

 

영화는 밝고 경쾌하게 시작한다. 푸르른 하늘과 소프라노 아리아가 청량하게 울려퍼지는 공간으로 매가 날아가고, 강원도 산골의 한적하고 깨끗한 풍경이 펼쳐진다. 차가 거의 없는 도로에 이제 막 공장에서 나와 임시번호를 단 새하얀 벤츠가 달려가고 있다.

이 시작 풍경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한동안은 이 영화의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없는 내용이 이어진다. 반짝거리는 벤츠에 탄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대화는 분명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중년남성은 음악대학 교수이고, 젊은 여성은 그의 제자인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점심으로 장어구이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 강원도 쪽에서 서울로 향하고 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에서 정지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교수에게 제자가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교수는 '저런 건 지키는 게 바보야'라고 말한다.

그의 말로 미루어 이 중년의 대학교수는 교통신호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건 이 사내가 상당히 특권의식을 갖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높은 곳에 있어서 평범한 서민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음대교수이면서 성악가인 영선은 엘리트의 허위의식, 부르주아의 이중성, 기회주의적 속성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영선은 금방 뽑은 외제차를 운전하며 옆자리에는 예전 제자인 인정을 태웠다. 짧은 치마를 입은 인정의 허벅지를 훔쳐보는 영선은 점심으로 장어를 먹었고,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 중간에서 쉬어가자고 말한다.

그는 이미 여러 명의 여성과 연애를 하고 있으며, 지금 차에 함께 있는 옛 제자의 육체를 탐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한다. 그가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건, 기존 질서를 하찮게 여기는 즉, 자기는 이 사회제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선민의식과 함께, 좋아하는 여성이 옆에 있어서, 숫컷으로서의 용기를 보여주려는 본능적 태도이기도 하다. 영선은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학벌, 사회적 지위, 부와 명예를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없는 속물이고, 야비하며 천박한 인간이다.

 

교통신호를 위반하면서 호기를 부린 영선은 그러나 경찰에게 잡히자 '싼 거로 끊어달라'고 비굴하게 말한다. 설상가상, 여기에 안전띠 미착용으로 범칙금이 추가되면서, 영선이 아무리 애원하고 협박해도 경찰인 문재(이문재 : 한석규)에게 통하지 않자 성질을 낸다. 시골 경찰 따위라고 우습게 봤지만, 문재는 상대가 누구라도 똑같이 했을 것처럼 보인다. 즉 문재의 입장(공직을 수행하는 경찰)에서 보면,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자는 전부 '범법자'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권위, 엘리트의 자존심이 뭉개지자 화가 난 영선은 다음 신호에서 다시 신호를 무시하고, 지켜보던 문재에게 욕을 하고 도망간다. 어찌보면 이 사소한 행위가 영선의 삶에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계기가 된다.

쫓아오는 경찰을 피해 샛길로 들어선 영선은 낯선 장소에 도착하고, 맑은 계곡이 있고,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외진 곳에 인정과 둘이 있게 되자 영선은 드디어 마각을 드러낸다. 오페라 연기를 핑계로 인정을 성추행하다 못해 결국 강간하려는 영선을 피해 인정은 도망하고, 영선은 혼자 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이때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오근은 야구배트를 들고 다닌다. 그의 허리춤에는 여러 마리의 새-꿩, 매-가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새 잡는 취미가 있는데, 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 살아 있는 쥐다. 그는 쥐에게 쥐약(하얀 가루)을 강제로 먹여 새가 잘 보이는 곳에 던져 놓는다. 

오근이 있는 곳은 문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있는 환경인데, 그곳에 매우 이질적인 흰색 외제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오근은 검은색 썬팅을 한 차안을 들여다보지만 내부는 볼 수 없다. 즉, 오근은 그의 존재 - 배우지 못하고, 군대에서 야만적인 폭행을 당해 정신이 약간 이상해져 의가사제대를 한 주변부 인물 - 의 한계로 문명(외제차)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때, 홍배와 원룡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근이 있는 장소에 나타난다. 뒷자리에는 포대자루에 갇힌 현재가 축 늘어져 있고, 이들은 현재를 짐승 또는 물건처럼 싣고 온 것이다.

홍배와 원룡은 동네 양아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가스 배달도 하고, 먹고 살려고 일을 하지만, 남는 시간에는 건들거리며 또래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대충 살아가는 인생이다. 이들이 괴롭히고 있는 학생은 현재인데, 고등학생인 현재는 홍배와 원룡에게는 후배이기도 하다. 홍배와 원룡이 현재와 직접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현재를 괴롭히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학대하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인물은 봉연인데, 그가 뒷자리에 인정을 태우고 온 건 우연이다. 영선에게서 도망한 인정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을 걷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봉연을 발견하고,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봉연은 인정을 태우고 큰길로 가지 않고, 먼저 이곳, 계곡으로 온 것인데, 어쩌면 처음부터 인정을 큰길까지 데려다 줄 생각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건 우연은 아니다. 봉연이 삼겹살 봉지를 들고 온 것을 보면, 이곳에서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했고, 그 장소에 우연히 영선과 인정이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 마을 주민 네 명과 외지인 영선과 인정이 모두 모인 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의 무대는 마치 연극 무대처럼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대사만으로 팽팽한 긴장과 공포, 스릴이 관객을 압도한다.

 

양복을 입고, 외제차를 타고 낯선 곳으로 들어온 영선과 인정은 외지인이면서 틈입자다. 그들은 우연히 이곳에 들르게 되었지만, 원주민인 봉연과 일당에게는 낯선 존재, 외부의 침입자이면서 자신들보다 나약해 보이는 순간,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가장 폭력적으로 보이던 오근이었지만, 그를 오로지 말과 분위기로 제압하는 봉연의 존재는 분위기를 압도하는 강한 폭력의 카리스마가 있다. 봉연과 오근이 친구 사이이면서 폭력의 서열로는 오근이 아래인 것처럼, 홍배와 원룡은 봉연의 학교 후배이면서 어릴 때부터 함께 어울린 동네 형이자, 가장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래밭에서 불을 피우고 돌판 위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나누는 장면은 말과 말이 서로 부닥치며 불꽃을 튀기고, 육식(삼겹살)을 하는 행위에서 보이듯, 약육강식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오근은 삼겹살을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날것으로 먹는다. 자연 속에서, 고기를 먹는 행위가 매우 야만적이고 원시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네 명이 고기를 먹는 모습은 거칠고 투박하다.

 

봉연은 현재를 불러 고기를 먹으라고 하지만, 이내 현재를 희롱하며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외지인인 영선과 인정에게 그 장면은 공포 그 자체다. 현재를 괴롭히던 봉연은 점잖은 엘리트 대학교수 영선에게 현재와 싸워서 이기면 곱게 보내주겠다고 제안한다. 평생 주먹을 한번도 휘둘러본 적 없는 영선은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어하지만, 봉연에게 이것은 일상이고 놀이이며 재미일 뿐이다.

그렇게 현재와 영선이 모래밭에서 싸우는데, 다른 네 명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즐거워한다. 봉연 일행에게 싸움, 폭력은 매우 익숙하고, 놀이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영선과 싸우면서 그동안 배웠던 합기도로 상대를 때려눕힐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각성한다.

현재는 그동안 줄곧 폭력피해자였으며, 늘 맞고만 사는 인물이었다. 마을의 형이면서, 학교 선배인 봉연에게 늘 맞고 다녔고, 봉연의 후배이자 똘만이들인 홍배와 원룡에게도 폭행과 괴롭힘을 당하며 살았다. 현재의 형인 문재가 경찰이었음에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봉연이 협박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선은 현재에게 맞으면서 도망간다. 영선은 여러 의미에서 가해자다. 그는 사회의 기득권이며, 엘리트로 떵떵거리며 살았고, 대학교수로 늘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함께 온 인정을 강간하려한 파렴치범으로,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현재에게 맞아서 고통스러워 하는 영선을 보는 관객은 통쾌함을 느낀다.

 

현재가 각성하면서 홍배를 때려눕히고, 원룡도 역시 때려눕힌다. 이때 봉연은 뜬금없이 애국가를 부른다. 현재가 영선을 때려눕힐 때부터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해 홍배, 원룡, 오근이 모두 현재에게 맞아서 뻗을 때까지 애국가를 부르는데, 영선이 바로 전날 지역의 행사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그것이 지역방송을 통해 중계된 것을 봉연과 일당이 알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봉연의 모습은, 애국가가 폭력을 휘두르는 국가의 이미지 즉 독재국가나 파시즘 국가의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한 것은 아닐까.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기의 독재체제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국민교육헌장', '애국가 제창'이 일상이었다. 오후5시가 되면 거리를 걷던 모든 사람들이 멈춰서서 국기하강식과 애국가를 들으며 손을 가슴에 얹고 서 있어야 했다. 독재자들은 '애국'이라는 말로 국민을 탄압하고, 폭력을 휘둘렀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봉연은 애국가를 부르며 발가벗고 개울물로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다 나온다. 현재는 세 명을 때려눕혔고, 봉연과도 싸우지만, 봉연은 오히려 현재에게 야구방망이를 건네며 때려보라고 말한다. 맞는 것으로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여기는 봉연의 태도가 의아하지만, 클라이막스로 가면서, 봉연의 태도를 이해하게 된다.

현재는 네 명의 악당을 모두 때려눕히고,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서 이들을 목 위만 나오게 묻는다. 그리고 오토바이에서 기름을 빼내 이들 몸에 끼얹고 불을 지르려 하는데, 이때 인정이 현재를 가로 막는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정상'인 인물이다. 그는 유일하게 여성이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가장 힘이 약한 존재지만,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인정이야 말로, 피해자이기 때문에 같은 피해자인 현재의 마음을 다독이고, 현재가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이끄는 '이성적 존재'로 역할한다.

하지만 인정이 현재에게 극단적 행동을 말리는 순간, 봉연과 일당이 모래밭에서 빠져나오고, 현재를 공격해 현재는 거의 죽기 직전까지 폭행당해 쓰러진다. 그 사이 도망한 영선은 큰 도로에서 문재를 만난다. 자신이 심하게 폭행당한 사실을 말하고, 그들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문재는 영선을 태우고 싸움이 있었던 계곡 모래밭으로 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재는 짜증이 폭발해 영선을 향해 욕을 퍼붓는데, 그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린다. 영선의 벤츠를 타고 '죽은' 현재와 인정을 트렁크에 태워 도망가던 봉연 일당은 현재가 쏜 총에 놀라 차가 뒤집어지고, 사건은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총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온 문재는 그곳에서 낯익은 네 명의 인물과 동생 현재, 그리고 인정을 발견한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현재를 본 문재는 눈이 뒤집히고, 한눈에 어떤 상황인지 '느끼게' 된다. 

이때가 되면, 관객도 이 영화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된다. 

봉연이 현재를 그렇게 심하게 괴롭힌 것은, 과거 학교 다닐 때, 봉연의 선배인 문재가 봉연을 심하게 괴롭혔기 때문이었고, 문재와 봉연의 관계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물론 봉연이 일방 당하는 존재로, 말할 수 없는 괴롭힘, 폭행의 피해자로 트라우마가 심하게 남았지만, 그것을 문재의 동생 현재에게 그대로 되갚음을 할 것이라고는 문재도 상상하지 못했다.

봉연의 똘만이인 홍배와 원룡이 나누는 대화에서, 옛날 학교에 전설적인 사건에 관해 말하는 내용이 있는데, 봉연에게 '골빙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선배가 '야만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인데, 야만인이 얼마나 봉연을 괴롭혔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봉연이 문재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자, '야만인'이 봉연 앞에서 회칼로 손목을 그으면서, 학교에 꼰질르면 봉연이 보는 앞에서 자기(야만인) 목을 그어버리겠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야만인'은 문재다. 문재는 봉연을 잔인하게 학대하면서, 봉연을 협박할 때 자해를 하면서까지 봉연을 질리게 만들었다. 결국 봉연은 문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학교 생활을 마치게 된 것이다.

 

동생 현재가 봉연에게 줄곧 당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문재는 과거 학생 때 봉연을 폭행한 것처럼, 이번에도 봉연을 잔인하게 폭행한다. 경찰오토바이 헬맷으로 봉연의 머리를 마구 때리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목격한다.

이때 문재는, 때린 놈은 경찰이 되고, 맞는 놈이 여전히 맞는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는 경찰이 되어 합법적 폭력을 휘두를 수 있고, 피해자는 여전히 가해자의 폭력에 당하면서도 항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현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현실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문재는 오근, 홍배, 원룡에게 쥐를 먹으라고 강요한다. 먹지 않고 버티는 놈은 총을 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문재는 경찰복을 입고 지금 부당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시간이 지나고, 문재는 '이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폭력이 시간과 공간을 압도하고, 무력화하는 것이다. 문재는 경찰 오토바이에 현재를 싣고 떠나고, 홍배와 원룡도 각자 오토바이에 봉연과 오근을 태우고 떠난다. 

다시 두 사람, 영선과 인정이 남게 되고, 폐차가 된 벤츠 안에서 렉카에 끌려가는 두 사람의 처량한 모습 위로 '투우사의 노래'가 웅장하게 울려퍼진다. 이렇게 영화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다.

계곡물에 빠져 죽은 문재의 모습이 서서히 줌 아웃되면서, 문재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초반에 영선이 가지고 있던 '용각산'이 뒷부분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고, 이것이 곧 '폭력의 대가'인지, '인과응보'인지 알 수 없는, 그래서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난해한 결말에 따라 관객의 호불호가 갈리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폭력의 알레고리를 잔혹극으로 말하고 있다. 폭력이 되물림되는 상황,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존재론적 인식, 곁다리로 끼어들지만 부르주아의 속물성과 엘리트의 파렴치,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역할과 한계,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의 경계와 의미 등을 생각하게 되는 좋은 작품이고 영화적 재미로도 뛰어났지만, 흥행에는 아쉽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이다. '지구를 지켜라'처럼, 시간이 지나서 오히려 재평가, 재인식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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