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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내 안의 그놈

by 똥이아빠 2022. 3. 10.

내 안의 그놈

 

가끔 아무 생각없이 웃기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코미디, 판타지 영화의 유용성은 분명하다. 잠시 현실을 잊고 고민, 걱정, 근심, 불안 따위의 부정적 감정을 외면하고 싶을 때, 이런 영화는 좋은 수단이 된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 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진부하고 클리셰 투성이어서 '그렇고 그런' 수 많은 '바디체인지', '영혼 바꾸기'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평론가 서정환은 " 영혼이 바뀐다는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진부한 설정, 게다가 그 대상이 조폭과 고등학생이라니! 이 빤하디 빤한 설정의 코미디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안의 그놈>은 그 속에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며 기대 이상의 웃음을 끌어낸다. 우선 진부하고 유치한 설정들을 그럴듯해 보이려고 포장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가능한 웃음의 요소를 최대한 활용한다. 또한 웃음과 감동을 모두 잡으려는 한국영화의 고질적 강박에서 벗어나 억지 감동을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상황과 캐릭터를 소진해 웃음을 자아내는데 집중한다. 새로울 것 없고 유치하지만 거부감 없이 그 웃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다." 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마음을 비우고, 기대를 하지 않고, 그저 영화의 캐릭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작품성'을 따지려고 눈을 부릅뜨고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태도로 이 영화를 보면 재미도 없을 뿐더러, 이 영화가 갖는 진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코미디 영화에서 캐릭터는 매우 중요하다. 조연인 미선(라미란), 종기(김광규), 만철(이준혁)은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기파 배우들이다.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영화의 배경은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 상황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코믹하고 가볍다. 코미디 영화의 장점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 관객이 알기 때문에 마음 가볍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장판수(박성웅)은 조폭이지만 배경이 좋다. 대학도 나오고, 이미 성공한 조폭 두목(회장)의 사위로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장판수가 가끔 허름한 동네를 찾아 역시 허름한 분식집에서 '고등어 라면'을 먹는데, 뒤에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고등어 라면'은 중요한 매개가 된다.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코미디 영화는 특히 영화 문법의 기본에 충실하다. 다른 서사물처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 이후 서사를 해석하는 중요한 틀이 되었고, 대부분의 서사물이 이 구조틀을 조금씩 변형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부러울 것 없는 장판수의 삶은 한 고등학생 동현(진영)의 추락과 함께 커다란 변곡점을 맞는다. 고등학생 동현 역시 학교에서 일진들의 '셔틀'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그들로 인해 옥상에서 추락하면서 장판수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공동 운명체로 묶인다.

'바디체인지' 즉 육체 바꿈을 다른 말로 '영혼 바꾸기'로도 해석하는데, 서로 각자의 육체는 그대로이면서, 영혼만 상대의 몸으로 들어가는 걸 말한다. 따라서 '영혼'의 시각으로 볼 때는 '육체바꿈'이고, '육체'의 시각에서는 '영혼바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내용처럼, 인간의 지각, 인지 능력은 때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이때는 영혼이 이탈하거나 육체가 달라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육체 바꿈은 정신의 인지 상태에 따라 착각, 불인지, 왜곡되므로 엄격히 말하면 뇌활동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흔히 '영혼'에 관해 말하고, '영혼'이 실제한다고 믿기도 한다. 육체가 죽으면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간다는 내용의 소설도 있고, 임사체험을 한 사람의 증언도 많다. 하지만 현재 과학에서 밝힌 것만 봐도 '영혼'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지성, 이성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순수한 뇌가 진화한 결과다. 내가 오래 전 쓴 단편소설에서 뇌 이식수술로 전혀 새로운 인격을 갖게 되는 내용을 다룬 적이 있는데, 현대 뇌의학 분야에서 이런 일이 실제 가능한 상태로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뇌는 인간의 기억, 학습, 추론, 예측, 시간, 공간, 인지 등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모든 활동을 담당한다. 여기서 더 발전해 뇌의 각 부분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 -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통각 등 - 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면서 그것의 시간차를 매우 미세하게 조절하는 능력까지 담당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 영화처럼 단순하게 '영혼 바꿈'이라는 설정은 현대 의학과 뇌과학이 밝힌 복잡한 메커니즘을 무시하고 단순화한 내용이어서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관객은 그런 복잡한 구조나 이론보다는 단순명쾌함을 선택한다. 영혼이 바뀌었다,는 비과학, 비논리적이지만, 우리는 쉽게 '이해한다.'

 

영화는 크게 세 줄기를 엮어나간다. 장판수와 관련한 다른 조폭집단과의 갈등, 장판수의 영혼이 들어간 고등학생 동현의 삶, 동급생 현정(이수민)을 통해 알게 된 옛날 애인 미선과 미선의 딸이 현정이라는 사실. 동현을 연기한 배우 진영은 처음 등장할 때 뚱뚱한 몸이었는데, 장판수의 영혼이 들어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만철이 동현의 몸을 한 장판수와 친해졌을 때, 다이어트부터 해야한다고 조언하자 몸을 바꾸기 시작한다. 영화 중반부터 뚱뚱했던 동현은 날씬하고 잘 생긴 진영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는데, 진영은 B1A4 그룹의 아이돌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연기도 좋고, 외모, 목소리 등도 훌륭하다.

'찐따 셔틀'이었던 동현이 장판수의 영혼으로 바뀌면서 학교 일진들은 영문도 모르고 까불다 동현에게 맞는다. 현정도 여학생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었는데, 동현은 그런 현정을 좋아하고 있었다. 학교 폭력은 매우 심각하고 무거운 내용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주 심각한 내용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학교 폭력을 대상화, 도구화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하다.

 

영화가 코믹하지만, 감동 코드도 빠뜨릴 수 없는 한 요소다. 특히 동현의 아버지 종기(김광규)는 목공소를 운영하면서 아들 하나를 키우는 중년의 아버지인데, 그가 사채를 쓰다 목공소도 빼앗기고, 빚을 져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줄 생각을 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은 마음이 뭉클하다.

종기의 아내이자 동현의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연인지 나오지 않지만, 아내의 부재, 엄마의 부재는 이 부자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퍽 고단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현의 몸에 있는 장판수는 조폭으로 거침없이 살았지만, 그 역시 아버지의 따뜻함을 모르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는 아니지만, 육체의 아버지인 종기가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는 것은 물론,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

 

동현의 몸을 한 장판수는 현정의 엄마이자 옛날 애인 미선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그동안 출세와 물욕에만 눈이 멀었던 삶이었다면, 고등학생 현정이 자기 딸이라는 사실을 유전 검사를 통해 확인하면서, 죄책감, 부성애, 미선을 향한 사랑 등의 감정이 동시적으로 폭발한다.

외형적으로, 고등학생이 중년의 아줌마를 사랑한다는 메타포는 '롤리타'의 다른 버전이다. 여기에 오이디프스 컴플렉스의 여성 버전 패러디까지 겹치면서 영화의 컨텍스트, 메타데이터는 훨씬 복잡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지고 있지만, 관객은 그런 배경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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