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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모가디슈

by 똥이아빠 2021.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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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창작이나 다름 없는 영화다. 이전에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로 '베를린'이 있었으니 이 작품은 남북관계를 다룬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한국형 액션'을 만들어낸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데뷔작부터 '모가디슈'까지 류승완 스타일은 핵심을 유지하면서 보다 세련해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류승완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그 특징을 중심으로 영화를 살펴보자.

 

 

기시감, 낯익은 장면들

영화는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배경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었다. 소말리아 민중이 독재 정권에 맞서 시위할 때, 몽둥이를 든 경찰과 군인들이 소말리아 시민을 마구 폭행할 때, 독재정권의 정부군이 총으로 소말리아 민중을 학살할 때,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우리의 4.19이자 5.16이며, 5.18이었다.

과거에 우리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 놓여 있었으며, 우리가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우리는 제3자의 시각으로 독재정권이 벌이는 학살 장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것, 역사는 어디에서나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독재와 민주주의, 투쟁과 항거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불타는 건물과 자동차, 거리에 쓰러져 죽은 시민들의 모습, 독재자의 횡포와 그에 맞서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시위 등 우리가 이미 겪었던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불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남북한의 대사관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적지를 헤쳐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 상황에서 아무 죄없는 민중이 살기 위해 피란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전쟁은 이념을 내세운 전쟁이지만, 정작 민중은 이념이 무언지 알지 못했고, 이념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모가디슈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인 것은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문도 모르게 죽을 위기에 놓이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사실성(reality)

영화에서 '리얼리티'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재연 또는 재현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창작물은 '마치 현실에서 실제 일어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며, 영화의 경우,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작품의 개연성과 장면의 현재성을 이해하고(믿는 것과는 다르다) 동의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리얼리티'가 결정된다. 즉, '스타워즈'는 지금,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고,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관객은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주인공들의 모험에 동의하며, 그런 세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사건과 주인공들이 겪는 상황은 그런 비슷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처럼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주인공들이 겪는 죽음의 사투를 보면서 몰입하고,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한다. 그것은 감독이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는 상황으로 연출하기 때문이며, 이 작품에서는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미리 책과 모래주머니로 자동차에 방탄 장치를 만드는 데서 논리적 설득력을 갖는다.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가 중심이 되는 건 당연하지만, 이 영화가 '사실성'을 획득하는 중요한 지점은 오히려 디테일한 소품과 배경에 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에서 소말리아 사람들을 연기자로 썼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영화는 소말리아와 반대쪽에 있는 모로코에서 촬영했고, 모로코에 사는 흑인을 캐스팅했다. 따라서 이런 구체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지적할 수 있지만, 1990년대의 한국대사관과 북한대사관 모습, 대사와 직원들의 의상, 안경, 소품 등을 꼼꼼하게 준비한 것, 필름의 톤을 조절해 약간 오래된 필름처럼 보여서 이 영화가 과거의 시대를 그리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분위기를 내도록 한 것 등은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려는 감독의 세심한 안목이다.

또한 내란이 일어난 소말리아의 시가지를 배경으로 만들 때, 독재 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 시위하는 시민에게 총을 쏘는 독재정권의 경찰, 반군들의 반격, 일부 폭도들에 의한 난동과 강도, 절도 행위, 독재정권에서 폭력을 휘두르던 경찰을 처형하는 반군들의 모습을 건조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것도 사실성을 높이는 연출이었다.

 

 

스케일(scale)

류승완 감독 작품은 규모가 커지고 있다. 국내 무대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주인공들이 세계로 나가게 된 것도 '베를린'을 기점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군함도'를 거쳐 '모가디슈'로 확장하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활동 무대가 베를린이지만 남북한 정보기관의 첩보, 액션이 큰 흐름이었고, 외국 배우들이 등장해도 여전히 '한국영화'라는 정체성은 분명했다.

'군함도'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독립운동가와 함께 섬을 탈출하려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이 영화 역시 고증과 디테일을 높은 수준으로 구현한 것은 물론, 역사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굵직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모가디슈' 역시 '군함도'처럼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정정이 불안한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내전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 제3자인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 직원들이 내전을 피해 탈출하는 상황인데, 우리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소말리아의 정치 상황 속에서 남북한 문제를 풀어낸 것은 그동안 남북 문제를 다룬 영화가 대개 국내 무대에 한정되어 있던 것에 비해 공간을 확장했다는 특징이 있다.

 

남북한 대사관 인물을 제외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말리아 사람들이다. 독재 정권이든 반군이든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 직원들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워야 하며, 독재 정권을 지원한 서방 세계의 대사관에 대해서는 선택을 강요한다. 모든 대사관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고, 각자도생의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대사관은 더욱 불리한 위치에 있다. 거리가 그나마 가까운 유럽 국가들과 달리 남북한은 소말리아에서 가까운 케냐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북한 문제가 국내 뿐아니라 해외에서 어떤 방식으로 충돌과 갈등이 발생하는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문제에 대처하는 태도를 볼 수 있는 매우 드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은 소말리아의 사례 뿐아니라 앞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남북한의 대사관은 인도적 차원에서 협력, 협조하는 방안을 매뉴얼로 만들어두어도 좋을 듯하다.

 

 

진정성

이 영화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진정성'이 중요한 화두로 보여진다. 형식으로보면, 류승완 감독은 연출에서도 절제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보인다. 영화를 극적으로 보이기 위한 과장된 연출이나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배우들이 모두 힘을 빼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나도록 연기도 과장하지 않고, 상황도 억지스럽지 않도록 만들었다.

연출하는 입장에서 상황(소말리아 내전), 배우들의 연기, 배우들의 감정을 과잉으로 만들면 '사실성'이 떨어지고, 관객은 억지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배우들이 감정을 누르고, 말보다는 표정으로, 표정보다는 몸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오히려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감독은 잘 알고 있다.

 

내용에서도 '진정성'은 주제어라고 볼 수 있다. 남과 북의 대사관 직원들은 서로 경계하며, 첩보전과 정보전을 치열하게 벌이는 사이지만, 외부의 상황으로 곤란한 입장이 되었을 때, '하나의 민족'이라는 대의 앞에서 이념은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그동안 남북이 전쟁을 하고, 적대적으로 대치하게 된 원인이 하나의 민족보다 '이념(공산주의 자본주의)이 우선했기 때문이었는데, 외적이 등장했을 때, 이념보다 남북한이 한민족이라는 본능적 정체성이 살아났다는 것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것은 북한대사관 사람들이 한국대사관으로 들어오면서, 조심스럽지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작은 행동들-깻잎 장면-로 상징되며, 미미한 듯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런 아주 작지만 섬세하고, 마음이 통하는 행위들로 시작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형식적으로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용에서는 한민족의 뜨거운 형제자매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슬프면서도 따뜻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영화가 '통일'을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눈길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이미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만, 한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제압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을 잘 아는 것처럼, 북한도 한국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어떻게든 부드럽게 북한의 정치체제를 착륙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북한은 거대담론보다는 소소하고 작은 일상의 교류를 통해 남북한 사람들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화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를 넘어 세계영화로 나아가고 있다. 이 영화만 해도, 소말리아 내전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나 '아르고'처럼 아프리카 국가인 소말리아 내전을 다루고 있다. 즉, 지리적으로 한국이 아닌, 베를린이나 소말리아처럼 외국을 무대로 하고, 그 무대에서 한국인의 정치, 첩보, 작전을 수행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헐리우드가 자주 보여준 '미국의 세계화' 전략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미국은 세계를 무대로 군사, 정치, 첩보, 작전 등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약하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미국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헐리우드 예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지만, 영화의 스케일이나 내용으로는 헐리우드의 영화에 뒤지지 않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한국(남북한)인의 모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단지 국내의 흥행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한국(북한까지도)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존재를 각인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한국영화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품들을 만들어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봉준호, 박찬욱 등 세계 최고의 감독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널리 알렸고,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처럼 미국이민자의 보편적 삶을 그린 영화가 주목을 받는 것처럼,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한국인의 액션 영화가 새로운 액션의 트렌드나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질 날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세계화를 만들어 가는 앞선 영화다.

'모가디슈'는 영화 전체를 모로코에서 촬영할 정도로,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졌음을 보여주었고, 헐리우드와 경쟁해서도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제작 노하우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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