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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소리도 없이

by 똥이아빠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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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태인은 말을 하지 못(안)한다. 창복은 다리를 전다. 두 사람은 달걀 장사를 하면서 부업을 하는데,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다. 조폭들이 납치해 고문, 살해한 사람을 산에 암매장하는 일을 하면서 약간의 돈을 받는다.

트럭에 달걀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조폭이 일을 맡기면 그때마다 부업을 하는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두 사람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 창복은 교회에도 열심으로 다니는데, 태인에게도 찬송가와 설교 테이프를 열심히 들으라고 말한다.

창복은 다리를 저는 장애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태인처럼 처음부터 고아였을 수도 있다. 가족도 없고,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창복은 중늙은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어린 태인을 만나게 되는데, 태인을 데려와 자식처럼 키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태인은 처음부터 고아였을까. 어쩌다 길을 잃은 아이는 아니었을까. 태인이 말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건 어렸을 때 받았던 어떤 충격적인 사건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폭 중간두목 용석이 창복에게 아이를 하루 이틀 맡아달라고 말한다. 한번도 하지 않던 일이라 거절해 보지만, 힘이 없는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떠안게 된다. 어린이 납치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의 사무실을 찾아가 아이(초희)를 데리고 온 두 사람은 몹시 난감한 상황이 된다. 

창복은 태인에게 초희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루 이틀 잘 돌보라고 말한다. 태인은 이런 상황이 몹시 싫고,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이 초희를 집으로 데려 온다. 집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초희보다 어린 여자아이(은주)가 있는 것은 반전. 은주는 태인을 '오빠'라고 부르는데, 친오빠는 아닌 것이 분명하고 - 태인이 어릴 때 고아였다는 점을 보면 - 은주도 거리에서 발견된 고아나, 갓난 아이가 아니었을까.

계획대로 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으니 당연히 사건이 발생한다. 초희를 맡으라고 말한 조폭 중간두목 용석이 그동안 저지른 짓으로 조폭들에게 맞아 죽게 되면서, 초희는 중간에 붕 뜨게 된다.

 

창복은 어렵게 수소문해서 초희를 납치한 납치 조직을 찾아간다. 창복은 초희를 다시 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납치 조직의 실장은 귀찮은 문제를 떠넘기는 것이니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초희의 부모에게 돈을 받아내면 약속했던 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 함께 협조해서 일하자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일감만 떠안고 온 창복. 그 사이 초희는 태인의 동생 은주와 친하게 지내고, 태인은 그 모습을 보며 갈등한다. 

초희의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 요구한 돈을 받기로 한 납치 조직은 돈가방을 찾으러 가는 걸 창복에게 시킨다. 창복은 돈을 찾으러 가면서 태인에게 12시가 넘어서 연락이 없으면 무조건 약속한 곳으로 초희를 데려다 주라고 말한다.

창복은 돈가방을 찾는데는 성공하지만, 너무 무섭고, 흥분한 나머지 계단에서 굴러 뇌진탕으로 죽는다. 연락이 안 되자 태인은 초희를 약속한 장소로 데리고 간다. 그곳은 납치 조직의 다른 비밀 장소로,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넘기는 베이스캠프였다. 태인은 초희를 그곳에 남겨두고 오면서 몹시 갈등하지만, 결국 집으로 혼자 돌아온다. 그러자 은주가 '언니 어디에 있어?'라고 묻고, 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있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다시 초희를 찾으러 간다.

어렵게 초희를 찾아 집으로 데려오지만, 태인이 외출한 사이 초희는 혼자 탈출한다. 초희를 찾아나선 태인은 숲을 뒤지고, 초희는 밤길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노인을 만난다. 초희는 노인에게 경찰서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는데, 이 노인은 자기가 경찰이라며 초희의 손을 잡는다. 느낌이 이상한 초희는 노인의 손길을 뿌리치고 도망하고, 숲에서 초희와 태인이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자전거를 탄 노인은 '진짜 경찰'이었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밤길을 헤매고, 그것도 경찰서에 데려다 달라고 말한 것이 이상해서 부하 경찰을 부른다. 경찰은 근처를 수색하다 태인의 집으로 오는데, 이들은 평소에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초희의 존재가 발각되고, 태인은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경찰이 사망(?)한다. 하우스 안에 경찰을 묻은 태인은 초희를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을 한다.

그 사이, 납치조직의 두목은 초희를 데려간 태인을 찾으러 나선다. 근처를 돌아다니며 태인의 집을 찾은 납치조직의 실장은 태인의 동생 은주를 발견하고, 은주가 초희인줄 알고 데려가려 한다. 그러다 우연히 하우스 안에 들어갔다가  땅에서 손이 나와 움직이는 걸 발견하고는 묻힌 사람을 구해준다. 묻혀 있던 사람은 경찰. 납치범들은 기겁을 하고, 은주만 데리고 얼른 도망가려 하지만, 경찰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은주를 내려 놓고 도망간다.

 

태인은 초희를 학교로 데려간다. 초희의 가방에 있던 노트에서 학교를 알게 되고, 그를 다시 부모에게 돌려보내려는 마음으로 학교까지 가지만, 태인은 초희의 손을 쉽게 놓지 못한다. 그 사이 정이 든 것이다. 초희는 선생님에게 태인이 유괴범이라고 말하고, 태인은 숨이 턱에 차도록 도망한다.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초희의 부모가 학교로 달려오는데, 초희는 그런 부모와 남동생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초희는 자기의 존재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어린아이로 살아가지 못할 것까지 무의식적으로 알아채게 된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뒷이야기를 생각하면, 태인은 유괴범으로 붙잡히게 되고, 자기가 겪은 일을 전부 글로 써서 진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 창복과 함께 살해된 시신을 암매장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태인의 진술에 따라 어린이 유괴조직 전체가 체포될 것이고, 유괴된 아이들 여러 명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태인과 은주의 유전자를 검사해 그들에게 부모, 형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고, 태인은 그간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고 얼마간 감옥에서 생활하고 나오게 될 것이며, 은주는 고아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범죄물인듯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영화다. 그것도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유사가족을 꾸려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온전한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창복과 태인은 부자지간처럼 보이지만 진짜 부자지간은 아니다. 태인과 은주의 관계 역시 남매로 나오지만, 진짜 남매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돌보며 돕고 살아간다. 창복이 태인을 키웠고, 태인이 은주를 키운다. 이들은 '온전한' 가족과 가정의 따뜻함을 느껴본 적 없는 황량하고 거친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밀려나 변방, 변두리의 외딴 지점,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달걀장사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부업으로 시체를 암매장하는 일을 하는, 들개같은 존재였는데, 이 사이에 초희가 들어온다. 초희는 아마도 중산층 또는 그보다 더 잘 사는 가정의 아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납치조직이 2억원을 요구했을 때, 그걸 들어준 걸 보면,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아니면 경찰과 함께 유괴범을 잡기 위해 가짜돈을 넣었을 수도 있다.

초희와 함께 살면서, 태인은 그동안 자기가 살았던 생활방식과 너무 다른 초희의 행동에 당황한다. 초희는 나이 어린 은주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빨래를 한다. 태인의 방은 마치 돼지우리처럼 지저분했었는데, 초희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이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볼 수 있다. 

은주도 산발한 머리에 잘 씻지 않아 지저분한 모습에서 깨끗하고 머리를 뒤로 묶은 모습으로 바뀐다. 초희는 집에서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했을 뿐인데, 태인은 태어나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본적이 없으므로 당황하고 놀란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태인이 초희를 학교로 데려다주었음에도 손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는, 초희가 가진 밝은 모습, 즉, 온전한 가정, 가족의 모습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기대, 희망을 놓치 않으려는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인 태인, 창복 역할에 유아인, 유재명 배우가 열연했는데, 두 배우의 연기가 참 좋다. 전혀 과장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고, 두 사람의 캐릭터가 두 사람의 심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다리를 저는 창복은 결국 그 핸디캡 때문에 계단에서 굴러 죽게 되는데, 그가 악한 인간이 아니라는 면모를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는 돈가방을 찾았지만, 심하게 겁을 먹고 두려워한다. 자기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힘 있는 자 앞에서 납작 엎드려 처신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명령을 하는 사람은 태인 뿐이다.

태인은 말을 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언어장애가 있는 것인지, 말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충격으로 말하는 것을 잃어버린 것인지 나오지 않는다. 말은 못하지만 말은 잘 알아듣는다. 이들은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밥을 먹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인데, 먹는 장면이 없다는 것은 이들의 삶이 많이 비틀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루 세 끼의 밥을 살뜰하게 챙겨 먹는 것은 '온전한 가족, 가정'에서나 있는 일이고, 이들처럼 불가촉천민 같은 하층민의 불완전한 삶에서는 온전한 밥을 먹는 것조차 사치가 된다.

 

이 작품은 홍의정 감독의 데뷔작인데, 이 정도면 꽤 수작이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이 흥행에 실패한 것과 달리 홍의정 감독의 데뷔작은 작품으로도 주목 받고, 흥행에서도 성공했으니 나름 의미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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