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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Knight of Cups

by 똥이아빠 201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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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Knight of Cups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 혼란스러웠다. 테렌스 맬릭 감독의 작품인 것은 알고 봤지만 그가 어떤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찾아보니 <씬 레드 라인>이 있었고, <나이트 오브 컵스>를 보기 전까지 이 작품이 내가 본 유일한 영화였다.

<씬 레드 라인>은 오래 전에 봤지만 그 영화에서 받은 깊은 인상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씬 레드 라인>을 만든 감독이 만들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두 영화만을 비교하면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테렌스 맬릭의 작품을 조금 더 깊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의 다른 작품들을 가능한 모두 찾아보았다.

<황무지>, <천국의 나날들>, <씬 레드 라인>, <뉴 월드>, <트리 오브 라이프>, <투 더 원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이트 오브 컵스>.

그의 데뷔작부터 최근작까지를 모두 보고 나서야, <나이트 오브 컵스>를 훨씬 폭 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말하기 위해서는 테렌스 맬릭의 기존 작품들을 함께 언급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영화를 다양하게 해석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는 독특하다. 독특한 미장센을 이용하는 감독은 많지만, 테렌스 맬릭은 그 자신의 고유한 미장센을 만들어 냈고, 그의 영화에는 그만의 특징이 지문처럼 묻어난다.

나레이션, 유장하면서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 앞뒤 없이 뒤섞이는 장면들, 물속을 헤엄치는 장면, 자연 풍경, 거시적인 장면과 미시적인 장면들의 교차, 프레임 하나 하나의 아름다움, 스토리(이야기)보다 스타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 구체적인 현실보다는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장면을 통해 말하려는 의도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는 아름답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작품같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가 '영상으로 구현하는 예술행위'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테렌스 맬릭 감독이 추구하는 영상 미학은 영화의 본질에 근접하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보인다.

테렌스 맬릭의 경력은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그가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과 그가 보여주는 영화의 장면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는 느리다. 그의 영화에서 속도감 있는 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사건이 긴장감 있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가 지루한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은 생략을 통해 건너 뛰고,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시간은 추상적 이미지와 상징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가 지루하거나 난해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친절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독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렵고 난해한 영화, 이를테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세상(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보통의 친절한 영화보다 훨씬 많이 생각하고, 의미를 분석하며,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수준 낮은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흔히 '작가주의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일군의 감독들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영화의 수준을 떠나, 감독의 의도가 예술적으로 얼마나 훌륭하게 표현되었는가를 놓고 판단하게 된다.


테렌스 맬릭의 초기 작품에서는 '추상성'과 '이미지화'가 덜 나타난다. 그것은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영화를 매우 적게 만든 감독의 특징 때문에 시간의 차이-결국 테렌스 맬릭의 철학적 사고방식의 변화-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데뷔작품이 1973년 <황무지>였고, 감독의 나이 30세 때였다. 이 영화는 당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성공했다. 이어 5년 뒤에 <천국의 나날들>을 발표했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훌륭한 영화였지만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약 20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다가 1998년 <씬 레드 라인>을 발표했는데, 이 영화는 전쟁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영화이자, 탁월한 반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7년 뒤인 2005년 <뉴 월드>를 발표했는데, 이 영화는 전작 <씬 레드 라인>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물론 무대는 제2차 세계대전과 17세기 초의 미국과 영국이지만 두 영화는 묘하게 닮았고,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유장하고 묵직한 서사로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나이트 오브 컵스>와 직접 연결되는 영화는 2011년 발효한 <트리 오브 라이프>와 2012년 발표한 <투 더 원더>라고 할 수 있다. <뉴 월드> 이후의 영화들인데, 이때부터 테렌스 맬릭의 영화는 상징성, 추상성, 이미지화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기존의 영화를 못 본 상태에서 <나이트 오브 컵스>만 보게 되면 관객은 충격과 혼란에 빠지거나 신선한 충격을 받거나 하게 된다. 호오가 분명하게 갈릴 것이고, 스토리가 분명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어려움을 호소할 것이 분명하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에서 현대를 다루는 영화-<트리 오브 라이프>, <투 더 원더>, <나이트 오브 컵스>-의 특징은 사물을 해체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감독이 의도하는 추상성, 개념화, 이미지를 통한 사색을 의도하는 것인데, 장면을 짧고 작게 나누는 방식, 실제 사건과 관계 없는 추상적인 장면들의 삽입, 등장인물의 방백, 인물들이 나누는 압축되고 절제된 대화 등이 철학적 개념을 이미지화 하는 작업이라고 보여진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모더니즘의 적극적 활용을 들 수 있는데, 주인공이 건축가(트리 오브 라이프)이거나 가구가 거의 없는 실내풍경(투 더 원더),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한때 붐을 이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모더니즘 건축(나이트 오브 컵스) 디자인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절제된 화면과 압축, 생략된 장면들, 간결하고 추상적인 화면 등 테렌스 맬릭의 특징은 모더니즘이나 미니멀리즘과 곧바로 맞닿아 있다. 그것은 감독의 철학적 개념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짧은 대화, 낮은 소리, 정적인 풍경 등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보다 깊이 느끼도록 한다.


<나이트 오브 컵스>는 테렌스 맬릭의 영화 가운데 가장 추상적이고 '사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독백으로만 이뤄진 듯한 내용은 물론이고, 기존의 그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감독의 추상화 작업이 더욱 실험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영화만을 놓고 보면,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든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에 따라 호불호가 격렬하게 나뉠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어쩌면 관객의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영상)라는 매체를 통해 그가 가진 철학적 개념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감독의 욕심이자 깊은 관심이다. 그런 감독의 의도에 관객이 호감을 갖고 반응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그 나름의 의미는 있다.


인물의 심리를 보통의 언어가 아닌, 당야한 몸짓과 풍경, 사물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언어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연출 의도로 읽힌다. 영화는 사람의 언어보다 더 다양한 표현방식을 갖고 있음을 감독은 알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 영화에서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방식이지만, 줄거리보다 근본적인 이야기 즉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나 인간 본연의 고독, 단절감, 괴로움 등을 표현하기에 '언어'는 매우 부족한 표현 방식일 수 있다.

따라서 언어를 가능한 적게 사용하고 영화 언어-영상, 이미지, 추상적 개념, 상징적 이미지, 비현실적 이미지 등-를 적극 사용하는 것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감독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보여진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는 수필보다는 시에 가깝다. 구체적인 단어를 통해 추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똑같은 사물을 보다라도 어떤 각도에서, 어떤 빛으로 보느냐에 따라 풍경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어떤 감독이 어떤 미장센으로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영화의 깊이와 의미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물론 영화가 일정한 수준-내용, 스타일, 연기, 연출 등- 이상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기본이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추상성이 강해지고, 난해한 표현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감독의 언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관객에게 조금 더 친절한 연출로 다가서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부터 테렌스 맬릭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는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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