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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외국여행을 하다

재미로 찾아 본 세계의 오지

by 똥이아빠 202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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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는 세계의 오지

세상은 넓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집밖에도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전, 자유롭게 다닐 때도 나라 밖을 여행할 만큼 재정이 넉넉치 않아 내 취미는 구글 지도를 보면서 간접 여행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지구에는 70억 명이 넘게 살지만, 사람이 살지 않을 만큼 외진 곳은 어디가 있고, 또 그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구글 지도로 사람들이 살지 않을 외진 곳을 찾아봤는데, 의외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캐나다

어릴 때,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지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때 '사회과지도'에서 세계 여러 나라와 도시를 보면서 동생과 지명 찾기 놀이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틈틈이 지도를 본다. 한국은 '카카오맵'으로, 외국은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면서, 더 넓은 세상, 내가 가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넓고 다양한 세상을 간접으로 들여다본다.

최근에는 문득 캐나다의 가장 북쪽에는 어디까지 사람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서 구글지도를 찾아봤다. 캐나다 대륙에서 가장 북쪽에 사람이 사는 지역은 '투크토야크툭'인데, 여기에 비행장이 있다. 이 지역은 캐나다에서 갈 수 있는 대륙의 끝이고, 그 위로는 사람의 흔적이 없다.

'투크토야크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이누빅'이다. 이누빅에서 '투크토야크툭'까지 가는 도로가 있긴 한데, 비포장이고, 실제로 차가 다니는 길인지는 모르겠다.

이 외진 곳, 대륙의 끝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에 식당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할머니의 부엌'이다. 낮12시에 문을 열고, 밤12시에 문을 닫는 이 식당은 햄버거, 감자튀김, 닭튀김, 물고기 튀김, 핫도그, 핏자, 빵, 잼, 초콜릿, 음료수, 물 등을 팔고 있다. 식당은 허름하지만, 바다가 보이는 멋진 장소에 있어서, 북극해를 망연히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아마 일년에 8개월 정도는 겨울일 것이다. 눈보라와 폭설이 내리는 날이 많을 것이고, 사람들은 집안에서 추위를 견뎌야 한다.

문명의 이기인 전기와 기름이 있으니 견딜 수 있겠지만,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고, 포기하는 만큼 또 얻는 것도 있으리라.

이런 곳에서 한 일년쯤 살아보고 싶다. 가볼 수 없는 곳이어서 더 그립겠지만, 생활이 힘겨워도 삶은 단순할 것이고, 대도시와 문명의 번다함에서 오는 피로는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은 '코로나19'로 더더욱 움직이지 못하니, 오로지 상상으로 멀고 먼 땅의 한 곳을 지도로 찾아본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가족과 이웃이 있을테지.

 

알라스카

어제, 캐나다 최북단의 '할머니 부엌' 식당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북미대륙에서 가장 북쪽 끝에 있는 마을은 미국령인 알라스카에 있다. 알라스카에서도 북쪽 끝이 북미대륙 끝이다.

여기 '배로'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서 조금만 가면 Northernmost tip of the US (미국 최북단)이 나온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마을 배로에 한국인이 살고 있고 -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 한국 식당이 두 곳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한 곳은 Northern Lights Restaurant 이고, 다른 곳은 Sam & Lee's Restaurant 이다. 아래 댓글에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올리니 보시라. 메뉴판에 한글과 한식 메뉴가 있다.

이 지역의 평판으로는 '샘&리' 식당이 더 맛있다고 한다. 여기도 차량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라 비행장 - 빌리 포스트 윌 로저스 메모리얼 공항 - 이 있다. 위도로 보면, 어제 올린 캐나다 최북단보다 이곳이 훨씬 위에 있다.

전혀 상상도 못한 지역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두 곳이나 발견한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역시 우리 민족은 모험 정신이 강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잘 적응하는 민족인가 보다.

 

러시아 시베리아

북미 대륙을 포함해 모든 대륙에서 가장 북쪽에 사람이 사는 곳은 러시아의 딕손이다. 항구도시인 딕손에는 약 60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구글지도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은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지만, 그외 지역은 정보가 제한적이다. 여기 딕손에도 식당이 있겠지만,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식당은 한 곳이다. Хлеб Да Вода(물과 빵)으로만 표기되는데, 리뷰를 보면 빵과 맥주를 파는 건 확실하다. 빵이 맛있다고 하니 아마 직접 빵을 굽는 듯하다.

여기도 비행장이 있는데, 비행장 활주로가 짧은 걸로 봐서 작은 비행기들만 다니는 걸로 보인다. 딕손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비행장은 암데르마 공항인데, 무려 1,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북극해와 가깝고, 겨울이 길어서 주변 자연은 황량하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남대서양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듯한 곳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놀라움이고, 신기함이다. 대체 어떻게 저런 곳을 발견하고, 또 그곳에서 살 수 있을까.

아래 지도에서 보면 남대서양 한복판, 육지에서도 너무 멀고, 아주 작은 섬이라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이 섬에서도 260여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이 섬을 알려면 먼저, '세인트 헬레나' 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세인트 헬레나' 섬은 나폴레옹이 유배된 섬으로 유명하다. 이 섬이 육지에서 얼마나 먼 곳에 있느냐면, 직선거리에 있는 아프리카의 앙골라 서쪽 해안에서 무려 2,800km 떨어졌다.

유럽에서 처음 이 섬(세인트 헬레나)을 발견한 기록은 1502년 5월 21일, 포르투갈의 항해가 '조안 다 노바'가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 이 섬은 무인도였고, 이후 포르투갈이 항해할 때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그러니 1502년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처음 정착한 것은 1584년, 포르투갈 사람 '페르난도 로페즈'로 알려졌으며,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고, 영국은 나폴레옹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보내는데, 1815년 10월 도착해서 1821년 5월 사망할 때까지 '롱우드 하우스'에서 살았다. 이 건물은 지금도 존재한다.

현재 세인트 헬레나 섬에 사는 사람은 약 4,500명 정도이며, 관광객이 많이 찾아서 관광업이 주 수입이라고 한다. 이 섬에는 '세인트 헬레나 국제공항'이 있다.

아래 붉은 점의 섬은 바로 위에서 말한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도 다시 남쪽으로 2,173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섬이다. 섬 이름은 '에딘버그 오브 더 세븐 시즈(Edinburgh of the Seven Seas)이며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제도의 수도로 인구는 268명이다.

남대서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상주 정착촌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섬은 너무 작아서 비행장도 없다. 즉, 이동할 때 배로만 다녀야 한다.

특이한 점은, 이 섬에 '성 요셉' 천주교 성당과 '성 메리' 교회(성당)이 있다는 점이다. 268명 밖에 살지 않는 곳에 교회가 두 개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알려진 유일한 음식점은 '앨버트로스 바'가 있는데, 이 간이음식점에 리뷰가 무려 340개가 넘는다. 물론 거의 다 가 본적도 없는 사람이 농담으로 써 놓은 것이어서, 이 리뷰를 그대로 믿으면 큰일난다.

지도로만 봐도 너무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오지 가운데 오지인데, 한국의 여행가들 가운데 이 섬에 다녀온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대서양 남쪽 사우스 조지아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

사우스 조지아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

대서양 남쪽에 있는 사우스 조지아 섬과 그 근처 작은 섬들을 일컬어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라고 한다. 이 섬들은 현재 영국의 자치령으로 영국 해외영토다. 작은 섬들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며, 가장 큰 섬인 사우스 조지아 섬에는 세 개의 항구가 있고, 이 항구에 사람이 살고 있다.

허스빅 항에는 '구아노 통조림공장'과 정육점이 있고, 스트롬네스 항에는 KFC(우리가 아는 바로 그 KFC)와 TJs 후라이드 치킨집이 있다. 대체 왜 이곳에 치킨집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을까. 물론 잘못된 정보다. 이곳도 통조림 가공 공장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네티즌들이 장난으로 좌표를 찍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라잇 항에는 식료품점과 생활용품점이 있다.

사우스 조지아 섬은 1775년 영국의 유명한 해적 쿡 선장이 처음 상륙한 점으로 알려졌다. 섬의 길이는 160km가 될 정도로 길고 큰 섬이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몹시 추운 섬이어서 19세기까지 주로 포경선들이 잠시 머무르는 포경선 기지로 활용되다 포경 산업이 쇠퇴하면서 기지는 사라지고, 과학 관측 기지만 남게 되었다.

사우스 조지아 섬을 말하려면, 서쪽으로 가장 가까운 섬인 '포클랜드 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깝다고 해도 무려 1,000km나 떨어진 섬이어서 포클랜드와 특별한 인연은 없었는데, 앞에서 언급한 남대서양의 섬들인 '세인트 헬레나', '에딘버그 오브 더 세븐 시즈' 그리고 설명하려다 일부러 빼놓았던 '아센시온' 섬까지, 세 개의 섬과 이 '사우즈 조지아' 섬, 그리고 '포클랜드' 섬은 현대에 와서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다.

포클랜드 섬은 알다시피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전쟁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 전쟁은 포클랜드 섬의 소유권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지만, 속내는 조금 다르다. 포클랜드 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690년 영국인 존 스트롱이 처음 상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실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은 1764년 프랑스인 루이 앙트완 드 부갠빌이 처음 정착민을 데려와 살게 했다. 이후 이 섬에 살던 프랑스 정착민들은 1766년에 이 섬의 권리를 스페인에게 팔았다. 우연히 같은 해, 영국인들이 이 섬에 정착촌을 세웠고, 스페인이 이 섬을 양도받았지만, 영국은 여전히 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서, 스페인과 영국이 공동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이 섬은 사람이 살기에 매우 척박한 곳이어서 영국인들은 1774년에, 스페인인들은 1811년에 섬에서 철수하고, 섬은 무인도가 된 채 한동안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건 1816년이고, 스페인에서 독립했으니 당연히 포클랜드(말비나스) 섬도 아르헨티나에 귀속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1826년, 아르헨티나는 이 섬의 영유권이 아르헨티나에 귀속한다고 공식 선언한다. 그리고 1828년 아르헨티나는 독일인 상인들을 정부대리인으로 포클랜드 섬에 파견하는데, 이 놈들이 이 섬을 중심으로 해적질을 시작한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자국 선원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을 파견해 독일인 상인들(해적)을 쫓아내고, 미국 해군이 섬의 해적 기지를 파괴하고, 1883년 영국 해군은 이 섬을 다시 점령하고 이후 100년 넘게 이 섬을 지배한다.

그 사이, 1946년에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한다. 1965년 유엔총회에서 식민지 독립을 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는데, 당시 포클랜드 섬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이 영국인이어서 당연히 아르헨티나에 귀속하는 걸 반대했다. 1973년에 아르헨티나는 다시 영유권을 주장했고, 영국과 협상을 시작했으나 영국이 이 섬을 쉽게 내줄 리가 없었다. 결국 1982년 4월, 아르헨티나는 무력으로 포클랜드 섬을 점령한다.

이 섬을 두고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앞으로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1982년에 아르헨티나가 무력으로 포클랜드 섬을 점령하면서 전쟁이 일어난 것은 단순히 영유권 싸움이었을까. 이 당시 상황은, 아르헨티나의 국내 정치, 사회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르헨티나를 포함해 남미는 군부독재가 오래 지배했다. 이른바 '제3세계 현상'으로 불리는 이 주변국(강대국 중심으로 보면, 미국과 유럽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주변국이다)의 군부독재 통치는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30년 동안 지속되었고, 남미, 아프리카는 지금까지 60-70년 이상 군부독재가 이어지는 나라들이 있다.

아르헨티나 역시 1955년 쿠데타가 일어났고, 1966년 다시 군부쿠데타가 발생했으며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한 다음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레오폴도 갈티에리 대통령이 실각하면서 끝나게 된다.

즉, 아르헨티나 군부독재는 국내의 민주화 운동, 반독재 투쟁, 민주화 시위, 노동자의 파업 등 정권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행동을 저지하고, 국내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해 영국과 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은 아르헨티나와 어떻게 싸웠을까를 보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대서양의 세 섬의 중요성이 크게 드러난다. 영국은 군대를 파병하고, 물자를 수송하는 길이 무려 10,000km가 넘는데, 영국의 남부 '포츠마우스' 기지에서 출발하거나 유럽 대륙의 끝인 스페인의 '지브롤터'에서 군함이 출발한다. 이들이 전략기지로 삼은 곳이 바로 남대서양의 '아센시온' 섬이다. '아센시온' 섬에는 비행장도 있어서 군수물자와 군대를 수송하는데 유리한 지점이다. 이 '아센시온' 섬에서 아래로 약 1,300km 내려가야 '세인트 헬레나' 섬이 나온다. 그리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다시 남쪽으로 2,173km 떨어진 곳에 '에딘버그 오브 더 세븐 시즈' 섬이 있다.

그리고 '에딘버그 오브 더 세븐 시즈' 섬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2,000km를 내려와야 '사우스 조지아' 섬이 나온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도 서쪽으로 1,000km를 가야 '포클랜드' 섬이 나온다.

따라서 영국군은 이 네 섬을 징검다리 삼아 군수물자와 병사를 이동시킬 수 있었고, 항공모함 두 척을 포함해 해군을 주력부대로 출격했다. 특히 핵잠수함을 56척 보낼 정도로 해상전투를 강화했고, 육해공군 모두 영국군이 아르헨티나군을 압도했다. 영국으로서는 전쟁을 치르기에 매우 힘겨운 환경이었지만, 남대서양에서 실질 지배하고 있었던 네 개의 섬을 통해 전략 기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포클랜드' 전쟁과 사우스 조지아 섬은 깊은 관련이 있는데,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계기가 사우스 조지아 섬에 있던 포경선 기지를 해체해서 고철을 구입하겠다는 아르헨티나 사업가 콘스탄티노 다비도프의 돌발행동 때문이었다. 다비도프는 포경선 기지를 소유하고 있는 영국회사에 자기가 사업을 하겠다고 제안했고, 계약까지 했다. 1981년 12월에 다비도프는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사전 답사를 가는데, 이때 섬에 상륙하겠다는 허가를 '사우스 조지아' 섬에 있던 영국 과학기지에서 받아야 했지만, 허가를 받지 않고 무허가 상륙을 했다. 나중에 다비도프가 사과했고, 이후 3월에 다시 인부들을 보내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포클랜드 섬의 영국총독에게 요청했지만, 답신을 받기 전에 해체 인부 41명을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보냈다. 이들은 기지를 세우고 아르헨티나 국기를 달았는데, 이걸 섬에 있던 영국 과학기지의 과학자가 보고는, 무전기로 포클랜드 섬의 영국총독에게 사실을 알렸다. 총독은 경비함을 파견하고, 이 와중에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영국군과 아르헨티나군이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가 1982년 3월 말이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부는 이미 영국과 전쟁을 벌일 결심을 하고 있었고, 이 상황이 발생하면서, 전쟁을 앞당기게 된 것이다.

 

남미 대륙의 끝

남미 대륙의 끝

북미대륙의 끝을 가봤으니, 남미대륙의 끝도 찾아봤다. 남미대륙의 땅 끝은 칠레 쪽에 있으나, 이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섬이 아닌, 대륙의 끝으로 보면, 남쪽으로 9번 국도가 끝나는 곳에 있는 '산 이시드로 등대'가 문명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보다 조금 더 남쪽, 그러니까 칠레 쪽에서 보면 '해남의 땅끝'에 해당하는 가장 끝부분인 '케이프 프로와드'가 있는데, 이곳은 트레킹 코스로 올 수 있는 곳이다. 당연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고, '산 이시드로 등대'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오는데, 놀랍게도 여기에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국경선 기준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섬을 제외한 '땅끝'은 남쪽으로 1번 국도가 끝나는 곳인데, 여기에는 정유공장이 있다. 이 정유공장이 있는 자리에서 '포클랜드 섬'은 직선거리에 놓여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좀 희한하게 형성되어 기본적으로 남미대륙을 세로로 길게 종단하는 안데스 산맥을 기준으로 나뉘어 있다. 안데스 산맥은 지구에서 가장 긴 산맥으로 약 7,000km에 이르며 해발 평균고도도 4,000미터에 이르는 고원이다. 이렇게 산맥을 따라 내려온 국경선은 남쪽 끝부분에서 갑자기 가로지르며 대륙의 끝까지 간다. 앞서 말한 아르헨티나의 대륙 쪽 끝까지 국경선이 그어지고, 다시 그곳에서 직선으로 내려오는데, 그 아래 있는 섬이 바로 '티에라 델 푸고' 섬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이 섬을 거의 반씩 점유하고 있다. 칠레가 왼쪽, 아르헨티나가 오른쪽 부분을 점유하는데, 그래서 땅끝은 아르헨티나 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티에라 델 푸고' 섬에서 시작하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 시작점에 3번 국도가 있는데, 이 국도를 따라 끝까지 남쪽으로 내려가면 인구 5만 명이 사는 우수아이아가 나온다. 남미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국제 공항이 있다.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3,250km 떨어져 있으며, 남극이 오히려 1,000km 밖에 안 되는, 남극과 가까운 지역이다. 남극으로 들어가는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여기에도 한국인이 살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남미 이민 1세대인 문명근 씨가 처음으로 비닐하우스 농법으로 채소를 재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외지에서 값싼 채소가 들어오면서 하우스 농사는 망하게 되고, 그의 가족들은 채소 농사를 포기하고 꽃 재배를 시작한다. 문명근 씨의 아들 문병경 씨와 그의 아내 임영선 씨가 꽃 재배를 시작했고, 남편 문병경 씨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임영선 씨는 혼자 화훼 공부를 하면서 노력한 끝에 성공한다. 이후 아들 다빈 씨도 의과대학을 그만두고 우수아이아로 와서 엄마와 함께 화훼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수아이아는 인구 5만 명에, 국제공항이 있으니 큰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극으로 가는 전진기지여서 수많은 나라에서 과학자들과 상선, 여행자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라, 대륙의 끝이라 해도 전혀 고립된 곳이 아니다. 다만 도시인 우수아이아를 벗어나면 황량한 땅으로 이어진다.

우수아이아에서 J도로를 따라 끝까지 가면 도로 끝에 '에스탄시아 모트'가 나온다. 이곳은 남쪽 대륙의 모든 도로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으로, 사람이 살지 않지만, 건물은 한 채 있다. 아마 과학자들의 연구 목적으로 세운 건물로 보인다.

이 도로의 끝에서 해안을 따라 약 15km 정도 가면 '카보 산 피오 등대'가 나온다. 여기도 남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등대가 몹시 오래된 것이라 지금도 기능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등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인 건 분명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없다.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서 오른쪽으로 버선코처럼 뾰족하게 나온 끝 지점에 등대가 하나 있다. 이곳과 맞은편 로스에스타 도스 섬 사이를 '비글해협'이라고 하는데,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등대 이름은 '산 디에고 등대'이며 우수아이아에서 배를 타고 구경할 수 있다.

우수아이아에서 J도로 끝 사이의 중간 지점에 개인박물관이 있고, 식당도 있다. 고풍스러운 멋이 있고, 바닷가여서 풍경도 근사하다. 지역 리뷰어들의 글을 보면, 이 식당 음식이 맛있다고 한다. 우수아이아에서 가까운 곳으로 역시 J도로 쪽에서 갈라져 K도로 쪽으로 들어가면 식당이 있는데, 가까운 곳에 두 곳의 식당이 있다. La Mesita De Almanza 와 La Sirena Y El Capitán 이라는 식당으로, 바닷가에 있고, 방문객과 리뷰어의 평이 훌륭한 것으로 보아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으로 보인다. 언제 우수아이아에 갈 수 있으면 이 식당은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이 있고, 마트에도 한국 라면이 있으니 어쩌면 한국식당도 있겠지만, 지도에서는 찾지 못했다. 북미 대륙 끝과는 다르게, 남미 대륙 끝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오가는 여행자도 많아서 전혀 오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남극에 있는 한국과학기지

남미 대륙의 끝에서 남극으로 갈 수 있다. 대륙의 끝에 있는 도시 '우수아이아'는 남극으로 가는 전진기지이며, 세계 여러나라의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남극 기지로 출발한다.

우수아이아에서 남극까지는 약 1,000km이며, 킹조지 섬에 비행장이 있다. 섬이 아닌, 남극 대륙의 끝점에 베이스 캠프가 두 개 있다. 아래 이미지에서 남극대륙의 끝부분인 뾰족한 끝에 '베이스 마람비오'에는 작은 비행장도 있다. '에스페란사 베이스'도 있고, '제너럴 베르나로도 오 히긴스 베이스'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기지가 '킹 조지 섬'에 있다. 한국의 '남극세종과학기지'도 여기 '킹 조지 섬'에 있다. 한국인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는 가장 남쪽이다. 이곳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17,240km다.

한국의 두번째 남극과학기지는 2004년, 남극 대륙에 세웠으며 '남극장보고과학기지'로 이름 지었다. 위치로 보면, '세종기지'는 남미대륙에서 내려오고, '장보고기지'는 호주, 뉴질랜 쪽에서 내려오는 곳에 있다.

세종기지가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쉽고-그래도 매우 불편하다-근처에 다른 기지들도 있다면, 장보고기지는 거의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는 지역이다. 가까운-370km 거리에 미국기지가 있긴 하다-곳에 미국기지가 있지만, 여름 이외에는 오고가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고립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남극에 두 개의 연구과학기지를 둘 수 있는 건, 우리의 국력을 드러내는 상징적 모습이다. 세종, 장보고 기지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는 분들을 응원한다.

 

인도양의 프랑스령 남방 및 남극

아래 지도에서 왼쪽이 아프리카 대륙, 오른쪽이 호주 대륙이다. 그 사이가 인도양이고, 아래쪽이 남극이다. '프랑스령 남방 및 남극'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걸로 안다.

아래 지도에서 중앙 아래쪽의 깃발이 '케르겔렌 제도'다.

프랑스령 남방 및 남극

프랑스령 남방 및 남극 지역(프랑스어: Terres australes et antarctiques françaises; TAAF)은 인도양과 아프리카 남동쪽 바다의 프랑스령 군도와 남극 대륙의 아델리랜드를 지칭한다. 다음 지역들로 구성되어 있다:

케르겔렌 제도 (Archipel des Kerguelen) : 인도양 남부,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다.

생폴 섬과 암스테르담 섬 (Îles Saint Paul et Amsterdam) : 케르겔렌 제도 북쪽에 위치한다.

크로제 제도 (Îles Crozet) : 마다가스카르 남쪽에 위치한다.

아델리랜드 (Terre Adélie) : 프랑스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남극 대륙의 지역이다.

프랑스령 인도양 군도 (Îles Éparses) : 마다가스카르 연안에 흩어져있는 프랑스령 섬들이다.

이 중 아델리랜드와 프랑스령 인도양 군도는 프랑스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되진 않았다. 군인, 연구원들이 거주하며 민간인은 거주하지 않는다.

케르겔렌 제도의 수도는 뽀흐-오-프헝쎄(Port-aux-Français)다. 인구는 계절에 따라 다른데, 여름에는 약 110명, 겨울에는 70명 정도가 거주한다. 지도에서 인도양과 남극의 중간, 왼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 오른쪽으로는 호주 대륙의 중간에 있는 섬이다. 망망대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이 드넓은 바다에도 중간중간 섬들이 있다.

'생폴' 섬과 '암스테르담' 섬은 케르겔렌 제도에서 1시 방향으로 약 1,200km 북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암스테르담' 섬이 조금 더 크고, 이 섬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암스레트담 섬의 '마르탱 드 비비에스'에는 겨울에 25명, 여름에 45명 정도의 과학자, 군인이 거주한다.

클로제 제도는 케르겔렌 제도에서 서쪽으로 약 800km 떨어져 있고, 서너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섬들을 발견한 것은 프랑스 탐험가 마르크 조셉 마리온 두 프레스네가 1772년 1월 24일이라고 한다. 클로제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포세시옹 섬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겨울에는 약 25명, 여름에는 약 45명의 군인, 과학자들이 거주한다.

프랑스가 이 섬들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끊임없이 군인과 과학자를 보내고, 거주하도록 하는 것은, 이 지역 일대의 어업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획이 많지는 않으나 이 지역에서 다른 나라 어선이 불법 어획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 해군을 파견하며, 일정한 금액을 받는 조건으로, 다른 나라 어선이 어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연 1,600만 유로 정도라고 한다.

인도양의 망망대해에서 매우 적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적막하고, 막막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의 번다함, 복잡한 도시의 피로에서 벗어나 자연과 오롯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평생은 하기 어렵고, 일년 정도는 지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남태평양 세 개의 섬

남태평양에서 남미대륙 쪽으로 보면, 세 개의 꼭지점을 이루는 섬을 볼 수 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지도에서 이 세 개의 섬을 보면 새롭고도 신기하다. 이 섬들은 각각 '갈라파고스 제도', '이스터 섬', '로빈슨크루소 섬'이다.

1835년,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을 다니며 진화론에 관한 기초 조사를 했다. 이곳은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 섬', '산타크루스 섬', '산티아고 섬', '산 크리스토발 섬', '페르난디나 섬' 등이 있고, 이보다 작은 섬들이 여럿 있는 지역이다. 동쪽으로 1,000km 직선 거리에 에콰도르가 있으며,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들은 에콰도르에 귀속되어 있는 섬이다.

이 섬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파나마의 주교 프레이 토마스 드 베를랑가였다.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하던 16세기, 스페인 국왕 찰스 5세가 페루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베를랑가를 페루로 파견했는데, 그가 파나마에서 페루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이 섬에 도착했고, 그때가 1535년이었다. 베를랑가는 이때의 상황을 보고서로 작성해 국왕에게 보고했고, 1574년에 스페인의 지도 제작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가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섬을 그려 넣었다.

1593년에 영국인 리처드 호킨스가 이 섬에 발을 디딘다. 이후 영국 해적들이 이 섬을 중심으로 남미에서 스페인으로 보물을 실어나르는 선박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한다. 18세기에는 태평양에서 고래를 잡는 포경선의 전진기지로도 활용되었다.

이스터 섬은 칠레 령에 속해 있지만, 폴리네시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칠레 해안에서 이스터 섬까지 거리는 약 3,700km이고, 이스터 섬에서 서쪽 핏케언 제도까지는 약 2,075km 떨어져 있다. 핏케언 제도는 현재는 영국령이지만, 폴리네시아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15세기 이후 무인도로 존재하다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 호에서 반란이 일어나 주동자 플레처 크리스천이 선원들을 데리고 핏케언 제도에서 내려 정착한 것이 백인들의 최초 정착이다. 1829년, 영국이 이 섬을 자국의 영토로 선언하면서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현재 이 섬에서 사는 사람은 약 50명 정도라고 한다. 이곳에서 병원을 가려면 약 4,000km 떨어진 뉴질랜드로 가야하고, 3개월에 한번씩 뉴질랜드에서 북미로 가는 화물선이 있다고 한다.

이스터 섬에 살던 원주민들은 2,900년 전, 폴리네시아에서 카누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망망대해 태평양을 카누로 건넌다는 것이 놀랍지만, 이스터 섬에 있는 거석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주민의 이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터 섬의 유명한 석상 모아이는 원주민들이 만든 것으로, 크기는 3.5미터에서 5.5미터에 이르며, 약 900개의 모아이가 있다고 한다. 이스터 섬도 원래 나무가 우거졌으나 원주민이 벌목을 너무 많이 해서 나무가 사라졌다는 설과 유럽인이 이스타 섬의 원주민을 노예로 끌고 가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쥐가 들어와 야자나무 씨를 비롯해 씨앗과 열매를 닥치는대로 먹어치워 나무가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오늘날에도 이스터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칠레는 이스터 섬의 원주민을 차별하고 학대한다고 알려졌고, 관광수입을 칠레가 가져가면서도 원주민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로빈슨크루소 섬은 칠레 해안에서 약 600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원래 이름은 '마스아티에라 섬' 또는 '아과스부에나스 섬'이었는데, 1574년 11월 22일 스페인 선원 후안 페르난데스가 이 섬을 발견한다. 발견할 때도 무인도였으며, 이후로도 줄곧 무인도로 남아 있었고, 가끔 무역선이나 해적선이 물을 긷기 위해 정박하곤 했다. 그러다 1704년, 스코틀랜드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가 이 섬에서 4년 4개월 동안 표류하다 탈출했다. 영국 무역선 듀크호가 선원들을 좀 쉬게하려는 목적으로 이 섬에 닻을 내렸고, 무인도에 혼자 살고 있던 셀커크를 발견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대니얼 디포가 소설 '로빈슨크루소'를 썼다.

현재는 이 섬에 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섬이라고 한다.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서 섬까지 경비행기가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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