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
아주 오래 전 이 영화를 봤는데, 극장에서 봤는지, 비디오테이프로 봤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30년 가까이 된 영화여서 젊었을 때 본 영화로, 그때만 해도 이 영화를 스릴러, 공포 영화로 기억했고, 극중 주인공 애니 윌크스가 미치광이 싸이코패스라고만 알았다. 주인공인 작가 폴 셀던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시골의 단골 호텔에서 마지막 작품을 쓰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설에 미끄러지면서 사고를 당한다. 그를 살린 사람은 애니 윌크스. 작가의 소설을 모두 읽었고, 작가를 사랑하는 열성 팬인 애니의 극진한 보호를 받는 폴,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극적으로 변한다.
영어 교사이자 작가인 잭 토렌스는 겨울 동안 문을 닫는 '오버룩 호텔'을 관리하는 일을 맡기로 하고, 아내 웬디와 아들 대니와 함께 '오버룩 호텔'에 머문다. 그러다 서서히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이를 도끼로 살해하려 날뛰다 죽고, '오버룩 호텔'은 불에 타서 사라진다.
'오버룩 호텔'이 폐허가 되고 10년의 시간이 지나서, 폴 셀던은 '오버룩 호텔'에서 멀지 않은 호텔에서 글을 쓰고,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작가지만, 정작 자신은 '미저리' 시리즈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주인공의 삶에 작가가 매여버리는 느낌이 들었고, 더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폴은 대중소설인 '미저리' 시리즈를 쓰면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작가로서의 미학적 완성, 창작의 수준을 높이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폴이 작품을 완성하고, 눈길을 달려 뉴욕으로 가는 길에서 폭설을 만나 사고를 당하는데, 이 사고가 우연일까. 스티븐 킹의 원작이나 영화에서는 이 사고의 개연성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폴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언덕으로 구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데, 여기서 자동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언덕으로 구르는 진짜 원인은 폴의 심리상태에 있다. 폴은 자신의 시리즈 소설 '미저리'를 끝내게 되어 속이 후련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는 '미저리' 시리즈에 기대는 마음도 있다. 즉, 애증의 심정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 인물에 대해 너무 많이 써서 지겹지만, 그 인물이 자기의 부와 명예를 만들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애니 윌크스는 실재하지 않는, 폴이 만든 상상의 존재다. 폴의 목숨을 살려준 고마움으로 애니는 폴의 마지막 작품을 읽도록 허락 받고, '미저리'가 죽으면서 시리즈가 끝난다는 걸 알게 된다. 애니는 미저리를 죽인 폴에게 분노한다. 미저리를 죽일 권리가 너에게는 없다고, 그건 폴이 작가로서의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독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역대 다른 추리소설 작가들도 주인공을 죽인 다음에 독자들의 항의 편지를 너무 많이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부활시킨 실제 사례가 있었다.
애니는 '독자의 현현'이다. 즉 폴이 생각하는 무의식 속의 독자는, 비록 자기가 쓴 소설 속 주인공 미저리를 작가의 권리로 죽였지만, 그 작품을 읽을 독자가 보일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독자는 미저리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작가를 향해 분노할 것이다.
애니는 폴에게 원고를 던지고, 휘발유를 끼얹고 폴에게 직접 불을 붙여 태우라고 명령한다. 이건 독자의 명령이다. 작가인 폴은 거부하고 싶지만, 자기 의지보다 더 강한 힘이 작용한다는 걸 느끼고, 어쩔 수 없이 - 아니, 어쩌면 폴 자신도 '미저리'를 죽이지 않고 계속 살려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 마지막 원고를 태운다.
애니 - 독자의 현현 - 는 폴에게 새로운 작품을 쓰라고 요구한다. 폴은 '이런 환경에서, 강압에 의해서는 작품을 쓸 수 없다'고 버티지만, 알고보면 모든 환경은 폴이 글 쓰기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 24시간 돌봐주는 애니가 있고, 식사, 빨래, 청소, 심부름까지 완벽한 뒷바라지를 하는 애니 - 독자 -가 있다.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폴은 싸이코패스 살인마 애니에게서 도망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폴은 거의 아물어가던 다리를 묶이고, 애니가 해머를 휘둘러 다리를 다시 부러뜨린다.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않으면 총으로 폴을 죽이고 자살하겠다는 애니 - 독자 - 의 협박에 겁을 먹고, 폴은 새로운 소설을 쓴다.
미저리를 다시 살리고 - 벌 알러지 반응으로 숨을 쉬지 못하지만 죽은 건 아니고, 관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이 상황은 스티븐 킹의 다른 단편에서 뱀에 물린 사람의 의식을 통해 재구성하고 있다 - 불태운 직전의 작품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을 창작한다.
애니 - 독자 -는 결국 훌륭한 작품을 쓴 폴을 칭찬하고 대견하게 여긴다. '거 봐라,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싸이코패스 살인마인 애니 - 독자는 때로 작가에게 싸이코패스처럼 보인다 - 가 새로운 작품을 읽으려 행복한 마음일 때, 폴은 자기가 창작한 작품 - 자신의 자식 -을 인질로 위협하며 애니 - 독자 - 를 패닉에 빠뜨린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살해'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이때 칼을 쥔 사람은 '독자'(애니)가 아니라 '작가'(폴)가 된다.
작가는 자기 작품을 인질 삼아 독자를 협박한다. '내 소설을 읽으려면 좀 고분고분하게 말 듣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독자는 이미 화가 났고, 작가를 용서하지 못한다. 작가와 독자는 불화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적대적 관계가 된다. 둘 가운데 하나가 물러서거나 타협하면 되겠지만, 작품을 두고 작가와 독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는 어렵다.
폴과 애니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결국 폴(작가)은 애니(독자)를 이긴다. 폴은 독자의 요구를 일방 무시한 것은 아니고, 독자의 요구를 들어주되, 자기 방식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작가의 자존심이자, 작가의 권리이며 특권이다. 폴은 독자에게 일정 부분 양보하되 자기가 지켜야 할 핵심은 뺐기지 않았다.
폴은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작품 - 미저리가 죽는 작품 -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작품이 독자에게 비난받을 걸 예상했고, 그런 무의식이 눈길을 달리는 차가 미끄러지도록 한 것이며, 병원에 묵으며 그는 새로운 작품을 쓴다. 그 과정에서 독자의 현현인 작가의 무의식과 내면의 투쟁을 벌이고,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면서 갈등과 고통이 사라진다.
이 영화(소설 '미저리')는 다른 작품 '샤이닝'과 함께 스티븐 킹의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자 글쓰기의 고통, 글쓰기의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소설을 쓰고 있어서, 30년 전에 봤던 같은 영화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공포' 영화이긴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작가 자신에 의한, 자신의 내면에 관한 글쓰기(창작)를 다룬 이야기다.
애니 윌크스를 연기한 배우 캐시 베이츠는 이 영화가 주인공으로는 첫 작품이었다. 나도 이 영화를 보고 캐시 베이츠를 알게 되었고, 팬이 되었는데, 그때 이후 지금까지 줄곧 변함없이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영화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 이미 미국 연극계에서 '토니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으며 연기를 인정받았고, 이 작품 '미저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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