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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분닥 세인트

by 똥이아빠 2022. 3. 23.
분닥 세인트
 
1999년에 개봉한 B급 영화. 오래된 영화지만 지금 봐도 시나리오와 연출이 훌륭하다. 감독의 연출 감각이 상당한데, 자칫 평범한 스토리가 될 수 있었던 내용을 뛰어난 연출과 편집으로 명작을 만들었다. 
스토리 라인은 단순하다. 보스톤에 사는 평범한 노동자 형제 코너와 머피는 일요일에는 성당에도 다니는 건실한 청년들이다. 잘 알려진 사실처럼, 미국 동부는 카톨릭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벌어진 신부들이 소년들을 성추행, 성폭행한 사건이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자세하게 다뤄지기도 했듯이, 두 형제가 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장면이 첫 장면으로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코너와 머피가 사는 지역은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지역인데,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러시아 마피아가 지역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코너와 머피가 단골로 가는 선술집에서 주말을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며 즐기고 있을 때, 러시아 마피아 일당이 찾아와 당장 선술집을 비우라고 명령한다. 마피아 범죄집단이 평범한 서민의 일상으로 파고 들어오는 미국의 현실이 조금 과장되었겠지만, 미국 사회가 이런 분위기와 위협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고 봐도 좋겠다.
코너와 머피 그리고 친구들은 서너 명의 마피아 행동대원을 흠씬 두들겨 패서 내쫓는다. 다음 날, 어제 얻어 맞은 러시아 마피아들이 코너와 머피를 찾아와 죽이려 한다. 그저 몸싸움을 했을 뿐인데, 실제 죽이겠다고 찾아와 죽기 직전의 상황에 놓이지만, 가까스로 마피아를 죽이고 살아난다.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한 코너와 머피를 심문한 FBI 요원 스메커(윌리엄 데포)는 두 사람이 정당방위였다며 풀어준다. 취조 과정에서 코너와 머피는 러시아어, 프랑스어, 이탈리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데, 스메커는 그런 형제의 모습을 보고는, '이런 천재들이 왜 공장에서 썩어야 하는가'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풀려난 코너와 머피는 놀랍게도 신의 계시를 받는다. 이 세상에서 악당을 없애라는 신의 음성을 듣게 되고, 이때부터 형제는 범죄자들을 처치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B급 정서를 배경에 깔고 있지만, 형제의 상황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에서 주인공 트래비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감정과 매우 비슷하다. 즉, 형제는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나 정신적 외상(PTSD)을 입은 것이다. '트래비스'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귀국한 이후 정상(?)의 생활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는 심한 불면증에 걸려 밤거리를 배회하다 심야에만 운전하는 택시운전사가 되고, 뉴욕 거리의 더러운 장면을 보면서, 쓰레기들을 전부 청소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다.
형제는 자신들이 죽인 마피아의 소지품에서 삐삐가 오는 걸 보고, 마피아 두목급 모임이 있는 호텔에 침투해 아홉 명을 몰살시킨다. 이때 친구인 로코가 합류하게 되고, 세 사람은 로코의 정보를 바탕으로 보스톤의 범죄조직 두목급들을 하나씩 찾아 살해한다.
 
영화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앞으로 나가는 힘은 연출 방식의 신선함에 있다. 마피아 살해범을 쫓는 FBI 요원 스메커는 사건을 해설하는 인물이다. 사건의 흐름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하지 않고, 오히려 스메커가 먼저 등장하고, 그 다음에 형제가 마피아 두목들을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방식이 자칫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연출의 힘이 이 도치된 장면을 오히려 개성 있게 살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경찰과 FBI는 중요하지 않다. 스메커는 날카로운 추리로 범행 현장과 피해자만 보고도 전체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지만, 자기가 풀어준 형제가 범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스메커도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형제를 잡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마피아 두목을 없애는 것은 FBI도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부하들이 죽어나가자 마피아 두목 야카베타는 결국 코너와 머피, 로코를 잡는다. 이들 가운데 누가 자기 부하들을 죽였는가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졸개였던 로코를 범인으로 여기고 로코를 죽인다. 코너와 머피도 죽이려는 순간, 형제는 극적으로 탈출하고, 야카베타는 전설적인 살인마 듀크를 불러달라고 삼촌이자 대부에게 부탁한다. 
로코가 죽는 장면부터 영화는 더 이상 코믹하지 않다. 그 전까지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기는 상황을 만들어 관객을 웃게 만들었지만, 로코의 죽음으로 형제는 심각한 태도로 변한다.
형제가 계속 마피아 두목들을 살해하고 다닐 때, 전설적인 살인마 듀크가 그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들이 만나 서로를 향해 총질하는 장면은 수많은 서부극에서 나오는 쌍권총의 난사를 오마주했다. 그렇게 많은 총알을 퍼부어도 약간의 부상만 입을 뿐, 네 사람 모두 심각한 부상도 입지 않는다. 이런 장면이 B급 정서를 잘 보여주는 것이리라.
 
살인마 듀크가 형제의 뒤를 쫓아와 형제를 죽일 수 있는 장면에서 형제가 올리는 기도문을 듣고는 총을 집어 넣는다. 이 극적인 반전을 통해 영화의 리얼리티는 사라지지만, 영화가 하고 싶은 의도는 분명해진다. 마피아 두목 야카베타가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법원 재판정에 난입한 형제와 듀크는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신의 대리자처럼, 인간의 범죄를 심판하는 말을 하고는 야카베타를 처형한다.
이 장면, 세 사람이 마피아 두목을 공개 처형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세 명은 '성부, 성자, 성모'의 이름을 상징하며, 신의 이름으로 '악'을 저지르는 '악마'를 처단하는 장면이다. 공개 장소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역시, 이들은 어리석은 대중이자, 카톨릭 교도를 의미한다. 어리석은 신도들은 쉽게 악에 물들고, 악의 유혹에 빠진다. 신은 그런 어리석은 대중을 향해 직접적인 경고를 하는 것인데, 이 세계는 '구약'의 세계다.
구약에 등장하는 신은 공포와 복수, 증오와 같은 두려운 존재이며, 신을 따르지 않는 대중에게 가차없는 복수를 하거나 징벌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절대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구약의 세계가 어리석은 대중을 이끌어야 하는 무질서의 세계이며, 부족신이 유일신이 아닌, 무수히 많은 신들이 난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장으로서는 부족신만 섬겨야 하는데, 어리석은 대중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잡신들을 끌어와 숭배하고 있는 걸 보면서,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와 징벌을 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코너와 머피 그리고 형제의 아버지인 듀크가 등장한 것은, 미국 사회가 여전히 구약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고 미개한 사회라는 메타포를 배경에 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B급 정서를 매우 잘 활용한 영화다.
세 명의 '뒷골목 성인'이 등장하자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잘 하고 있다'와 '그래도 폭력은 좀...'과 '노 코멘트'로 나뉜다. 악당만을 골라 죽이는 '뒷골목 성인'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사회의 정의가 올바로 구현되고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사적 폭력에 의한 복수'를 경계하는데, 이것은 구약의 세계를 벗어난 이성의 자각을 뜻한다. 이성적인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정의도 살아나는데, 미신과 무속, 잡신을 섬기는 인간에게 47%나 표를 준 한국사회는 이성의 사회에서 다시 '구약의 세계'로 퇴보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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