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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1990년대

1990년대-동무의 장례

by 똥이아빠 201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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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죽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병원에서 눈을 뜨지 못한 채, 뇌사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의 가족들도, 나도,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도 그의 죽음은 황망하고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갔다. 겨우 삼십 년을 살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일까. 그에게 삼십 년은 어떤 삶이었을까. 사람은 삼십 년을 살면 많은 것을 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그때 나의 유일한 동무였으며,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무였다. 그는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주대학교 야간부를 다니고 있었다. 나처럼 그도 가난했고, 가난했지만 분명 희망은 있었다. 그는 똑똑했고,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외모도 출중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 
사람들은 '실수'아니 '실족'이라고 했다. 기숙사에서 몰래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다 실족을 했다는 것이다. 정녕 그랬을까? 그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의 영혼까지 잠식할 줄 몰랐다. 그의 아버지와 그의 가족과 그가 알던 어떤 여자. 국민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온 동무. 그후 살아가는 길은 달랐지만 우리는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고, 그가 공군에 입대하고, 내가 육군으로 준전방에서 기고 있을 때, 나에게 면회를 온 유일한 동무였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싫다. 물론 그 시절을 건너 뛸 수 없기에, 누구나 거쳐야 하는 폭풍같은 세월이기는 하겠지만, 또한 그 시절을 보냈기에, 좋다고도, 싫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지나서 생각하면, 나는 20대가 싫다.
그 역시 20대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는 나처럼 비겁하지 않았고, 자신의 좌절을 감추지 않았기 때문에 '실족'한 것이리라. 나는 숨죽이며 살았다. 그가 가진 용기도 나에겐 없었고, 젊은 날의 패기도 없었고, 무력한 생존만이 내재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20대가 싫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는 나에게 있다. 나는 돈이 없어 사지도 못한 국민학교 졸업앨범도 그의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를 보내기는 쉽지 않았지만, 쉽게 잊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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