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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새로나온책

단편소설-그 해 여름

by 똥이아빠 201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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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불덩어리가 살갗에 닿는 듯한 느낌이었다.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은빛 포말로 부서지는 유월의 들판은 땅거죽이 벌겋게 달아 익어 있었다.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벼포기들은 대가리가 누렇게 시들어 있었고 길옆의 나뭇잎새와 들풀도 푸르다 못해 짙은 녹색으로 독이 올라 있었다.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이 수증기처럼 어른거리고 불덩어리에 데인 나무는 혀를 빼물고 허덕거리며 몸뚱아리를 흐느적거렸다. 땅거죽이 끓어오르는 길에 두 사내가 해면체처럼 늘어져 걸어오고 있었다.
우라질, 아주 쪄 죽이누만.
사내 하나가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점퍼를 벗어부치며 신경질을 부렸다. 검은 얼굴에 턱이 뽀족한 사내였다. 이마가 좁고 눈이 가늘고 길게 찢어져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으며 그 속에서 반짝거리는 눈빛이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반면에 그의 곁에서 묵묵하게 걷고 있는 사내는 약간 살이 붙은 체구에 둥그스름하고 원만한 특징 없는 얼굴에 갈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사내는 손수건으로 얼굴과 목에 흐르는 땀을 닦기에 정신이 없어서인지 상대방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여행용 가방이 가볍게 흔들렸다. 턱이 뾰족한 사내는 안경 낀 사내를 힐끗 곁눈질하며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상대방의 체구는 그 육중한 덩어리만큼 후끈한 열기로 다가와서 문득 욕지기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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