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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2008년

2008년-유럽여행-06D-폼페이

by 똥이아빠 201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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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최후의 날을 기록한 문헌으로는 작가 소(小)플리니우스의 글이 있으며, 폼페이 최후의 날에 숨진 삼촌 대(大)플리니우스 로마 함대 사령관도 화산활동을 연구하였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가 멸망한 날은 기원후 79년 8월 24일이며, 아무도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는 내다보지 못했다. 라틴어에 화산이라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로마 시민들은 화산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폭음과 함께 화산이 폭발했고, 폼페이의 하늘은 어두워졌다. 그리고 18시간 동안 백억톤에 달하는 화산재와 암석파편이 뿜어지면서 집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속에서 죽어갔다.

폼페이를 죽음으로 몰고간 베수비오 화산은 17세기와 1944년에도 폭발했다. 다행히 1944년 폭발시에는 나폴리 시민들이 미리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많지 않았다. 화산폭발이 끝나자 나폴리 시민들은 돌아와서 재건을 시작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폼페이 발굴


폼페이 발굴은 1549년 수로공사중에 유적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1748년 발굴로 광장, 목욕탕, 원형극장, 약국 유적지등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3분의 2가 발굴되었다. 따라서 발굴이 완료된다면 로마 미술의 최고걸작으로 평가받는 '큐피드 벽화'와 '춤추는 폰의 동상'등의 수준높은 문화재들이 더욱 많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1월 6일, '검투사의 집'이 폭우로 인해 붕괴되었다-위키백과



2천 년 전에 이미 이 정도 수준의 문화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흔적으로만 남은 것이 이 정도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문화수준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폼페이의 유물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인데, 순간, 저기 사람의 형상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 조각같은 것은 진짜 사람이 화산재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유리상자 안에도 사람의 형상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앉아 있는 사람의 형상도 있었다. 당시의 끔찍한 상황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엎드린 채 죽은 사람의 형상도 있다.


폼페이 유적은 아직도 온전히 발굴된 상태가 아니어서, 발굴하고 정리하는 데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릴 예정이다.














역시 현관 바닥에 보이는 검은 개.
































2천년이 넘은 벽화.


색상과 그림이 참 좋은 느낌이었다.


퍽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사람들도 거의 빠져나가고 해도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우리도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젤라또.


이제 폼페이를 떠나, 쏘렌토로 간다.


쏘렌토 가는 길에 만난 석양. 사진보다 백 배는 아름다웠다.


석양을 보며 기념사진. 규혁이 실루엣은 엄마 앞에 있어서 거의 보이지 않지만, 자세하게 보면 보인다. ^^





아말피. 밤이어서 전체 풍경을 못 본 것이 안타깝다.


광장에서 규혁이.


바로 바닷가 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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