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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연인

by 똥이아빠 2015. 1. 5.



<영화> 연인

  그동안 우리나라에 들어온 장 자끄 아노의 영화를 거의 다 보아온 나로서는 이번 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아노 감독은 그동안 ‘불을 찾아서’ ‘장미의 이름’ ‘베어’ 등을 통해 영화만이 가능한 세계를 그려왔다. 미지의 세계, 머나먼 옛날, 신비의 사원 등을 그려왔던 것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근세 - 1920년대 - 면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영화적 미학 - 영상미, 소품, 촬영, 편집, 세트 등이 잘 어울렸고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천박하지 않게 그리고 있다. 이 영화가 무엇을 깊이 있게 말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지나간 시대의 회상과 추억이 배어있는 쓸쓸함이 있었고 젊었던 시절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전달되고 있었다.
  1920년대, 프랑스는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점령자로서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베트남 민중들을 착취했다. 그곳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모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베트남 민중을 학대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시절에 한 프랑스 가족은 자신들의 식민지 땅에서 몰락하여 가난과 불명예의 굴레에서 고통과 저주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죽고 많은 재산은 사기를 당하고 가난 속에서 큰 오빠는 아편에 빠져있고, 심약한 둘째 오빠는 언제나 비루먹은 개처럼 빌빌거렸다. 그 속에서 열 다섯의 감성적인 소녀는 가족을 저주하고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집안에서 도망치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소녀는 배 안에서 돈 많은 중국인을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말인가.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의심스러웠고 순결하지 못했다. - 그렇다. 이 세상에 ‘진실로’ 아름답고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이 있기나 한가. 소녀는 자신이 돈 때문에 몸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결코 중국인 남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고.
  돈 많은 중국인, 식민지 시대에 베트남, 프랑스 식민지에서 중국인이 거부로 살아가고 있다는 역설적인 모습이 더욱 그러했지만, 이 영화에서 중국인 남자는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적어도 진심으로 프랑스 소녀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남자는 고뇌하고 아파했다.
  그에게 가해지는 결혼의 압력 - 이른바 매매혼으로, 돈많은 집안끼리 결합하는 것을 아버지는 원하고 있었다 - 에 갈등과 고통을 호소하고 아버지를 설득하려 하지만 아버지는 냉정하고 현실적이었다. 그는 아편으로 몸을 망치고 마지못한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별, 소녀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소설을 쓰며 늙어간다. 중국인 남자는 결혼을 하고 가끔 프랑스에 들르면 소녀에게 - 이제는 할머니가 된 - 전화를 한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 영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정사장면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를 확인해가는 과정을 보다 세밀하게 그리고 있는데, 아노 감독은 정사 장면을 전면적으로 보여주지만 노골적이거나 천박한 성교로 표현하고 있지 않다. 남녀의 성이 신비하고 또 은밀한 것이야 말할 나위없지만 그것이 무조건 감추어진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성적인 충동을 느끼고 또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모습이 당당하게 보여진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는 두 사람만의 밀실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관계가 보여진다.
  영화적 미학이라는 면에서 카메라를 매우 근접하여 촬영한 것도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아노 감독이 자신이 그동안 생각해왔던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영화로 보여주었다는데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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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늙어서 작가가 된 여주인공(Narrator, voice : 잔느 모로 분)이 파리의 자기집 다락방에서 꽃같던 16살 소녀 시절의 첫사랑을 회상하면서 소설을 써내려 간다. 1920년대 말 프랑스 점령 치하의 베트남 사이공. 소녀(The Young Girl : 제인 마치 분)의 가족은 모두 형편없다. 어머니(The Mother : 프레드릭 메이닌거 분)는 광기와 절망에, 오빠(The Elder Brother : 아놀드 기오바니네티 분)는 아편에 찌든 부패에, 동생(The Younger Brother : 멜빈 파우포드 분)은 나약함에 빠져있다. 그들은 야만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서로를 의심하고 경멸한다. 그런 환경으로 인해 소녀는 섹스에 몰입한다. 단지 노련한 그의 연인에 대한, 친구 헬렌(Helene Lagonelle : 리자 폴크너 분)에 대한, 자기 혐오와 탈출에 대한 일환으로 욕망의 행위는 계속될 뿐이다. 소녀는 방학을 가족과 함께 보낸 뒤 학교가 있는 사이공으로 돌아가기 위해 혼자서 긴 여행을 떠났다. 그녀가 탄 버스는 '사덱' 지역을 통과해 메콩강을 건너기 위해 페리호에 실린다. 박스 원피스에 구식 라메힐, 장미 넝쿨색의 남자 모자 차림의 이 소녀는 버스에서 내려 배의 난간으로 다가간다. 이때 버스 옆의 리무진 안에 세련된 중국인 청년(The Chinaman : 양가휘 분)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흰 비단 양복을 입어 유럽인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그는 소녀를 지켜보고 있다. 청년은 차에서 내려 천천히 소녀에게 접근한다. 두 사람은 이내 친해지고 이후, 소녀는 청년의 리무진으로 등하교를 하게 된다. 파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2세의 이 중국인 청년은 이 지역에서 최대 부호의 상속자이다. 어느날 그는 어둠침침하고 '도시의 끝없는 소음'으로 벅적대는 그의 침실로 그녀를 끌어들인다. 이후 약 1년 반 동안의 밀월이 시작된다. 소녀의 집에서는 상대가 중국 청년이라는 점을 극구 반대하지만 그가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이내 잠잠해진다. 청년의 집에서도 반대는 마찬가지. 청년의 아버지는 이미 중국인 처녀와 약혼을 한 아들의 이 미친 사랑 놀음에 격분한다. 곧 프랑스로 환국할 어린 프랑스 창녀와 사느니 죽어버리라는 저주를 내뱉는다. 결국 중국인 처녀를 신부로 맞아들이는 청년. 그들의 관계는 이렇게 끝난다. 중국인 처녀와 결혼하지 않으면 유산을 한푼도 줄 수 없다는 말에 힘없는 청년은 소녀와의 사랑을 끝내버리려 한다. 마침내 청년의 결혼식이 끝난다. 소녀가 사이공을 떠나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올랐을 때 부두 한귀퉁이에서 중국인 청년의 승용차가 숨어 소녀의 마지막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끝까지 그녀를 배웅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는 그 모습. 배가 사이공 항구를 벗어나서야 소녀는 눈물을 터뜨린다. 파리의 다락방 창문 밖으로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이야기를 끝낸 늙은 소설가는 그뒤의 에필로그를 전하며 영화의 끝을 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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