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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Kis uykusu - 윈터 슬립

by 똥이아빠 2015. 10. 27.



<영화> Kis uykusu

놀라운 영화. 별 다섯 개. 
국내 개봉에서는 3시간 18분이지만, 원래 영화는 3시간 59분짜리로, 훨씬 길다.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로 삭제하지 않은 내용을 모두 보고 싶은 영화. 또 반드시 그래야 할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인물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도스또예프스키였다. 이 영화의 감독은 터키 사람이지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서사를 보면 러시아 정서와 매우,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지성과 감정, 욕망, 이기, 분노, 절망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감정의 변주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시간이 대화로만 이루어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대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지루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개인마다 크게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나에게 이 영화는, 주인공 아이딘을 통해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딘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면들, 허영심, 우월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글쓰기, 지극히 보수적인 태도, 자신보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위선, 늘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분위기...
주인공 아이딘과 그의 여동생 네즐라와 서재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아이딘이 아내 니할과 나누는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자,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아이딘이나 네즐라는 모두 지식인이다. 그들은 교육을 많이 받았고, 지성인이며 사회에서는 상류층에 해당한다. 아이딘은 연극배우도 했었고, 책도 쓰고, 신문에 기고도 하는 지성인이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호텔도 운영하고, 시내에 집과 상가가 여러 채 있는 부자이기도 하다.
네즐라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오빠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호텔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딱히 눈에 보이는 일을 하지는 않고 있다.
아이딘의 아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여성으로, 독립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만 현실은 무기력하다. 세 사람의 입장은 모두 자신이 놓여 있는 상태 때문에 미묘하게 다르고, 그것이 각자의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여기에 아이딘의 건물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가족이 등장한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아이딘의 시각으로 보여질 뿐이다. 하지만 영화를 조금 해체해서 각 등장인물의 방향으로 조금씩 돌려보면,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가난한 노동자가 자본가의 집에 세를 얻어 살고 있다. 하지만 가장은 아내를 성추행한 못된 놈들을 응징하다가 감옥에 갇혀 6개월 징역을 살고 나오고, 그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월세가 밀리자 집주인인 아이딘을 대신한 변호사와 대리인이 월세를 독촉하고, 집기를 가져간다. 그 행동을 모두 지켜본 노동자의 아들이 어느 날, 아이딘이 타고 있는 자동차에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진다. 상황은 그때부터 달라진다.
월세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입장에서, 한겨울에 쫓겨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법대로 한다면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세를 사는 사람-정확히는 아이의 삼촌-이 아이딘의 호텔까지 찾아와 호소를 하지만 아이딘은 자신은 잘 모르는 일이니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라고 책임을 떠넘긴다.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아이딘의 태도는 분명 이기적이며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아이딘을 바라보는 여동생 네즐라는 그의 태도를 매우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네즐라가 바라보는 아이딘은 위선적인 인간이다. 종교도 없으면서 종교적 태도에 대해 말하고, 보편적인 내용만을 글로 쓰며, 교훈적이고 보수적인 내용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말도 많고, 여기저기 참견도 많이 하며, 아는 척, 잘난 척을 하는 인간이다.
아이딘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말이지만, 동생이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것을 아이딘이 모를 리 없다. 아이딘 역시 이혼하고 집에 와서 생활하는 여동생의 태도를 비난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아이딘과 그의 젊은 아내 니할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드러난다. 아이딘은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공기처럼 누리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딘의 여동생이나 아내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이딘이 가지고 있는 부유한 환경에서 안락하게 기생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또 그것을 가릴 기준도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입장과 시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부닥치면, 극한으로 치닫다가 파멸로 끝나거나 서로의 이해를 조절하고 양보해 각자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매우 어렵다. 특히 남성들이 여성들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여성과 잘 공감하는 남성들도 있다. 하지만 남성 사회에서는 극소수여서 통계치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이 영화를 다시 분석해보면, 기득권 남성, 기득권 남성에 기생하는 여성, 기득권 남성과 여성에게 착취 당하는 가족이 있다. 기득권 남성 아이딘은 자신이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 그는 예의바르고, 겸손하며, 정의롭고, 친절하며, 가난한 사람을 동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세입자와의 관계에서는 거북하고, 짜증나는 상황을 회피하고 자기의 하수인에게 떠 넘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온갖 지성과 양심을 떠들어댄다.
아이딘의 아내 니할은 오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이딘에게 정신적 고문을 당하고 있다. 아이딘은 결코 겉으로 드러내 놓고 학대를 하지 않지만, 그가 하는 말이 곧 니할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이다. 니할이 볼 때 아이딘은 허위의식으로 자신을 감추고, 이기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한다. 오로지 자기만 옳다는 신념으르 갖고 있으며,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두가 다 나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아이딘의 모순된 태도를 비난하는 니할은, 월세를 내지 못하는 노동자의 집을 찾아가 많은 돈을 주려고 하지만, 그 돈을 받은 남자-감옥에 갔다 온 남자-는 그 돈을 벽난로에 던져버린다.
여기서도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드러난다. 니할이 돈을 가지고 간 것은 안쓰러운 마음에서 그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받아든 남자는, 그것을 다르게 해석한다. 월세를 독촉하고, 가구를 빼앗아 간 아이딘의 대리인들이 저지른 폭력의 대가, 아이딘의 대리인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한 모욕의 대가, 그리고 아이가 받은 정신적 충격에 대한 대가, 그리고 니할의 약간의 자비심이 그 돈의 액수라고 해석하고는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돈을 태워버리는 그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몹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지금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가족의 안위를 포기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노동자의 처지를 당당하게 보여주었다고 옹호하겠지만, 니할이 준 돈은 집을 사고도 남을 큰 돈이었다.
그 돈은 아이딘이 익명의 기금으로 내 놓은 것이고, 니할은 당장 생활이 위태로운 세입자를 생각하고, 그를 돕기 위해 가져 온 것이었다. 남자가 돈을 불태운 것은 니할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것도 하나의 폭력이었다.
가난한 노동자의 처지지만, 남자는 남성 일반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계급을 뛰어 넘어, 남성성이 보여주는 천박하고 한심하고 유치한 이기심의 표현이다. 자본가이자 지성인인 아이딘이나 노동자인 남자나 모두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공감이라는 주제를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이 문제로 인해 다투고, 화내고, 삐치고, 울고 웃는다. 인간이 얼마나 더 진화를 해야 공감의 문제가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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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배우이자 작가인 ‘아이딘’은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한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리고 있는 그는 양심과 도덕을 운운하며 자신이 얼마나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람인지 알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여동생 ‘네즐라’는 번번히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독설을 던지고,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은 그의 위선적인 모습을 경멸하며 권태를 느낀다. 

서로에게 상처와 불신만을 안기는 세 사람은 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의 충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어느 날 아침, ‘아이딘’은 불현듯 찾아온 낯선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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