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100만명 집회 참관기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집회에 참석했다. 대통령의 무능과 비리, 비선실세라고 하는 박근혜 주변의 사이비 무당과 그 친인척이 국정을 농단하고, 그것을 함께 저지른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평범한 소시민인 나도 참을 수 없었다.
나처럼,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그들도 폭발하려는 화를 겨우 참으며 오늘 집회에 와서 대통령 하야, 퇴진, 탄핵을 목이 쉬도록 외칠 것으로 기대했다.
오전에 집에서 나와 양수역에서 전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내렸다. 12시 무렵이었는데, 왕십리역에서 광화문까지 걷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왕십리역에서 광화문까지 몇 번 걸었기 때문에 걷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기분 좋았다. '왕십리'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생긴 것으로 고려 때 무신인 이성계가 쿠데타로 정권을 뒤집고 왕이 된 이후, 새로운 나라의 수도를 정하기 위해 많은 곳을 알아보러 다녔는데, 지금의 서울이 조선의 서울이 된 것과 '왕십리' 지명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성계의 모사이기도 했던 무학대사가 지금의 왕십리 근처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왕십리의 위치도 수도로 정하기에 괜찮아 보였지만, 그 노인은 무학대사에게 이곳에서 십리를 더 가라(왕십리)고 말했다. 무학대사가 걸어서 10리를 더 가보니 지금의 광화문 뒤쪽이 천하의 명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정했다고 한다.
광화문과 경복궁은 왕십리에서 걸어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거리로는 5km 조금 넘는다. 그러니 '왕십리'라는 말이 허황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왕십리에서 광화문을 향해 길을 걷다보면 가장 먼저 곱창거리를 만날 수 있다. 거리 양쪽으로 곱창집이 줄지어 있는데, 이곳은 예전의 마장동 도축시장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지금도 마장동 도축시장은 고기전문 도소매 시장으로 유명하다. 마장동 옆의 왕십리는 자연스럽게 도축 부산물을 유통, 소비하는 식당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왕십리 곱창 골목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상왕십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금은 천지개벽을 했다. 뉴타운 개발로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예전의 낙후된 주택가는 사라지고, 높고 근사한 아파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는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이 있고, 그 옆으로 주방기구 전문 시장 골목이 있다. 주방기구 도소매, 중고 매매 시장인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큰 주방기구 가게가 밀집한 곳이다. 이곳은 청계천과도 맞닿아 있는데, 청계천을 건너면 예전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 이쪽으로 옮겨온 것을 볼 수 있다. 예전 황학동 도깨비 시장은 이제 아파트 개발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도깨비 시장은 동묘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골목을 따라 퍼져나가 있는데, 주말에는 노점상의 숫자도 평일보다 몇 배 늘어나고, 찾는 사람도 그 이상 많다. 도깨비 시장을 둘러보는 것만도 하루 종일 걸릴 정도로 서울에서는 가장 큰 중고 시장이다.
오후3시 무렵부터 종로 거리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종로2가 파고다 공원 네거리부터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고, 경찰은 자동차를 우회하도록 통제했다.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이미 시청 앞 광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종로3가부터 자동차가 없는 대로를 걷기 시작해 시청 쪽으로 향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시청역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물밀 듯 밀려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청 일대는 떠밀려 다녀야 할 정도였다.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그 넓은 도로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청 근처에는 여러 단체에서 크고 작은 집회를 하고 있었고, 시청 광장에서는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전국에서 올라 온 많은 노동조합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우렁차게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오늘 집회에 100만명이 참가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사회관계망을 통해 퍼져나가고, 언론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 역시 어떻게든 역사적인 순간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듯 했다. 4시 무렵, 시청 광장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광화문 방향으로 사람들이 서로 몸과 몸이 닿은 상태로 물결처럼 밀려 올라갔다.
광화문 네거리는 한국에서 가장 넓은 도로라고 할 수 있는데, 시청에서 광화문이 있는 곳까지 일직선의 도로가 인도, 차도 모두 사람으로 가득찼다. 시청역에서 광화문까지는 약 1km인데, 다음 지도에서 거리를 재보면, 인도와 도로를 포함해 약 50미터가 나온다.
인체공학에 의해 사람의 어깨 너비를 50cm로 잡고 사람들이 일렬로 50미터를 나란히 서면 5000/50이 되고, 약 100명 정도가 설 수 있다. 이 숫자는 아주 보수적으로 잡은 것인데, 실제로 이 날 모인 사람들은 어깨가 완전히 맞닿았고, 앞뒤로도 밀착한 상태임을 감안해야 한다.
사람의 앞뒤 간격은 거의 공간이 없을 정도로 바짝 붙어서 상대방의 등과 내 가슴이 한뼘 정도밖에 안되므로 1인의 앞뒤간격을 40cm로 잡아보자. 이것 역시 매우 보수적으로 계산한 것이다. 사람들이 완전히 밀착한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좁은 공간에 있었다.
그러면 100,000/40이 된다. 그러면 1km의 거리에 한줄로 서는 사람은 약 2500명이 되고, 가로, 세로 사람이 들어차면 이론적으로 25만 명이 서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방금 말했지만, 이것은 아주 보수적인 계산이어서 시청역부터 광화문까지 직선도로를 직사각형으로만 잘라서 계산했을 때의 사람 숫자다. 여기서 추가해야 할 내용이 많다. 우선 시청역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인데, 예전에 월드컵을 할 때,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들의 숫자를 1백만 명이라고 보도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실제로 1백만 명은 안 되었을 것이라고 보여지지만, 11월 12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시청 광장은 물론 시청을 둘러싸고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청계광장에서도 집회를 하고 있었고, 대학로를 비롯해 곳곳에서 서로 다른 단체들이 독자적으로 집회를 한 다음,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시청역과 광화문역에서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 올라오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으니, 이날 집회 참가자가 1백만 명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과장하지 않은 숫자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1백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보였다.
나도 사람들 틈에서 계속 떠밀려 올라가다 광화문 네거리 도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른쪽으로는 광화문 우체국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으로 교보문고가 보이는 자리였다. 정면으로 이순신 동상이 보이고, 멀리 청와대 뒷산이 아주 잘 보이는 곳이다.
대형 화면에서는 시청 광장에서 하는 공연이 보였고, 거대한 스피커에서 말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고, 스피커끼리의 간섭이 있어 명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5시가 넘으면서 해가 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구호와 함성을 내뿜었다.
어둠이 깃들면서 광화문 네거리 일대는 가로등과 광고간판 덕분에 대낮처럼 밝았다. 서울의 도시가 이렇게 밝을 줄은 몰랐다. 마치 대낮 같은 느낌이었다. 대형 화면에서는 김제동, 김미화, 도올 김용옥 등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크라잉 넛, 정태춘, 이승환 등 가수들도 공연을 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을 가는 것도 큰 일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거대한 상여가 시청 쪽에서 광화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근혜 퇴진을 알리는 상여는 사람들의 물결을 가르며 천천히 전진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과 구호가 시청쪽부터 광화문 방향으로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거대하게 밀려왔다. 그 함성은 청와대까지 충분히 들리고도 남을 정도로 컸으며, 그 거대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이었다.
광화문역은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서 통로가 사람의 물결 그 자체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저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떠밀리듯 걸어야 했다. 세종대왕 동상 뒤쪽에도 대형 화면이 있어서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화면을 보며 촛불을 들고 있었다. 이곳은 스피커 상태가 좋아서 공연하는 소리가 잘 들렸다.
광화문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조명이 들어온 광화문을 정면에서 찍었다. 이곳에서 양쪽 도로로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광화문부터 청와대가 있는 곳까지 경찰버스가 차벽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경찰버스에 '박근혜 하야', '박근혜 퇴진', '하야하라' 같은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또한 작은 단위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공연도 하는 등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광화문을 등지고 시청 쪽을 바라보면 직선으로 시청까지 보인다. 이 긴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곳, 세종문화회관 앞쪽 도로의 가운데에서 광화문 쪽을 보고 찍은 사진인데, 촛불을 켜고 공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것을 볼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뒤쪽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따로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고, 경복궁 역 근처에서는 청와대로 진진하려는 노동단체와 시민들이 모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곳곳에 시민 자유발언대가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말이 들렸다.
도로에는 백묵으로 박근혜 퇴진, 박근혜 하야, 새누리당 해체,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종문화회관 1층 로비도 열려서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고 있었고, 세종문화회관 뒤쪽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 시청역과 광화문역에 찍힌 지하철 이용자가 1백만 명을 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나처럼 시청역이나 광화문역에서 내리지 않고, 다른 곳에서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이 봤기 때문에 이들까지 합하면 1백만 명은 훌쩍 넘는다. 경찰이나 보수언론에서는 집회 참가자의 숫자를 줄이려고 애쓰지만, 그런 파렴치한 수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자발적으로 모였다. 지금 이 나라가 너무도 한심하고 위태롭기 때문에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온 것이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어리석고 야비한 정권과 집권여당을 시민의 손으로 바로 잡겠다고 나선 것이고, 위기 때마다 국민은 이렇게 힘을 모아서 역사를 바로 잡았다. 바로 오늘 11월 12일이 그런 역사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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