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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자유로운글

인류의 변곡점

by 똥이아빠 2017. 2. 9.
인류의 변곡점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항상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역사를 가능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과 자세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시대의 흐름을 주관적으로만 판단하면 역사에 매몰되기 쉽고, 역사적 사건을 과장, 왜곡, 축소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지금까지 역사와 경제학에서 연구되어 알려진 인류 문명의 발달을 보면 원시공동체-수렵, 채취-정착, 농경-잉여 생산물의 발생-계급의 발생-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노예제-농노제-산업혁명-자본주의의 탄생 등으로 정리할 수 있고, 깬 석기-간석기-청동기-철기-문자-화약-종이-인쇄-총-비행기-로켓-핵 등의 기술문명이 인류의 삶과 문화를 근본에서 바꿔왔다.

역사를 돌이켜 바라보면, 인류에게 역사의 변곡점이 될 만한 사건들은 많았고,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거대한 문명의 회오리에 휘말려 힘든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이런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적응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과 수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가치 없이 스러져 가곤 했다.
청동기가 발명되던 시기에 간석기로 대항하던 씨족들은 거의 멸족이 되었을 것이고, 철기가 도래하던 때에는 청동기로 대항하던 부족들이 멸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패배한 부족들은 노예가 되어 고통을 받으며 살아갔던 것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지주들이나 상인들이 자본가 대열에 합류하면서 여기에서 도태된 귀족들이나 농노들은 노동자로 편입되어 가장 비참한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즉, 역사의 질적 변화, 거대한 역사의 급류가 몰아칠 때, 소수를 제외한 거의 다수의 사람들은 피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오늘날까지 인류에게는 많은 변곡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인류를 멸종으로 몰고 갈 위협적인 문제나 상황은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던 과정은 인류의 비극적 역사로 기록이 되었지만, 그것은 인류가 문명의 발달 과정을 통해 어쩌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었던 과정일 수도 있었다.
인류는 여전히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이며, 집단의 광기와 몰지성의 야만이 현대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 지금보다 더 오래 전의 인류에게 합리적 이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변곡점은 단지 자본주의의 폐해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멸종을 걱정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정치경제학으로 풀어 ‘계급투쟁’의 역사로 기술한 칼 마르크스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실존적으로 ‘계급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자본주의의 노예’인 노동자의 처지라는 것을 명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그만큼 영악하고 지능적이라는 뜻도 된다.
그 교활함이 자본주의를 번성케 했고, 자본가가 착취를 통해 거대한 이윤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며, 대중을 무지의 상태로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강제하는 힘이기도 하다.

노예제-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가 인류에게 변곡점이었듯이 자본주의-(새로운 체제)로의 이행 역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곡점이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정점에 다다렀거나 정점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지점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예상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으나, 다가 올 미래 사회를 충분히 인지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살아본 적 없는 사회를 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북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회 체제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적절히 섞어 놓은 듯 하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 체제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바로 ‘핵’ 문제다. 현대 역사의 변곡점이라면 인류가 핵을 개발하고, 그것을 전쟁무기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비전쟁무기라고는 해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핵발전소를 짓고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해도, 지금 인류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그 무기는 인류를 멸종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력하며 충분히 위협적이다. 인류가 진화를 시작하고 약 200만년이 흐른 오늘 날,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것을 단순히 정치적 레토릭으로 여기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대 국가들은 불과 60년 전까지 세계 전쟁을 치렀고, 국지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구 위의 어느 지역에서 단 하루도 총성이 멈춘 날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게다가 국가간 긴장은 꾸준히 높아지고, 인구 증가의 과잉, 식량 문제, 에너지 문제, 환경 문제 등 인류가 만들어 낸 전지구적 문제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인류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아이러니와 함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발전소를 운용한다는 것은, 인류의 지성이 여전히 낮은 수준의 소수에게 떠맡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뛰어난 지성의 합리적인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은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권력을 쟁취하는데 실패했다. 대신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인간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그들의 잘못된 결정에 의해 인류는 핵전쟁의 위협과 핵폭발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핵발전소의 문제는 곧바로 핵폭탄의 문제와 직결되며, 어느 것이든 그것의 운용을 결정하는 자들이 지성인이 아니라는 문제 와 설령 그들이 ‘지성인’이라 해도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멍청하고 폭력적인 자들이 핵무기나 핵발전소를 운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지성인’은 용인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인류는 물질 문명을 꾸준히 발달해 왔다. 그 이면에는 전쟁과 살육의 어두운 역사가 드리워 있고, 착취와 폭력의 야만이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어둠에서 밝은 면으로 조금씩 이동해 왔으며, 야만에서 이성의 정신으로 깨어왔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가공할 핵폭탄과 핵발전소는 이런 인류의 노력과 의지를 한 순간에 파괴할 수 있는 공포의 무기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책임질 수 없는 말로 핵의 안전을 말하는 자들은, 몇 푼의 돈에 영혼을 파는 노예보다 못한 저열한 인간들일 뿐이다. 극소수의 악당들 때문에 인류의 미래가 멸종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