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병제인가?
모병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병역의 의무가 평등하지 않다. 이것은 헌법 위반이다.
-금수저는 모두 군대에서 빠지고, 흙수저들만 군대에 가게 된다
-자원 입대하려는 청년들이 없을 것이다
-모병을 하면 지금보다 월급을 많이 줘야 하는데, 예산이 부족하다
이외에도 모병제를 반대하는 주장들은 더 있지만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이며 수준 이하의 주장들이 많아서 여기서 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위의 내용은 모병제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리라고 봐도 좋겠다.
모병제가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질문을 바꿔, '왜 징병제인가?'라고 먼저 묻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병역의 의무를 징병제로만 받아들였고, 그것도 20대의 남성만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징병으로 일반 병사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정당한 것인지부터 의문을 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병역법은 분명 '평등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돈과 권력이 있는 집안의 청년들은 서민 가정의 청년들보다 병역 기피율이 월등하게 높다. 이것이 단지 우연일까? 차별없는 징병제라고 말하는 것은 정부와 군부의 레토릭일 뿐이다. 현실은 전혀 평등하지도 않고, 보편적이지도 않다. 이것이 모병제로 가야 하는 첫번째 이유다.
언론에서 군인과 관련한 사건, 사고를 검색하면 의외로 많이 나온다. 병사가 자살하거나 구타를 당해 죽거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도 올바르게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하는 내용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여군들의 경우 상관에 의해 성추행,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다. 대체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따위 역겹고 추잡하며 악랄한 사건들이 거의 날마다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현재의 군대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어서 파시즘적 폭력으로 운영,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폭력으 문제가 모병제로 가야 하는 두번째 이유다.
군대의 방위산업 비리는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는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인데도 여전히 온갖 비리가 판을 치고 있고,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물론 비리를 저지르는 자들은 소수지만, 그들이 주무르는 국가예산은 조 단위여서 국민의 피인 혈세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흘러나가고 있고, 국가의 방위를 핑계로 몇몇 반역자들이 배를 불리고 있는 상황이다.
모병제와 고위 장교들이 벌이는 방산비리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병제가 되면 병사평의회가 생기고, 병사들이 입고, 먹고, 쓰는 모든 군수물자와 병기들을 병사들이 직접 검사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병사들이 단지 전쟁의 소모품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고위 장교들이 저지르는 비리를 고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것이 모병제로 가야 하는 세번째 이유다.
이제, 모병제를 반대하는 논리에 맞서, 모병제를 해야 하는 이유와 가능한 방식을 알아보자.
헌법 제39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병역법 제3조 ①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자는 지원에 의하여 현역에 한하여 복무할 수 있다.
위의 헌법과 병역법을 보면,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했는데, 병역법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만을 병역의무자로 지정하고 있다. 이 두 법은 모순으로 보인다. 모병제로 전환하려면 이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국회에서 모병제 검토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의 변화에 따르는 장단점을 비교하고,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책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모병제가 되면 금수저는 모두 군대에 가지 않고, 가난한 집안 청년들만 군대에 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일정 부분 동의하는 내용이다. 이 주장은 얼핏보면 '평등한 징병'이 더 정의로운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현실은 이미 병역 문제에서 매우 불평등하다는 것을 감추려는 얄팍한 주장이기도 하다.
위의 모병제 반대 논리의 많은 부분은 사실 '돈'과 관련되어 있다. 금수저 청년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부터 자원 입대를 하려는 청년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 예산이 부족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국방 예산'이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현재 국방 예산은 국가 예산의 약 14%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그 금액은 약 39조원 정도다. 국방 예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국방 예산이 국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반대로 꾸준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현재 한국군은 약 6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직업군인을 제외하고 일반 징병된 병사는 전체 인구의 약 10% 정도에 달하는 50만명에 이른다.
50만명의 병사가 월 평균 15만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1년에 지급되는 돈은 약 9천억원 정도다. 여기서 전제할 것은, 음식, 피복, 장비 등 병사들을 위한 제반 지원비용은 모두 제외한다. 이것들은 징병제든 모병제든 병사에게 동일하게 제공해야 하는 지원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징병제와 모병제에서 가장 큰 차이가 결국 월급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여간 병사의 월급은 전체 국방예산에서 3%도 안될 정도로 미미한 금액이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징병제라 해도 정부가 법률로 정한 최저임금에서 훨씬 미치지 못하는 돈을 월급이라고 받으면서 청년들은 '국가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반면 고위 장교들은 연봉이 1억이 넘고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다. 군인연금은 특수연금이어서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 매월 내는 국민연금에서 매달 받는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국민의 혈세로 군인연금을 해마다 1조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고 있다. 이것 역시 매우 불합리한 상황이다.
젊은 청년들은 '국방의 의무'라고 끌고가서 거의 공짜로 부려먹으면서, 장교들은 거액의 연봉과 연금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는데, 전쟁이 나면 과연 병사들이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우려 들까? 정의롭지 못하고, 부패한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비도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모병제를 해야 하는 것이다.
모병제를 하기 위해서는 군대의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군대가 부패하고 비리가 만연한 상태에서는 모병제를 하기 어렵다. 직업 군인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직업 군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상당히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고, 국회에서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지 않고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특히 고급 장교들의 숫자를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장교의 숫자가 필요 이상으로 많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역시 천문학적으로 많아진다. 군대의 개혁은 장교의 숫자를 줄이고 정예화해야 한다. 장교들도 해마다 체력 측정을 해서 병사들이 받는 유격훈련보다 혹독한 상황에서 시험을 거쳐 통과해야 진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배가 나오고, 달리기도 못하는 장교들이 많은데, 군인이라면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을 갖추는 것이 의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배에 기름이 낀 장교들을 모두 솎아내고, 이어서 공부하지 않는 장교들도 솎아내야 한다. 장교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계급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자들이 많은데, 멍청한 인간들이 계급장을 달고 큰소리치면서 지휘관으로 있는 것은 국방에 큰 위협이 되는 요소다.
모병제의 핵심은 병사의 숫자를 줄이되 정예화하고, 군대의 무기를 자동화, 정예화한다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교와 하사관도 숫자를 줄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키워서 일당백의 실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전은 백병전을 벌이거나 숫자로 압도하는 전투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병사가 50만 명이라도 허수아비같은 병사들이라면 전쟁에 쓸모가 없는 것이고, 30만명이라도 정예 군인이라면 자동화 무기와 함께 50만명 이상의 화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방위산업 비리 예산은 조 단위가 넘어가고 있다. 여러 곳에서 줄줄 새고 있는 국방 예산을 바로 잡고, 투명하고 공정한 무기 계약과 국산 무기의 개발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면 모병제에 필요한 예산은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다.
모병제로 30만명의 병사를 운용한다고 가정하고, 병사 한 명에게 연3천만원의 연봉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국방예산에서 지출되는 돈은 9조원이다. 전체 국방예산의 약 38% 정도인데, 나는 병사들의 월급 총액이 국방예산에서 30%-40%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지급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모병제는 '애국심'을 현실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니 그 가치가 청년들에게 외면당하거나 무시당할 정도로 낮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모병제가 되었을 때, 군대에 자원하지 않는 청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금수저 집안의 청년들은 어쩌면 당연히(?) 군대에 가지 않을텐데,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그럴 것이다. 모병제가 되고, 병사의 연봉이 3천만원이라고 해도 여전히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청년은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복무제도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도 안 되면 거액의 배상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결국 돈이 많은 집안이라면 자식의 기회비용으로 돈과 시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이고, 비용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면 기꺼이 돈을 낼 것이다. 군대에 가지 않을 경우 배상금을 내는 것은 순수한 모병제와는 거리가 있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제도다. 이렇게 모이는 돈은 모병제로 입대한 병사의 월급으로 쓰면 된다. 아마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모병제를 하면 가난한 집 청년들만 입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것인가? 모병제에서도 병역의 의무를 마친 청년에게는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일정한 혜택을 주어야 한다. 미군도 병사가 전역하면 사회에서 지원하는 제도가 많이 있다. 가난한 집안의 청년들이 군대에서 돈을 벌고, 사회에 나와서 혜택을 받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잘못된 제도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징병제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대를 개혁하는 것도 싫고, 방산비리로 마음껏 저지르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또한 병사를 소모품으로 여기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자들이다. 군대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자들이 징병제를 주장하고 모병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모병제가 되면 병사들은 자율적인 '병사평의회'를 만들어 군대 생활을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장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 장교들은 계급에 따른 명령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업무에 한해서일뿐,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부당한 명령은 내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군대에서의 폭력은 사라지게 되고, 병사의 자율성은 높아지게 된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군대는 여전히 미개한 일본제국주의의 군대를 답습하고 있다. 지금의 군대에서는 청년들이 온갖 폭력과 야만을 배워서 사회에 나오게 되고, 민주시민의 소양을 쌓을 기회가 근본부터 차단되어 있다. 모병제를 통해 병사들이 모두 평등한 위치에서 민주적인 소통을 통해 군대 문화를 바꿔야 할 필요가 매우 크다.
모병제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히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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