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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남한산성

by 똥이아빠 2017.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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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이미 정묘호란을 겪어 청나라가 위협적인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조선의 지배권력은 내부 권력투쟁과 무능함으로 국방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정묘호란 전에도 불과 30년 전에 있었던 임진년 전쟁에서도 온 나라가 불타고, 초토화된 것을 보면서도 국방을 튼튼히 하지 않았던 지배권력이었으니 자신들의 경험에서도 배우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묘호란 이후 불과 10년만에 다시 병자호란을 겪게 되고, 조선의 왕 인조와 권력을 가진 양반들은 백성들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들만 살겠다고 궁궐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으로 도주하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이승만이 라디오로 녹음을 해 놓고 가장 먼저 부산으로 도망친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백성들은 자신들을 착취하는 양반 지배권력이 망하는 것이나, 청나라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백성의 삶을 살기 편하게 해 주는 쪽이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조선의 지배권력은 '위민'을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않았고, 철저한 계급사회를 바탕으로 천민, 노비, 평민에 대한 수탈은 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청나라의 침략으로 도망친 인조와 관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고, 곁가지로 대장장이와 나루터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 그리고 인조가 보여주는 자기주장과 갈등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인조는 광해를 내쫓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된 인물인 만큼, 그가 왕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히 갖추어졌는지 알 수 없고, 반역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인조 정권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외적을 막는 국방보다는 내부의 적을 감시하는 일이 더 중요했고, 왕을 모시는 군신들 역시 반정에 성공한 세력과 기존의 지배세력이 갈등을 일으키며 조선왕조의 내부는 힘을 합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인조의 무능과 우유부단함은 청나라의 침략과 조선의 항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절대왕권제에서 왕의 통치 능력은 왕이 얼마나 유능한가에 따라 기복이 매우 심하게 드러나는데, 세종의 예를 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주전론자였던 김상헌이 죽기 직전에 최명길에게 남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백성이 살기 좋은 세상은 청나라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지금의 양반과 심지어 왕까지도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그가 남한산성에서 농성을 하는 과정을 통해 이런 깨달음에 도달했다는 것은 지식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면서 한편으로 지식인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말'-즉 '글'-을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살아가는 양반계급은 지식인이고, 자신들이 '엘리트'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만큼 한 나라를 운영하는 데 있어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이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백성의 생활이 나아지는 제도나 정책을 펼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으로서의 오만함과 우월함을 내비치기도 한다.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왕조가 싸그리 망하고, 완전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청나라의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권이라해도 예전의 조선정권-이성계와 그 자식들의 세습정권-보다 먹고 살기가 낫기만 하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왕조의 정통성 따위를 따지는 것은 지배계급에서나 하는 일이고, 땅에 코를 박고 살아가는 백성들은 나라가 쪼개지든, 망하든 먹고 살 걱정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병자호란은 조선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황제) 앞에서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한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항복 문서에 서명한 것도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만큼 조선왕조와 지배세력에게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고, 그들의 권위가 땅으로 추락하는 역시적 장면이었다.
이미 임진년 전쟁을 겪으면서 조선왕조와 지배세력의 권위는 상당한 수준으로 추락했고, 백성들은 자신들의 살 길을 스스로 찾기 위해 정부의 도움보다는 자력갱생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장의 발달과 상공업의 단초가 이때 시작되었고, 백성들은 양반계급과의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서서히 넓혀 가고 있었다.
백성들의 의식이 깨어가고, 세상이 바뀌고 있음에도 조선왕조는 자발적으로 변할 의지가 없었다.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양반들은 권력을 무기로 백성을 착취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은 조선정권의 무능이 원인이지만, 백성들이 조선왕조를 자신의 지도자 세력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급속히 무너진 것이 사실이다. 압록강부터 한양까지 청의 군대가 전진할 때, 백성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그것은 조선왕조가 무너지든 말든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에서의 47일 동안 왕과 신하들의 갈등은 역사에서 거의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 갈등 관계가 매우 중요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망해가는 조선은 자신이 겪은 역사에서 그 전이나 그 뒤에도 전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의 입장에서는 망하는 것이 당연한 지배세력이었을 뿐이다.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눈부시고 놀랍다.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의 연기는 소재의 편협함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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