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영화 뿐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렇다. 다만 '재미'의 개념, 기준, 주관적 판단, 의미, 수준과 같은 무궁한 영역이 은하계처럼 퍼져있으니 그것까지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재미있다고 여기면 그 영화는 좋은 영화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2시간 동안 현실을 잊고 영화 속에 몰입해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좋다. 영화의 장르가 다양한 것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관객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듯,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관객의 주관적 판단이 작용한다. 물론 자본의 거대한 홍보의 폭우로 인해 세뇌에 가까운 정보의 물결에 휩쓸려 영화를 보게 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요즘 관객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자기가 판단해서 재미 없다고 생각하면 영화표를 끊지 않는 단호한 태도를 가진 지성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가운데 '형편없다' '유치하다' 재미없다' 같은 관람평을 써놓은 걸 보면서, 아, 사람의 시각과 뇌는 동일한 사물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판단, 해석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이를테면 '대부'를 보고나서 '재미없다' '유치하다' '형편없다'라고 말하는 관객을 본다면 우리는 뭐라고 말할까. 그렇다. '그건 너의 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대부' 같은 걸작을 두고 감히 '재미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이니까 존중해야 할까. 존중해야 한다. 존중은 하되, 그런 안목이라면 함께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전혀 없다.
진지하고 심각하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영화만을 높게 평가하는 관객이라면, 이런 코미디 영화는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졸작'이겠거니와, 영화가 갖는 다양한 기능을 이해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코미디 장르에서 앞으로 꽤 널리 거론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모든 서사가 그렇듯, 코미디 영화에도 전형화된 극의 흐름이 있다. 즐거움-위기-고난-행복이라는 서사의 흐름은 그동안 세계의 모든 코미디 영화에서 차용한 큰 줄거리의 흐름이다. 웃기면서 슬프고, 고난과 감동이 절정을 이루는 방식은 코미디 영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장르는 코미디가 분명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가볍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말하는 대사에서 코미디의 한 장르인 '만담'을 떠올리게 한다. 만담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장르지만,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만담은 매우 인기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그 맥을 배칠수, 전영미 커플이 이어가고 있는데, 영화에서 다섯 명의 배우가 주고 받는 이야기는 만담 수준이다.
영화의 줄거리, 등장인물의 리얼리티, 범죄자들의 비현실성 등을 지적하려면 꽤 많지만, 어차피 영화는 픽션이고, 픽션이라는 걸 알고 있는 관객은 그들이 하는 행동이 어느 정도 비현실적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웃는 지점은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이 현실과 매우 비슷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지점을 비틀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작정하고, '네가 얼마나 웃기는지 한번 두고보자'라고 심판자의 자세로 본다면 그 영화는 아무리 재미있고 웃기는 영화라도 웃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 온통 헛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큰 기대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영화를 보면 생각보다 더 재미있고, 더 많이 웃게 된다.
이 영화에서 마약반 형사 다섯 명은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형사들 가운데 좀 지진아들만 모아놓은 듯한 팀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잠복을 위해 치킨집을 인수하고, 위장 영업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이 웃음을 유발한다.
찌질하고 한심해 보이는 마약반 형사들의 모습은 사실 우리들, 서민의 모습이다. 우리가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웃는 것은, 우리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잠재해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서민)는 스스로 그다지 잘난 것이 없는 평범하고, 소심하고, 실력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지배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하루를 연명하는 소시민들은 늘 해고의 위협과 가난에 쪼들리면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도 알고 보면 한두가지씩 잘 하는 것이 있다.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인성이 선하고 따뜻한 사람부터, 손재주가 있는 사람, 무수한 기술자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는 사람들이 바로 서민인 우리들이다.
다섯 명의 형사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그 화려하게 폭발하는 멋짐이 비록 대리만족이기는 해도 우리에게 어느 순간 있을 카타르시스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즐겁게 보고, 깔깔거리며 2시간을 웃고, 기분 좋게 나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 사람들은 그 자체로 불행한 것이고.
'영화를 보다 > 한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0) | 2020.04.19 |
---|---|
기생충-빈민의 시각 (0) | 2020.02.09 |
남산의 부장들-치졸한 권력자의 종말 (0) | 2020.01.26 |
블랙머니 (0) | 2019.11.18 |
[영화] 악인전 (0) | 2019.10.08 |
[영화] 말모이 (0) | 2019.01.20 |
[영화] 마약왕 (0) | 2019.01.14 |
[영화] 국가부도의 날 (0) | 2019.01.04 |
[영화] 뫼비우스 (0) | 2018.11.20 |
[영화] 서울의 휴일 (0) | 2018.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