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영화는 특별하거나 대단하지 않았다. 대개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미국과 자본의 발톱은 날카롭고 악랄했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권력을 가진 자들의 무능과 자본의 탐욕이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구제금융시기의 나와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았나를 떠올렸다. 구제금융이 시작되기 1년 전에 나와 아내는 결혼했다. 아내는 직장에 다녔고, 나는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 백수였다는 말이다. 결혼하던 때, 그러니까 1996년 10월 무렵에 우리는 부천 중동의 신도시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를 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산본의 작은 아파트를 팔고, 아내가 가지고 있던 돈과 은행에서 돈을 빌려 결혼과 함께 신혼집이 될 아파트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1억원짜리 수표를 부동산중개소 사무실에서 집주인에게 건넬 때의 두근거리던 심장의 떨림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돈은 우리 둘의 전재산이었으니까.
1년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국가부도사태가 났다. 영화에서처럼 극소수 정부의 담당자들만 알고 있던 국가부도 상황을 IMF 협상을 비밀로 한 다음에서야 발표한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 사회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대기업을 비롯해 모든 기업에서 노동자를 해고하기 시작했고, 임신한 상태로 직장에 다니던 아내는 임신 기간 내내,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낸 두 달 내내 불안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에서 여성, 임신한 여성, 출산한 여성은 가장 약한 고리에 속한다. 아내가 겪어야 했을 그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남편인 나는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미안하다. 이 시기에 내 첫번째 장편소설이 책으로 나왔다. 그것으로 백수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국가부도와 함께 정권이 바뀌었다. 구제금융이 시작되고 1년 가까이 되었을 때 아내는 출산했고, 그때부터 나는 육아를 시작했다. 낮에는 어머니가 아기를 봐주시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내가 아이를 돌봤다. 날마다 목욕시키고, 날씨가 따뜻한 날에는 풍욕을 시키고, 2시간마다 분유를 타서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침대에서 재울 때는 심장이 튼튼하라고 딱딱한 침대 바닥에 업드려 재우면서 수시로 아이의 잠자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렇게 아이 돐이 가까웠을 때, 나도 취업을 했다. 운이 좋았다. 결혼 전에 부지런히 프리랜서 활동을 했던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타난 것이다.
방송에서는 구제금융의 여파로 나라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는 내용이 계속 나왔고, 금모으기 운동도 벌어졌다. 나는 그때 한창 성장하는 IT기업에 들어갔고, 아내도 기뻐했으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그럴만한 회사였다. 아이는 막 돐이 되었고, 이제 할머니가 아이를 돌봐주고, 우리는 맞벌이를 하며 심각한 구제금융의 공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기업이 도산하고,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로 길거리에 내몰리고,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인들이 부도로 자살하는 사건이 연일 일어나던 시기에 우리가 그 죽음의 늪을 무사히 건넜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시민에 노동자에 불과한 우리가 그 거친 파도를 쪽배를 타고 무사히 건넜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았고, 그 원인은 무능한 정부에 있었다.
피해자는 가장 약한 고리인 노동자와 자영업자,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자본가들과 돈이 있는 자들은 위기 속에서 오히려 기회를 잡았다. 빈부 격차는 더 커졌고, 고통의 굴레는 더 크고 무겁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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